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의 청중은 ‘구체적인’ 사람이다 [구독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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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청중은 ‘구체적인’ 사람이다 [구독자 전용]
  • 해돈 로빈슨 | Haddon Robinson
  • 승인 2017.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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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구체적일수록 더 보편적이다

ISTOCK 그리스도께서는 두 사람을 똑같이 대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복음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호기심 많은 바리새인에게는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우물가의 여인에게는 생명의 물이 필요하다가 말씀하셨다. 그는 각 개인에게 좋은 소식을 주셨는데, 그 사람과 접점이 있을 때 그렇게 하셨다. 신약의 목회서신들은 각양각색인데, 그것은 이 서신들은 똑같은 기본적인 신학을 다양한 문제들에 적용하기 위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에 맞서 부활의 교리를 변론한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바울은 동일한 진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은 사람들에 관하여 염려하는 신자들에게 전했다.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진리를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청중에게 맞게 그 메시지를 적용하시는 것을 본다. 진리는 그 진리를 듣는 사람의 개인적인 상황에 맞추어질 때 가장 강력하게 절감하게 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일부 설교자들은 청중을 배제시키지 않으려다가 설교를 일반론에 빠트리고 만다. 예를 들어, 내가 “화는 우리 모두를 괴롭게 만듭니다”라고 말하면, 나는 어떤 구체적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론으로 가득 찬 설교는 어느 누구에게도 구체적으로 가닿지 못한다. 한 메시지에서 두 세 유형의 사람들에게(매주 이 그룹들을 바꾼다) 구체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 놀라운 사실: 메시지가 직접적이고 인격적일수록, 더 보편적인 메시지가 된다. 나라면 다툼에 관한 예화를 이렇게 들 것이다. “당신은 룸메이트와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룸메이트에게는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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