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열쇠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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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열쇠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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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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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sh Harrison Warren의 Liturgy of the Ordinary(일상이라는 예전)에서
 

나의 아침 계획: 가게에 들러 저녁에 먹을 반찬거리와 주방 세제를 산 뒤 회의에 간다. 그래서 나는 이를 닦고 조나단이 아이들을 활동수업에 데리고 가는 것을 도와준 뒤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아침을 먹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코듀로이 코트를 입고 어깨에 컴퓨터 가방을 들쳐 멘 뒤 문으로 향한다. 정확하게 열쇠를 놓아두려고 산 (그리고 청록색으로 칠을 한) 현관 테이블로 자동차 열쇠를 가지러 간다. 말린 라벤더를 꽂아 놓은 병과 우편물 더미 옆에 자동차 열쇠, 집 열쇠, 이웃집 열쇠, 그리고 어디 열쇠인지 기억나지 않는 (혹시나 해서 버리지 않은) 다른 열쇠 몇 개가 더 달린 열쇠 고리 두 개를 거기 두었다. [큐: 끼이익, 자동차 급제동 소리] 열쇠가 거기에 없다.

가방 옆 주머니, 어제 입었던 바지, 다시 내 가방을 차례로 뒤진다. 살짝 당황하기 시작한다. 코트를 벗는다. 부엌으로 걸어가 조리대를 살펴본다.

열쇠를 잃어버렸다. 열쇠와 함께 모든 균형 감각도 사라진다. 동시에 내 계획도, 차분함도 사라진다. 안전과 자유를 위해 사용하는, 즉 나쁜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내가 가야하는 곳에 갈 수 있게 해주는 이 도구가 갑자기 나를 구속하는 수단이 되어버렸다. 나는 꼼짝없이 발이 묶였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나는 ‘잃어버린 물건 찾는 몇 가지 단계’를 수행한다.

1단계. 논리. 지나온 곳을 다시 살펴본다. 열쇠가 있을 법한 곳을 살펴본다. 숨쉬기를 한다. 차분하게 이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별 일 아니다. 곧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단계. 자책. 모든 방을 다니면서 선반과 바닥을 살펴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자책하기 시작한다. “이런 바보. 도대체 열쇠를 어디에 둔거야?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지?”

3단계. 짜증. 좌절감을 느낀다. 저주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는 조금씩 더해간다. 내 탓, 남 탓을 번갈아 한다. 아이들. 분명히 열쇠를 가지고 놀다가 잃어버린 거야. 조나단이 가져갔나? 그에게 문자를 보낸다. 거기서는 아무런 도움도 오지 않는다. 하나님은 열쇠가 어디 있는지 분명히 아실 텐데. 그런데 왜 도와주시길 않는 거지? 2인치짜리 금속 물체 때문에 나는 살짝 신학적 위기를 맞는다.

4단계. 절박함. 열쇠가 전혀 있을 법하지 않는 곳까지 모두 살펴보기 시작한다. 닥치는 대로 서랍을 뒤지고 침대 밑을 들여다보고 벌써 살펴본 바지 주머니를 다시 확인한다. 투덜대면서.

시간을 확인한다. 9분 째다.

5단계. 마지막 몸부림. 멈추고 기도한다. 괜찮아, 숨쉬기를 한다. 스스로에게 바보같이 굴고 있다고, 과잉 반응이라고 말한다. 진정하자. 재빨리 나는 하나님께 균형감을 되찾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가톨릭 신자인 한 친구가, 뭔가를 잃어버렸을 때 성 안토니오에게 기도해달라고 부탁하라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양말 서랍을 열면서 추가로 중얼거린다. “오, 성 안토니오, 이게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제 말이 들리신다면 제가 열쇠를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겠어요?”

6단계. 절망. 나는 포기하고 소파 위에 털썩 주저앉는다. 열쇠는 절대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일은 절망적이다. 나는 절망적이다. 나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이 상황에 꼼짝없이 갇혀있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돈을 쏟아 부어 열쇠를 다 교체할 때까지는. 창문 밖, 문이 잠긴 내 차 옆에는 벌거벗은 나무와 총총 뛰어다니는 제비가 있지만,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헛되다. 아침을 망쳤다. 바보 같은 열쇠. 바보 같은 나. 바보 같은 지구. 바보 같은 우주.

그러고 난 뒤, 나의 과잉 반응이 약간 부끄러워지고 자책한다. 몸을 일으켜 1단계부터 다시 시작한다.

7분쯤 뒤, 나는 소파 밑에서 열쇠를 발견한다. 어떻게 거기 들어갔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 딱히 누구에게랄 것 없이 나는 소리를 지른다. “찾았다!” [큐: 할렐루야 코러스]

나는 빠르게 움직인다. 찻길로 들어선다. 가게에 들르는 것은 생략하고 곧바로 회의 장소로 향한다. 잃어버린 열쇠는 그저 그 날의 가벼운 사고, 대수롭지 않으며 금세 잊힐 15분 동안의 작은 사건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묵시apocalypse였다.

묵시는 문자적으로 베일을 벗김 혹은 드러냄을 의미한다. 분노, 불평, 자책, 저주, 의심, 그리고 절망 안에서 몇 분 간 나는 얼마나 내가 통제력을 쥐고 있으려 하는지, 그리고 실제로는 나의 통제력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엿보았다. 그리고 통제력의 부재 속에서 꼼짝없이 스트레스에 사로잡힌, 숨겨두고 싶은 내 안의 모습들이 잠시 드러났다.

 

테이프에 생긴
작은 흠집 같은

모든 것이 매끄러운 시기가 있다. 길게 늘어뜨린 축하용 색종이 테이프처럼 하루하루가 충분히 즐겁고 종종 생산적으로 쌩쌩 질주를 한다. 대체적으로 모든 것이 나의 계획대로 굴러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색종이 테이프가 살짝 찢어지는 것 같은 작은 문제가 발생한다. 갑자기 모든 것이 멈추고, 예상치 못한 도덕 이야기로 바뀐다. 통제력, 여유, 특권을 통해 예쁘게 꾸미고 관리하려고 애쓰던 궁핍함, 죄성, 신경증, 연약함이 순식간에 드러난다.

몇 주 전, 빨래 건조기, 식기세척기, 천장에 달린 선풍기가 몇 시간 안에 한꺼번에 고장이 났다. 빨래 건조기(우리는 빨랫줄이나 빨래방을 이용했었다)도, 식기세척기도(손설거지를 했었다), 천장 환풍기도 없이 살아온 세월이 훨씬 긴데도, 이 물건들이 동시에 고장이 나니 마치 내가 우주가 나를 제거 대상 리스트에 올린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것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작은 문제가 생기면 나는 조급함을 느끼거나 상황에 압도된다. 아니면 슬픈 소식에 마음이 눌리거나 친구를 염려한다. 그러면 홍수로 조금씩 물이 차오르는 것처럼, 한꺼번에 찾아온 슬픔과 혼란이 내 안에 점점 쌓이다가 어느 순간 나는 인내심을 잃어버린다. 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지른다. 고장 난 식기세척기 문을 필요 이상으로 세게 닫는다. 낮은 소리로 투덜댄다. 만약 내가 사자였다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곱씹는다.

하루 중에 일어난 이러한 불청객들은 우리의 삶과 더 넓은 세계의 엄청난 고통에 비하면 하찮다. 매일 사람들은 깊은 고통에 직면한다. 만성 통증, 마음을 찢어놓는 상실감, 절망. 나도 한 때 그런 깊은 슬픔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 계곡이 아니다. 단지 고장 나거나 잃어버린 물건이라는 길가의 도랑, 혹은 우울한 기분이나 원치 않은 방해물이라는 길 위의 움푹 팬 구멍 정도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이 일상적인 하루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장소며, 구세주께서 나의 사소한 화와 짜증 속에서 나를 만나기로 계획하신 곳이다.

이 순간들은 성숙과 성화를 위한 기회다. 이러한 과잉 반응과 쓴 감정 아래에는 진짜 두려움이 숨어있다. 잃어버린 열쇠는 내 자신과 내 주변의 이들을 돌보기 위해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을 드러낸다. 실패와 무능함에 대한 나의 두려움을 건드린다. 고장 난 식기 세척기는 돈에 대한 나의 걱정을 노출시킨다. 고칠만한 돈이 있을까? 또한 내가 편안함을 우상처럼 숭배하고 안락함과 편리함에 거짓 소망을 품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나는 그저 모든 것이 매끄럽게 굴러가길 원한다.

오늘 잃어버린 열쇠는 나의 내면이 길을 잃었음을, 내가 잘못된 것을 의존하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계시의 순간이 된다. 기분 좋고 화창하고 모든 것이 계획대로 이루어질 때 나는 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일이 살짝 틀어지고 계획에 차질이 생길 때 비로소 진짜 내가 누구인지 드러난다. 나의 틈이 드러나고, 나는 내가 정말로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꽤 괜찮은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필요 없다. 그분은 잃은 이들을 위해 오셨다. 그분은 상한 이들을 위해 오셨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찾으시고 온전함으로 안내하기 위해 오셨다. CTK 2018:1/2

「일상이라는 예전」Liturgy of the Ordinary은 한국IVP에서 2018년에 역간할 예정이며, 이 글은 IVP의 허락을 받은 것입니다.-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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