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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큰 소리를 기뻐 들으시는 하나님성경은 어떻게 하나님의 친구로서 우리가 그에게 여과 없이 말을 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샌드라 맥크래켄  |  Sandra McCrac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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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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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에 탁자 옆 의자에 앉아 있을 때나 혼자 운전할 때, 나는 큰 소리로 말씀드린다. 마침 그때 누군가 내 방에 들어오면,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면서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 큰소리로 말씀 드리면 나는 집중할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과 내가 우정을 나누는 습관이 되어가고 있다.

친구들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에서 그렇듯이, 예수님과 나 사이의 대화 주제는 실제적인 일에서부터 구체적인 바람과 심오한 질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오간다. “우체국에 들러도 괜찮을까요?” “올해 로드의 4학년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외로워요.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제가 알고 확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다윗이 시를 짓고서는 그것을 큰 소리로 읊었는지 궁금하다. 시편의 시들은 문자로 기록되기 전에 많은 세대에 걸쳐 노래로 불렸다고 한다. 나는 문자로 되어 있는 찬송과 기도문에 감사한다. 이것들이 있어서 내가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고, 또 기도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입에서 나오는 자연스럽고, 내 귀에 그 말소리가 들리는 기도는 마치 하나님과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평범하게, 하나님을 우리와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로 여긴다면, 억지소리일까?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명기 6:6-7에서 나는 넉넉하신 마음으로 우리를 초대하셔서 우리와 우정을 나누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을 강렬하게 느낀다.

찬송 작곡가 오스틴 마일즈Austin Miles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나 홀로 그 동산에 갔을 때,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던 그 때.

주께서 나와 함께 걸으시면서,

나와 함께 얘기 나누시면서,

내게 말씀하시네.

내가 그의 것이라고. [찬송가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원문의 직역—CTK] [전문 보기: 우리의 큰 소리를 기뻐 들으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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