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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달릴 것인가주일에는 달리지 않겠다고 했던 남자의 두 번째 인생
오언 스트래천  |  Owen Strac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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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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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다

던컨 해밀턴
윤종석 옮김
복있는사람





화 장면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한 무리의 젊은 선수들이 반젤리스Vangelis의 음악을 배경으로 해변을 슬로모션으로 달리고 있다. 카메라는 젊은 에릭 리델의 더없이 행복한 얼굴을 비추고, 배경 음악불의 전차가 다시 한 번 온몸에 감겨 온다. 훌륭한 영화에, 강력한 힘을 지닌 스토리다. 독특한 올림픽 선수, 양심의 소리를 좇은 그리스도인, 매우 빨랐으며 그 빠름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느꼈던 사람 이야기.

그런데 여기에 주목할 만한 진실이 있다. 영화 <불의 전차>는 리델의 남다른 인생에서 가장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던컨 해밀턴과 그가 최근 펴낸 전기영광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다에 맡겨졌다.

해밀턴의 책은 이 올림픽 챔피언의 삶의 모든 영역을 다루면서, 리델이 중국 선교사로 펼친 사역을 폭넓게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세상은 운동선수의 영웅적 업적을 가장 좋아할지 몰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해밀턴이 리델의 희생적 수고를 그려낸 광경에 깊은 감동을 느낄 것이다.

해밀턴은 영국에서 스포츠 문학상을 수상한 스포츠 기자로 잘 알려져 있다. 거의 400쪽(한국어판 524쪽)에 달하는 이 전기는 해밀턴의 재능을 더할 나위 없이 보여주고 있으며, 단 한 자도 버릴 것이 없고, 신선한 비유를 포착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은언브로큰Unbroken이나 더 보이즈 인 더 보트The Boys in the Boat 같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드라마로서의 힘 면에서도 이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올림픽 경기장의 카메라처럼 우리는 리델 스토리의 어느 한 장면에서 좀체 오래 머물지 못한다. 해밀턴은 시종 빠른 속도로 장면을 전환하며, 유리를 깎아 낸 듯 정교한 그의 문장 덕분에 우리는 이 챔피언에게 오롯이 집중하게 된다.
 

누구나 한 번쯤 갈림길에 서게 된다

이 책은 성인전聖人傳이 아니라, 리델의 성품과 그가 보여준 모범에 깊이 감명 받아 풀어놓은 이야기다. 좀 더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주인공에게 이토록 깊이 공명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리델은 단순히 선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위대한 사람이었다. 그는 깊이 믿었고, 성실하게 훈련했으며, 감동적으로 설교했고, 자주 미소 지었고, 용감하게 달렸다.

리델은 최선을 다해 살았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처럼 “나름대로 쾌락을 느끼는 일에 끈질기게 몰두한다”는 식은 아니었다. 리델이 생각하는 최선을 다하는 삶이란, 자신의 선택을 평가하고, 어떤 값을 치러야 할지 가늠해 보고, 그런 다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장 위험도 높은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었다. 계산은 단순했다. 해밀턴은 “누구나 한 번쯤 삶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는 리델의 설교 한 구절을 인용한다. “그때 주님 편에 설 것인지 반대편에 설 것인지 결단해야 한다.” 이 그리스도 중심의 논리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별로 납득되지 않았을지라도 리델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다. 주일에는 달리지 않겠다는 유명한 결단의 때든, 선교사 소명에 응답하기 위해 운동을 그만둘 때든, 신앙을 삶으로 구현하려는 시도를 할 때마다 리델은 격렬한 회의론에 직면해야 했다.

리델의 예는 당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법에 대해 신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오늘날 젊은 복음주의자들은 문화적 배경을 바로 이해하려고, 불신자들과 친구가 되기 위해 무척 애를 쓰는 한편 기독교를 지나치게 역설하여 이들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에 비해 리델의 방식은 단도직입적이었다. 리델은 성경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인 산상설교의 예를 좇아, 주저 없이 이웃을 사랑하면서 주춤거리지 않고 자기 신념을 고수했다. 그리스도인의 복음 증거와 관련해 여기서 도출되는 모범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고무적이다.

물론 리델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해밀턴은 리델이 장기간 가족들과 떨어져 있었던 일을 가감 없이 다룬다. 1934년 지칠 줄 모르는 끈기의 소유자 플로렌스와 결혼한 리델은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했지만, 해밀턴이 보기에 리델의 최우선 순위는 선교 사역이었다. 이는 곧 리델이 샤오창과 그 후 톈진에서 사역하는 동안 가족들과 오래 떨어져 있어야 했다는 의미였다. 사역은 늘 고되었고, 게다가 1930년대와 1940년대의 중국은 매우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리델은 종종 강도를 만나기도 했고, 씻지 못해 더러운 몸으로 굶주릴 때도 자주 있었으며, 사역을 훼방하려는 관리들이 걸핏하면 수작을 부리기도 했다.

어느 시점 이후 리델은 아예 집에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1941년 초 일본군이 중국으로 밀고 들어오자 리델은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이들을 토론토로 보내기도 했다. 리델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이들과 입을 맞춘 뒤 돌아섰다. 그리고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딸들의 말에 따르면 그는 이 이별을 감당할 수 없었고, 가족들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게 되리란 걸 이 순간 직감적으로 알았다고 한다. 선교 사역을 위해 가장 큰 희생을 치르는 이들은 대개 선교사의 가족들이며, 이는 참 냉정한 현실이다.

가슴 찢어지는 이별 후 리델은 다시 사역에 몰두했다. 그의 사역은 지극히 현실적인 실존이었고, 영광을 위하여는 주인공의 행동이 이끌어 가는 책이다. 해밀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삶 이면의 생각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가 알기로 해밀턴의 신학이 행동주의자이자 복음전도자인 프랭크 부크먼Frank Buchman의 논쟁적 견해에 어느 정도 의존하고 있긴 하지만, 리델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어떤 개념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해 이 책은 전혀 길게 다루지 않는다. 리델이 그 영광을 위해 그토록 수고했건만! 이는 해밀턴이 신학적인 문제에서 오래 머뭇거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리델 자신이 하루하루 제자로서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리델의 회심 그리고 은혜의 복음을 그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다뤘더라면 책의 내용이 좀 더 탄탄해졌을 것이다.

리델은 흔히 ‘순교자’로 불리며, 어떤 의미에서는 순교자가 맞다. 하지만 리델은 극렬히 타오르는 불길에 타 죽으려고 가족들과 헤어진 게 아니었다. 영광을 위하여는 3부가 특히 탁월한데,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페이지마다 상세히 묘사하면서 리델이 웨이셴 포로수용소에서 보낸 마지막 2년을 다루고 있다. 해밀턴은 리델이 머물게 된 이 새 집의 음울함을 이렇게 기록한다.

“하나님의 법은 멀리 담장 너머에나 있는 것 같았다. 담장 안에는 길이 150미터, 너비 200미터도 안 되는 공간에 꽉 들어찬 1800명 가까운 수감자들의 혼돈만 있었을 뿐이다.”

선교사라고 해서 그리스도를 위해 특별히 화려한 플레이를 펼치지는 않는다. 리델은 품격 있는 삶을 살았다. 처음에 그는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는 교사 신분으로 중국에 갔다. 그는 선교를 주제로 한, 영감 넘치는 설교 때 우리가 듣곤 하는 대단한 일은 하지 않았고, 대신 그리스도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하는 평범한 일은 다 했다. 리델은 사람들이 쓸 물을 끓였다. 외로운 아이들과 축구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피해 다니는 수용소 매춘부를 위해 선반을 달아 주었다. 이 모든 일들을 리델은 하루하루 해냈다. 이런 일들 가운데서 리델의 성품이 빛났다. 매춘부의 말에 따르면, 그런 일을 해주고 그 대가로 그녀에게 몸을 요구하지 않은 사람은 리델뿐이었다고 한다.

이는 그냥 하찮은 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영광을 위하여언브로큰, 더 보이즈 인 더 보트는 하나같이 우리 시대가 용감하고 덕망 있는 남성을 갈급해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이 포스트모던 시대는 이도 저도 아닌 회색 지대와 영웅 자질이 없는 주인공들이 상품으로 배치되는 시대다. 우리 시대는 성 구별이 없는 시대로, 많은 젊은이들이 내면에서 들끓는 열정과 불안을 해소할 공간을 찾지 못하고 있다. 던컨 해밀턴이 전해 준 에릭 리델의 예를 보면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한 사람을 붙잡으실 때 그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하루하루 신실하게

리델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일상 속에서의 신실함,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는 엄청난 차이를 낳았다(요15:13, 엡5:25-32). 이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금메달,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의 앞길 창창한 입지, 세상이 그 치명적 연회 테이블에 펼쳐 놓은 온갖 쾌락을 다 맛볼 기회 등 눈앞에 모든 것을 다 가졌던 남자는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 이 모든 것을 다 포기했다. 1945년 2월 리델이 세상을 떠난 후 한 동료 수용자가 말한 것처럼, 그 포기에 대한 보답으로 “누구나 다 그를 사랑했다.” 이것이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잔인한 웨이셴 수용소에 남겨진 보편적 정서였다.

해밀턴이 그려 내는 극적인 스토리는 오늘날의 남자들을 부른다. 언제까지나 소년에 머물지 말고, 리델이 치명적 종양 때문에 힘들게 내려놓은 복음의 깃발을 들어 올리라고. 더 나아가영광을 위하여는 모든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복적 성질을 일깨워 준다.

세상을 갖지 못한 우리, 뉴욕 타임스의 인물 소묘 작가들에게 별 관심을 받지 못하는 우리는 그래서 쉽게 이런 이야기를 갈망한다. 에릭 리델, 지상 왕국의 열쇠를 손에 쥐고 있었으면서도 그 열쇠를 원치 않았던 사람을.

그가 선택한 길에는 달리기도 있었지만, 그 달리기에는 슬로모션이 없었고 배경 음악도 없었다. 묵직한 메달을 딸 일도 없었고, 환호를 보내는 관중도 없었다. 일찍이 리델은 구주께서 예루살렘 길을 걸어 죽음을 향해 가시는 것을 보았다. 달리기 선수 중 가장 빠른 이 사람, 자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이 사람은 경기장을 나와 주님을 좇았다. 폭풍우에 흔들리는 머나먼 나라로 가서 이름 없이 수고하며 역경이 끊이지 않는 날들을 살았다. 사람들이 예수를 알 수 있도록 하려고. 그의 삶은 다음과 같이 단순하게 정리된다. 리델은 인간의 영광을 포기하고 십자가의 영광을 품에 안았다.

영광을 위하여에서 아름답게 전개되고 있는 리델 스토리가 많은 청년들을 이끌어 리델과 같은 삶을 살게 하리란 걸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CT
 

오언 스트래천 미드웨스턴 침례신학교 기독교신학과 부교수다. 공동 집필한 저서로 The Grand Design: Male and Female He Made(Christian Focus)이 있다.

Owen Strachan, “The Second Life of the Man Who Wouldn't Run on Sunday” CT 2016.8.10; CTK 20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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