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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그들에게 사로잡히다
김은홍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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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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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Park

리스 도심, 번화가에서 살짝 비켜난 허름한 중층주택 밀집 지역에 아가페 센터가 있다. 형형색색 그라피티들과 시커멓게 불타 버린 채 방치된 자동차에서 어렴풋이 저항의 기운마저 감도는 그런 골목들을 비집고 들어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한 블록 정도만 벗어나도 세계 최고의 관광 자원을 보유한 나라다운 관록과 맵시가 풍기는 그리스지만, 이곳은 적어도 겉모습으로만 봐서는 2010년 이후 이 나라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의 그림자를 아직 못 지우고 있다. 덕분에 집세가 싸다. 아가페 센터와 이곳의 가난한 이들로서는 우호적인 입지 조건이 아닐 수 없다.

9월 11일, 한여름 열기가 남아있는 아가페 센터 안으로 샘물교회 박은조 목사가 들어섰다. CTK 취재팀도 그를 따랐다.

안에 있던 “난민들”이 우리를 눈빛과 낯빛으로 환대한다. “파히마” “마수드” “하디” “마시”…. 아가페 센터의 유바울 선교사가 한 사람 한 사람 불러 우리에게 소개한다.

파히마, 아프간에서 온 그녀는 베를린에 먼저 가 있는 두 아들을 만난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어린 딸과 함께 난민 캠프에서 지낸다.

마수드, 서글서글한 눈매와 다부진 어깨의 그는 열세 살, 열두 살, 세 살 반, 그렇게 세 아이를 둔 가장이다. 그의 부친은 군인이었다. 군벌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카불을 떠나 이란과 터키를 거쳐 바다를 건너 이곳으로 왔다. “보트 피플” 출신이다. 지난 6월 스웨덴 교회에 깃든 난민 공동체에서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었던 그는 그 뒤로 그 교회로부터 설교 영상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유 선교사는 그를 “말씀에 은사가 있다”고 소개한다. “복음을 가지고 아프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의 꿈이다.

   
크르셰히르 이란-아프간 공동체: 박은조 목사와 함께 식탁 교제를 나누었다. 이 식당도 가끔 이들의 예배처가 된다.

하디. 그는 하자르 족 출신이다. ‘하자르’는 수니파가 다수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소수파인 시아파를 신봉하고, 인종적으로도 소수에 속하는 몽골계 종족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상대적으로 하자르 출신의 난민이 많은 데는 이런 이유가 더해진다. 그는 19살 때 고향을 떠났고, 그리스에 체류한 지 11년 됐다. 그리스 난민 지위 인정을 받은 그는 현재 미국 남침례교 엔지오의 난민사역을 돕고 있다.

마시. 그의 이름에는 “메시아”나 “천사”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그는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아프가니스탄을 한국처럼 변화시켜 주시기를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이름답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 형제들의 쉼터에서 만난 무스타파. 이란 출신인 그는 작년 봄, 북유럽으로 가는 국경이 막힌 직후에 그리스에 도착했다. 몇 차례 국경을 넘으려다 실패하고 불법입국자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유치장에서 누군가 건네준 성경을 보다가 주님을 만났다.

이제 익명의 “난민들”이 “파히마” “마수드” “하디” “마시” “무스타파”…, “형제”로 다가온다.

아가페 센터가 이곳으로 옮기고 박 목사도 첫 방문이다. “집세는 한 달에 얼마나 합니까?” 지하부터 1층, 2층, 3층까지 꼼꼼하게 방방이 살피고 챙긴다. 그도 그럴 것이, 박 목사는 유바울 선교사를 파송한 선교회 KCA의 이사장이다.

KCA는 아프간 피랍 사건 후에 아프간 선교에 뜻을 같이 한 몇몇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힘을 모아 세웠다. KCA는 그렇게 “아프가니스탄을 위한 한국인 교회”(Korean Churches for Afghanistan)로 출범했다. (나중에 사역의 범위가 확장되면서 ‘A’는 “ACTION”의 약자가 됐다.)

이야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그 여름이었다. 유바울, 그는 아프간에 사로잡혔던 그 샘물교회 단기봉사팀의 일원이었다.

   

아가페 센터 앞에 선 유바울 선교사와 박은조 목사. 센터 외벽 그라피티가 사진의 색감을 살려준다.

2011년 여름, “그리스에 아프간 난민들이 정말 많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샘물교회는 단기 봉사팀을 그리스로 보냈다. 박은조 목사와 의사와 간호사, 약사로 이뤄진 의료봉사팀, 그리고 아프간 피랍을 함께 겪은 형제자매들과 함께 그도 그때 그리스에 왔다. “그리스에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프간 난민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이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지….” 유 선교사는 그날의 기억을 이렇게 말했다. 유럽과 국제사회에서 “난민 위기”가 본격 거론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지금은 유엔과 EU가 나서 난민에 대한 국제 여론을 주도하고 있지만. 그때는 그런 도움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때 벌써 그곳에서 난민들에게 무료급식을 하고 있는 선교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 많은 아프간 난민들”은 2001년 9.11 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떠밀려온 이들이었고, 양용태 선교사가 그들을 먹이고 있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진료를 받고 식사를 했습니다. 저는 의사도 아니고 간호사나 약사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약봉지를 나누어 주면서 진료를 받고 돌아가는 그들을 안아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눈빛과 표정과 행동을 통해서 그들이 의지할 곳 없는 이국땅에서 얼마나 절박한 환경에 처해 있는지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유바울, 그는 그렇게 다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사로잡혔다.

아가페 센터는 “분립개척”을 준비 중이다. 박은조 목사를 “따라서 하는 것”이라고 가볍게 말했지만, 분립개척이란 규모와 내실을 전제한 이야기다. 유 선교사는 아가페 센터의 식구들이 포화상태라 느낀다. 난민이다 보니 한 건물에 들고나는 사람들이 많으면,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유 선교사는 페르시아어를 쓰는 이란인들과 페르시아어 방언의 하나인 ‘다리’어(또는 ‘파르시’어)를 쓰는 아프간 난민들이 그들의 언어로 스스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을 돕는 조력자로 남고 싶어 한다. 그는 “주도권”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어차피 그들은 떠날 사람들이다. 현실의 신분이 난민인 이상, 그들의 최종 도착지는 (북)유럽이나, 적어도 그리스보다는 더 나은 다른 제3국들이다. 더 나아가 그들의 궁극의 종착지는 고향, 고국이다.

때로 약간의 허무주의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움켜쥐려는 우리의 아귀힘을 풀어놓는다.

그래서 또한 더 절박하다. 그들이 곧 떠날 것이니,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 하나라도 더 주어야 한다. 복음 말이다. [전문보기: 난민, 그들에게 사로잡히다]

#종교개혁#난민#박은조#은혜샘물교회#샘물교회#그리스#아프가니스탄#터어키#이란#유바울#아프간 피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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