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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경기독교 역사학자 마크 놀이 ‘오직 성경’의 올바른 사용법과 잘못된 사용법을 풀어내다.
마크 갤리  |  Mark Ga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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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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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경”은 500년 동안 프로테스탄티즘의 홀마크 같은 역할을 해 왔지만, 우리의 믿음을 “오직 성경”에 기초한다고 할 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신학적 콘텍스트의 영향을 받지 않고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다른 어떤 종교개혁 교의보다도 이 교의에 교회 파편화의 책임이 더 있는 것은 아닐까?

이와 같은 의문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얻고자 CT 편집인 마크 갤리가 교회에서 성경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많은 학문적 이야기를 해 온 학자, 마크 놀을 인터뷰했다. (그는 최근에 노트르담 대학교 교수직에서 은퇴했다.)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오직 성경) 사상은 마르틴 루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사상이 그의 삶에서 드러난 것은 언제입니까?

이 사상은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 및 교황에 대한 맹목적 복종을 변호하는 사람들과 논쟁을 하는 가운데 나왔습니다. 그는 직접 성경에 기대어 그들을 논박했습니다. 1521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 한 그의 이 드라마틱한 발언에서도 그렇게 했습니다.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는 오직 성경에 서 있었습니다.

다른 프로테스탄트들이 “우리가 축하하는 주님의 만찬은 상징적 만찬이라고 오직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친다”고 주장할 때 긴장이 생겼습니다. 그때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다. 맞지 않다. 주님의 만찬에 관한 성경 구절은 성경의 다른 모든 구절들 및 과거 신학자들의 최상의 해석들과 연결해서 함께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신학 전통들의 선택적 전용뿐만 아니라 해석학적 논쟁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오직 성경, 이 사상을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붙잡았던 것일까요?

‘오직 성경’은 그때나 지금이나 개인의 수준에서 성경의 메시지를 사용하는 길을 열어준 해방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성경’과 ‘만인 제사장’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오직 성경’은 내가 가령 스가랴와 이사야와 에스겔을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제시하는 의righteousness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과 그 기준에 내가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직 성경’은 성경은 열린 책이며, 최소한의 지능만 있어도 창조와 죄, 타락, 구속, 영적 성장, 그리스도 안에서의 은혜, 이런 큰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직 성경’의 이와 같은 관점이 우리 삶을 바꿉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토마스 빌니Thomas Bilney라는 영국 사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연구하면서 혁명적 변화를 경험합니다. 로마서의 사도 바울을 읽고서 그는 오직 그리스도께 소망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경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이해를 설교하기 시작합니다. 헨리 8세 치하의 억압과 해방의 격동기에 그는 소환되어 책임추궁 당합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철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양심에 가책을 느껴서 집에 돌아와서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는 불구덩이에 들어가게 될 거야.” 그는 에라스무스의 신약성경에서 발견한 것을 설교했습니다. 성경에서 그가 발견한 바로 그 구원의 메시지에 대한 헌신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습니다.

이와 같은 해방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많이 있습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은혜에 대한 성경의 큰 메시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가톨릭교회의 공식 가르침도 이와 유사하다고 말해야 공정할 것입니다. 물론 가톨릭 교인들에게 이 메시지는 교회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실제로 이것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오직 성경’은 가장 위대한 프로테스탄트의 선물입니다.
 

‘오직 성경’에 대한 또 하나의 일반적인 비판은 교회를 갈라놓은 약 4만에 이르는 프로테스탄트 교파들과 관련한 것입니다. 이 사상은 본질적으로 교회의 분열을 조장할까요?

“우리 교단은 유일하게 바르고, 나머지 다른 교단들은 신실하지 못하다.”실제로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에는 신학적인 문제가 있습니다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하나님이 성육신 하셨다는 사실이 기독교 신앙은 서로 다른 문화에 속한 서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특수화되기 마련임을 의미한다면, 하나님이 이와 같은 ‘차이의 근원’이시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나의’ 교단을 제외한 다른 모든 교단들을 덜 기독교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면, 이 땅에 있는 기독교가 높은 수준의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문 보기: 오직 성경]
 

Mark Galli, “Solar Scriptura” CT 2017:6; CTK 20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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