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종류의 사람을 위한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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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류의 사람을 위한 설교"
  • 해돈 로빈슨 | Haddon Robinson
  • 승인 2017.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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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포기하라. 당신의 논평, 예화, 유머가 어떤 청중게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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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넘게 목회자의 자리가 비어 있는 매사추세츠 렉싱턴의 그레이스 채플에서 여러 번 설교를 했다. 그 교회에는 굉장히 다양한 성도들이 있었다.

하버드 교수들과 고등학교 중퇴자들, 의사들과 변호사들과 미화원들, 정치 활동가들과 신문도 못 읽는 사람들, 수백 만 달러 자산가들과 최저임금밖에 못 받는 근로자들…. 게다가 인종과 피부색도 매우 다양했다.

이처럼 다양한 성도들 앞에서 설교할 때마다, 이 사람들 모두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책임감에 내 두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설교를 준비를 하면서도 나는 어떻게 하면 내 설교가 이 사람들 모두에게 제대로 가 닿을 수 있을지 마음을 졸였다.

설교자로서 우리의 임무는 이렇게 간단히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되는 것.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되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면면이 다양한 성도들 전체를 아우르는 설교에 실패한 목회자는 부러진 팔을 맞추는 법만 아는 의사와 같다. 환자가 복통을 호소하면, 그 의사는 그 환자의 팔을 부러뜨린 다음에 그걸 맞추려 들 것이다

다양한 청중에게 다가가려면, 나에게 자연스럽고 익숙한 것을 버려야 한다.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고전9:22) 바울이 이렇게 말했을 때, 그는 그저 전도에 관해서만 얘기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또한 회심한 사람들이 성장하도록 돕는 것에 관해서 얘기했던 것이다. “약한 사람들에게는”—약한 양심을 가진 신자들에게는—그는 약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그들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제한했다.

 

다양한 청중에게 설교하려면 설교자인 우리가 희생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에게는 유머를 사용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포기해야 할 종류의 유머도 있다. 소수집단에게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대로 이름을 붙이고 부르는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

우리가 재밌게 본 책이나 영화만 예화로 드는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 교육 수준이나 신앙의 성숙도가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게만 설교하는 자유도 포기해야 한다. 때때로 이러한 희생이 우리를 옥죄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할 것이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 [전문 보기 : "모든 종류의 사람"을 위한 설교]

 


Haddon Robinson, “Preaching to Everyone in Particu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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