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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님께 영광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들
박성규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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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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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할까?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기도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11:36) 바로 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는 이유들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만물이 그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가 우주만물과 나를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4장은 이렇게 말한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태초에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지혜와 선하심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무에서부터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6일 동안에 창조하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래서 모든 것이 심히 선했다.” 우주 만물과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 그분의 창조가 있기에 오늘 우리가 존재한다. 우리 각자는 어머니의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이 만드셨다.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성부 하나님은 선택과 예정을 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 용서를 하시고, 성령 하나님은 그 구원의 복음을 믿을 마음을 주셔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만물이 그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그분이 섭리자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섭리는 ‘잡고 다스린다’는 뜻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제5장은 섭리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만물의 위대한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들과 그들의 언행심사를 보존하시고, 감독하시고, 처리하시고, 통치하신다.…이로써 그의 지혜, 능력, 정의, 선하심 그리고 자비의 영광을 찬미케 하신다.” 오늘 내 인생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섭리자로서 잡고 다스리시고 그 부족함을 채워주셨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주로 말미암아’ 살고 있다. 인간은 참으로 유한한 존재이다. 인간을 보면 대단한 것 같지만 무능할 때가 너무나도 많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낙심하고 좌절하는 인생이다. 작은 바이러스 하나에도 무너지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이처럼 우리는 절대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여기까지 올 수 없는 존재이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시기에 오늘 여기에 우리가 있는 것이다.

프란츠 조셉 하이든은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지은 위대한 작곡가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천지창조’가 극장에서 처음으로 연주되었을 때, 관객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당시 하이든은 몸이 아파서 지휘를 하지 못했다. 대신 다른 음악가가 지휘를 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 지휘자에게 박수를 보내자 그 지휘자는 “작곡가는 제가 아니고 저 발코니에 계신 하이든 선생님이십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뒤로 돌아서서 발코니에 있는 하이든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바로 그 때 하이든이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가 아닙니다. 모든 것은 하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께만 영광이 돌려지길 바랍니다!”

하이든이 했던 그 고백이 바로 로마서 11:36의 고백이다.

“만물이 그에게서 나고, 그로 말미암아 있고, 그를 위하여 있습니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기를 빕니다. 아멘.”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만물이 그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곧 그분이 심판자이시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제33장은 ‘최후심판’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로써 세상을 심판하실 한 날을 정해 놓으셨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모든 심판하는 권세가 성부로부터 주어져 있다. 그 날에 타락한 천사들이 심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살던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자기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의 전말을 밝히고 그들이 선악 간에 몸으로 행한 것에 따라서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법부의 재판관이나 운동경기의 심판이 공정하지 못하면 그를 신뢰하지 않는다. 반대로, 나의 문제를 공정하게 다뤄준다면. 우리는 그를 신뢰하고 고마워하고 칭송한다. 시편의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시68:5)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억울한 일을 풀어주실 유일한 분이시다. 그리고 우리가 잘 한 것에 대해서는 상을 주실 분이시며 동시에 우리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으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그분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러주셨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하나님에게 우리의 죄를 담당케 하셨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그 은혜로 우리는 구원을 받은 것이다.

뉴욕 라과디아 공항은 뉴욕의 판사였으며 시장을 지낸 피오렐로 헨리 라과디아를 기념하는 공항이다. 라과디아는 아주 좋은 판사였다. 한 번은 한 노인이 법정에 섰다. 죄목은 빵을 훔친 죄였다.
 

“전에도 훔친 적이 있습니까?”

라과디아 판사가 물었다.

“아닙니다. 처음입니다.”

노인이 대답한다.

“그렇다면 왜 훔쳤습니까?”

“배고픈데 돈이 없어서 그만 훔치게 되었습니다.”


노인을 쳐다보는 라과디아 판사에게 측은한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판결 내렸다. “노인이여,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죄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법대로 판결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벌금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그리고 라과디아 판사는 법정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노인이 빵을 훔친 것은 이 노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도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도 50센트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모자에 10달러 지폐를 넣고 법정에 있던 사람들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57달러 50센트가 모였다. 그 돈이 노인에게 손에 쥐어졌다. 노인은 10달러를 벌금으로 내고 47달러 40센트를 받아들고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라과디아 판사는 공의뿐만 아니라 사랑을 가진 자였다.

하나님은 라과디아 판사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공의와 사랑의 재판장이시다. 그분은 공의의 하나님인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 사랑은 10달러를 준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다. 바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를 위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들이신 성자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을 우리를 대신하여 아낌없이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찬송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죄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물 삼으시고 죄용서 하셨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이 큰 사랑을 받았기에 사도 바울은 고백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11:36)
 

이 고백의 적용과 실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린다는 진리는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까? 파스칼은팡세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고백하다가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순간 울었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신앙은 나의 고백이 있어야 진짜가 된다. 신학자 존 머레이는 로마서 11:36을 로마서 전반부를 마치는 결론이요 클라이맥스라 했다. 그 결론과 클라이맥스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모든 결론과 클라이맥스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이 되길 소망해야 한다. 모든 일을 마치는 결론에, 모든 일이 최고의 절정에 도달했을 때에 다른 누군가가 아닌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와 찬송이 우리 삶에 항상 있어야 한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전심으로’ 예배드리는 것이다. 찬양을 드리는 것을 보면 그 교회가 얼마나 건강하고 살아있는지를 알 수 있다. 전심으로 찬양을 올려 드리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에 자신의 온 맘과 정성을 다해서 찬양한다. 물론 우리 가운데는 몸이 너무 아프시거나 마음이 낙심이 되어서 찬양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1년 내내 찬양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 정도면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가 전심으로 찬양을 올려 드릴 때, 그 중심에는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려드린다는 신앙이 살아있음을 알게 된다.

나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섭리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심판하실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자. 예배 때에, 개인의 경건의 시간 때에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자.

그리고 우리 삶에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연습을 쓴 로렌스는 신학자도 대단한 지위를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평신도 수도사였다. 그는 수도원 부엌에서 일했다. 55세에 수도원에 들어가 25년을 지내다가 80세에 세상을 떠난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책이 수많은 성도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바로 그의 삶 때문이었다. 그는 말한다. “나는 일하는 때나 기도하는 때나 차이가 없습니다. 설거지를 하고 부엌일을 하면서도 나는 마치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일을 감당합니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식재료를 다듬으면서 그는 마치 성찬식에 참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연합의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았다. 그의 삶은 곧 예배였고, 그의 삶은 곧 성찬식이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로렌스의 삶은 얼마나 감동적인 삶이었을까? 또한 그의 삶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감동을 받았을까? 바로 이러한 삶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또한 말과 행동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삶의 예배로 우리의 말과 행동을 드리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0:31은 말한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그 일을 누가는 이렇게 증언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15:7)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기뻐하신다. 그래서 전도에 관한 성경말씀이 나올 때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표현이 나온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스펄전 목사는 “한 사람이 구원받을 때 천국의 예루살렘 거리는 구세주의 기쁨의 눈물로 강물을 이룰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기꺼이 자신을 내어 주신 것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와 이웃의 구원을 위해 전도하는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CTK 2017:12

 

이 글은FIVE SOLAS 종교개혁의 핵심가치(효민디엔피, 2017)의 일부를 저자 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의 허락을 받아 다시 엮은 것입니다.

#종교개혁#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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