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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히스기야’가 더 가치 있는 이유작은 성공이 궁극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것이 실패의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김은홍, 장세훈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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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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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으로 읽는 이사야서의 저자로 잘 알려진 구약학자 장세훈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의 논문 “Is Hezekiah a Success or a Failure?: The Literary Function of Isaiah’s Prediction at the End of the Royal Narratives in the Book of Isaiah”(히스기야, 성공한 자인가 실패한 자인가?: 이사야서의 왕들의 이야기 말미에 등장하는 이사야 예언의 문학적 기능)이 최근JSOT2017년 9월호(42권 1호)에 실렸다. 1976년 영국에서 창간한JSOT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구약 연구 저널)는 데이비드 클라인스David Clines, 필립 데이비스Philip Davies, 데이브 건David Gunn, 나다브 나아만Nadav Na’aman 같은 저명한 구약학자들이 편집위원으로 포진하여 철저하고 엄격한 심사를 거친 논문을 게재하는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구약학 전문 학술지이다.

 

언제 이 논문을 쓰게 되었나?

2014년 9월부터 2015년 8월까지 연구년 기간 동안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 신학부 방문 교수로 초청을 받아 연구하면서 쓴 논문이다.

 

이 논문을 쓰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최근의 이사야서 연구가 지나치게 편집비평학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데, 이런 방향과 다른 입장의 이사야서 연구를 제시하고 싶었다. 편집비평은 후대의 편집자가 의도를 가지고서 이사야서의 최종 형태를 편집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 후대 편집자의 시대적 배경 및 상황을 재구성하여 본문의 의미를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편집비평의 역사적 재구성을 통한 본문 읽기보다는 우리 눈앞에 펼쳐진 ‘본문 그 자체의 세계’를 그대로 존중하며 읽는 공시적 읽기를 선호한다.

둘째, 이사야 39장에 나타난 히스기야의 이미지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고 싶었다. 편집비평학자들은 이사야 39장의 히스기야를 이상적인 인물로 강조한다. 특히 자이츠 같은 학자는 므낫세로 하여금 그의 부친 히스기야의 긍정적인 신앙의 모습을 본받게 하려는 의도에서 이사야 39장이 편집되었다고 주장한다. 스위니는 바벨론 포로기의 편집자가 이사야 39장의 히스기야의 이미지를 이상화하여 바벨론 포로기의 백성들에게 또는 귀환한 백성들에게 미래의 희망을 제시하려 했다고 역설한다. 이와는 달리, 블렌킨숍은 이사야서 안에 히스기야에 대한 두 가지 다른 평가들, 곧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공존하는데 긍정적인 평가는 후대의 편집의 결과들이라고 추측한다. 그래서 이사야서의 대부분은 히스기야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이런 이데올로기적 영향을 받지 않는 부정적인 평가들이 종종 나타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사야 39장에 등장하는 히스기야의 이미지라고 보았다. 그러나 나는 히스기야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블렌킨솝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이사야서에서 히스기야에 대한 평가는 일관된 입장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사야서에서 히스기야는 성공한 왕인가 실패한 왕일까? 나는 이사야서에 등장하는 히스기야는 이상적인 왕, 성공적인 왕, 본이 되는 왕이 아니라, 오히려 실패한 왕으로 그려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이사야서에서 히스기야는 어떻게 실패한 왕으로 그려지고 있을까? 그리고 이 실패한 왕의 이미지가 전체 이사야에서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할까? 이것이 이 논문의 핵심 논점이다.

 

히스기야를 실패한 왕으로 이해하는 결정적인 열쇠는 무엇인가?

이사야서의 문학적 특징은 시의 형식을 취하는 예언 가운데 내러티브 형식을 취하는 이야기들(6-8장과 36-39장)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 이야기들은 왕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아하스와 히스기야 이야기로 불리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각각의 이야기 말미에는 왕들을 향해 선포되는 이사야의 예언(7:18-25; 39:5-7)이 등장한다. 특히 이사야 7장에 등장하는 예언은 이사야 39장에 등장하는 예언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며 이사야 39장의 히스기야를 평가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

먼저 이사야 7장의 아하스 이야기 말미에 등장하는 이사야의 예언의 배경을 살펴보자. 아하스 이야기는 열왕기하 16장과 이사야 7장에 등장한다. 그런데 둘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열왕기하 16장과는 달리 이사야 7장에서는 아하스가 하나님의 징조를 거부하는 불신의 왕으로 그려지고 있고, 이사야가 아하스에게 앗수르의 침략을 예고하는 예언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열왕기하 16장과는 달리 이사야 7장은 불신앙의 아하스와 그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사야의 역할을 매우 부각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아하스와 이사야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사야 7장에서 아하스는 북이스라엘 아람 동맹군의 위협 앞에서 두려워한다. 아하스가 그 위협을 당하게 된 이유는 그가 친앗수르 정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런 아하스를 찾아가 오직 여호와를 신뢰할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아하스는 이사야의 권고를 무시하고 친앗수르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자 이사야는 장차 유다가 앗수르로부터 더 큰 침략의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임을 예언한다(7:18-25). 특히 이 예언에서 이사야는 앗수르를 신뢰했던 아하스의 외교 정책을 비판한다. 이사야는 앗수르를 “세내어 온 삭도”(7:20, 새번역: “빌려 온 면도칼”)로 묘사한다. 여기서 “세를 내다”라는 히브리어는 군사적 동맹을 체결하기 위해 아하스가 제공한 대가를 암시한다. 다시 말해, 이것은 아하스가 북이스라엘과 아람 동맹군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친앗수르 정책을 펴면서 앗수르를 전적으로 의존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여호와보다도 앗수르를 의지한 아하스는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가? 이사야는 장차 유다가 앗수르의 공격으로 더 큰 고통에 직면할 것임을 예언한다. 다시 말해, 의지의 대상이 더 큰 재난의 원인이 될 것임을 경고한다. 흥미롭게도 이와 같은 이사야의 경고의 예언은 이사야 39장의 히스기야 이야기의 말미에도 동일한 패턴으로 등장하며, 히스기야의 행동을 평가하는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사야 39장에서 히스기야는 바벨론 사신들에게 자기 궁정의 모든 보화와 무기고를 보여준다. 히스기야의 이런 행동은 앗수르를 견제하기 위해 바벨론과 동맹을 체결하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PHOTO BY 김희돈

것이다. 앗수르를 의지함으로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동맹을 견제하려 했던 아하스와 마찬가지로, 히스기야는 바벨론을 의지함으로 앗수르를 견제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히스기야의 불신적인 정치적 술수에 대해 이사야는 단호하게 경고한다. 히스기야의 후손들이 바벨론으로 잡혀가는 비극이 발생할 것임을 예언한다. 결국 히스기야는 아하스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의지했던 그 대상으로부터 더 혹독한 재난을 당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하고 만다. 앗수르의 침략 앞에서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기적적인 구원을 경험한 히스기야였지만 이제 오히려 바벨론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바벨론의 침략의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이사야 39장은 히스기야를 이상적인 왕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오히려 실패한 왕으로 제시한다. 한 때 여호와를 의지하여 성공한 왕으로 그려진 히스기야는 결국 앗수르를 견제하기 위해 여호와보다는 바벨론의 힘을 의지함으로 실패한 왕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다면 이사야 39장에 등장하는 실패한 왕으로서의 히스기야는 이후의 본문과 어떤 연관성을 가질까? 이사야 40장 이후는 바벨론의 배경을 소개한다. 바벨론의 포로민들에게 가장 큰 유혹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방 신 숭배의 유혹일 것이다. 그래서 바벨론의 포로민들 역시 여호와를 신뢰하기보다는 오히려 바벨론의 신들을 숭배하고픈 유혹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아 실패한 히스기야의 모습은 바벨론 포로민들을 향하여 히스기야처럼 실패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경고의 메시지로 작용한다.

 

“실패한” 히스기야에 대한 이와 같은 관점이 우리 교회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성공을 경험했지만 결국은 실패로 마감한 히스기야의 이미지는 우리 교회를 향해서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은 성공에 도치된 나머지 헤어날 수 없는 실패의 구렁에 빠질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실패자 히스기야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왜 이사야 39장은 성공한 히스기야가 아니라 실패한 히스기야를 부각시키는 것일까? 그것은 후대의 백성들이 히스기야의 실패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구약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성공의 이야기보다 오히려 실패의 이야기를 더 많이 소개한다. 이스라엘의 역사 그 자체가 바로 불순종으로 인한 실패의 역사가 아닌가?

수많은 교인과 거대한 건물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우리 교회는 성공의 이야기보다는 오히려 선조들의 실패의 이야기를 통해 한순간에 실패의 심연으로 떨어질 수 있음을 명심하고 날마다 위기감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사야 39장의 히스기야의 실패상은 바울의 경고 우리 마음에 새기도록 이끌어준다.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CTK 2017:12

#히스기야#장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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