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신들”과 함께하기에는 [구독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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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들”과 함께하기에는 [구독자 전용]
  • 이문식
  • 승인 2018.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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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필터링이 필요하다

 

REVIEWS 영화 〈신과 함께〉 김용화 감독 하정우 차태현 주지훈 김향기 출연
 

영화 〈신과 함께〉 가 최근 1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흥행 2위를 기록했다. 같은 제목의 웹툰이 원작인 이 작품은 한마디로 ‘판타지 신파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흥행으로 동시 제작된 2부도 흥행 성공을 거의 예약한 상태이다.

왜 이 영화가 한국을 넘어 아시아와 북미 시장에서도 이처럼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그 부제가 “죄와 벌”이듯이, 이 영화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보편적 감정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범할 수밖에 없는 죄의 문제를 (신파조로) 다루고, 또 그것에 관한 저승에서의 벌과 “업보”를 다루면서, 보편적 정의에 관한 문제를 그 나름의 방식으로 호소한다. 또 인간의 원초적 정서라 할 수 있는 ‘효’를 정면으로 다루는 이 영화는,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극도로 이기적인 삶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그들의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던 ‘불효자—자아’를 직시하고 반성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후기가 단순한, 그러나 직설적으로 명료하고 거부할 수 없는 이러한 명제로 채워지는 까닭이다: “착하게 살자.” “부모님께 효도하자.”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며 효도를 다짐하는 이 영화는 눈물을 흘리고 싶어도 울 수 없었던 대다수 현대인들의 메마른 정서를 촉촉하게 적시는 데 오랜만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시각특수효과(VFX)가 대규모로 투입된 판타지 그 자체에 어린아이들까지 엄청 재미있어 하게 만들었다. 〈국제 시장〉 이후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드문 영화로서 VFX를 통한 화려한 영상을 보는 즐거움과, 동시에 마지막에 터지는 신파적 울음으로 말미암아 정서적 보상도 톡톡히 베푸는 특성을 가졌으니, 말하자면 이 영화는 세대를 뛰어넘는 보편성과 대중성까지 확보했다. 아마도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 영화가 역대 흥행 2위를 넘어, 1위도 넘보는 이변을 일으켰다고 분석된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는 단순히 재미로만 보고 넘기기에는 어딘지 꺼림칙한 불편함이 있다. 이 영화에 짙게 깔려 있는 무속적 내세관과 재해석해 놓은 민속 신 캐릭터들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가 오늘 한국의 수많은 대중에게, 더 나아가 동양인들이나 세계인들에게 쉽게 무의식적 동의를 일으키는 이 현상은 또 무엇일까? 우리 그리스도인은 새삼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편의 영화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진 도전과 인지부조화 앞에서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무시하고 경시해 온, 그렇지만 우리가 그러는 사이에 시나브로 현대인의 무의식에 깊이 파고들어온 이 무속적 내세관을 한번 깊이 들여다보고 성경의 빛으로 조명해 볼 필요를 강하게 느낀다.


무속의 세계관 또는 내세관

한국의 무속사상에서 사후의 인간은 혼魂과 백魄으로 나누어진다. 사망 후에 혼은 유계幽界로 가고 백은 땅으로 가서 흩어진다. 그런데 이 혼이 한을 품고 현세에 방황할 때, 귀가 되어 재앙이 그 집에 임한다. 〈신과 함께〉에서 동생 수홍(김동욱)은 군대에서 총기 오발 사고로 억울하게 죽어 한恨과 원怨이 가득한 귀신이 된다. 무속에서는 이런 귀신을 자연신自然과 구별하여 사령신死靈이라 부른다. 무속에서 “천지신명이시여 일월성신이시여 비나이다 비나이다”라고 할 때, 이 신들은 자연을 신격화한 것이거나 자연에 내재한다고 믿는 정령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 것으로서, 일종의 자연신 숭배를 표현하는 것이다. 반면에 사령신에는 국가나 촌락공동체 씨족의 시조나 조상의 영이 포함되는데, 이것이 인간신 곧 사령신 숭배인 것이다. 대체로 후손들은 조상의 영이 유계에 가도록 잘 섬겨야 집안이 평안하고 후손이 무병장수한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조상신 숭배를 행하는 것이다. 반면에 여귀鬼, 잡귀雜鬼, 객귀客鬼는 유족이나 후손이 가족신으로 모시지 못한 것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한과 원을 풀지 못해 유계에 가지 못하고 현세를 떠도는 원통한 귀신, 원귀寃鬼가 되어 저주와 재앙,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신과 함께〉에서 군대에서 비명횡사하고 그 시신조차도 유기된 수홍의 영이 이런 원귀로 형상화 되었다. 이 원귀의 원한 때문에 현생과 저승마저도 뒤틀리는 장면은 이러한 무속적 내세관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와 같은 귀신의 재앙에서 벗어나려고 사람들은 무당이라는 영매를 통하여 원귀들의 원과 한을 풀어주거나, 또는 무당의 ‘몸주’를 통하여 이들을 쫓아내는 것이다. 보통 이런 무당의 몸주로는 특별히 영험하거나 힘이 있는 존재로 여겨지는 사령이 들어서는데, 주로 영아의 사령과 처녀총각의 사령이 들어선다. 그리고 특출한 인물의 사령은 앞날을 예언하고 재앙을 막는 영험한 귀신으로 숭배되는데, 조선 초에는 억울하게 죽은 고려의 마지막 장군 최영의 영을 몸주로 받은 무당들이 성행하였고 조선말에는 임경업 장군의 영을 몸주로 받았다고 주장하는 무당들이 성행한 것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신과 함께〉에서는 원귀의 원한을 풀어주고 수홍의 영을 저승으로 순탄하게 인도하여 현생과 저승의 질서를 회복하는 역할을 특이하게도 저승자사 변호사 강림(하정우)이 하고 있다.

무당이나 저승사자의 이와 같은 한풀이 역할을, 개신교 신학자 현영학은 일종의 예언자적 역할로, 즉 이것이 현생과 내세에서의 보편적 정의실현에 기여한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영매의 역할에 설명하면서 원한은 원망-복수-변혁-정의실현으로 해소되고 정한情恨은 탄식-체념-적응-해소로 이어지는 특징을 보이며, 전자를 예언자적인 것으로, 후자를 제사장적인 것으로 분류했다. 이러한 전제 하에 그는 “원한과 정한이 한의 두 얼굴이며, 우리는 이를 변증법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현영학은 샤머니즘에는 인간이 무당이나 저승사자를 통해서라도 현생에서 다 구현하지 못한 정의를 내세에서나마 실현하려는, “보편적 정의에 대한 인간의 선한 본질”을 드러내려는 속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원래 한국의 샤머니즘은 신라 후기부터 불교와 결합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사찰들에 가보면 삼성각이 있는데, 이는 산신을 숭배하는 장소로 원래 불교에는 이러한 샤머니즘적 산신숭배가 없다. 오직 한국 불교에서만 이러한 샤머니즘과 불교의 통합이 이루어졌다.

〈신과 함께〉에서는 49일간 저승 여행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49일 개념은 원래 샤머니즘에는 없고 불교에만 있는 내세관이다. 불가에서는 근본적으로 조상신의 개념이 없고 사후 영혼의 존재만 인정한다. 사후 영혼은 사망 즉시 황천길로 떠나 염라부로 가서 49일 만에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을 받아 징벌을 받거나 업에 따라 윤회하여 다시 축생이나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신과 함께〉에 나오는 염라대왕(이정재)은 샤머니즘이 아니라 전형적인 불교 내세관의 반영이다. 불가에서는 이와 같은 업보에서 벗어나려면 오직 득도하여 부처가 되어 윤회의 고해에서 벗어나는 길밖에 없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원래 불가에서는 오직 불공만 드릴뿐 죽은 조상신을 가정의 수호신으로 섬기는 조상숭배나 무당을 통한 염라대왕과의 접촉 또는 저승사자에 의한 원한 해소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고는 가르치지 않는다. 〈신과 함께〉에 나오는 주인공 주홍(차태현)이 겪는 49일의 저승 여행은 불교 내세관을 반영한 설정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인 49일간의 저승여행을 조선 500년의 통치 이데올로기였던 유교의 세계관에서는 어떻게 보았을까?

공자는 조상신에게 드리는 제사만 효의 연장으로서 인정하였을 뿐(論語 泰篇), “다른 귀에게 드리는 제사는 도에 맞지 않으며 복록를 구하는 것으로 아첨과 다름없다”(論語 爲篇)고 비판했다. 더 나아가 “사람을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기겠으며 삶을 모르면서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論語 先篇)라고 하였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論語 雍篇)고 권고했다, 조선 초 성리학자 정도전은 그의 책 〈삼봉집三峰集의 ‘불씨잡변’佛氏雜辨에서 “사람이 죽으면 혼기魂氣는 하늘로 올라가고 체백體魄은 땅으로 내려가니 자연으로 흩어짐이다. 사후 혼기와 체백이 다시 합하여 생명이 될 수 없다는 이치 또한 명백하지 아니한가”라고 하였다. 남효은은 그의 책 〈추강집〉秋江集의 ‘귀신론’鬼神論에서 “사람이 죽어서 형체가 이미 소멸되면 이理는 이理대로 기氣는 기氣대로 돌아가니, 어디에 그 마음이 있고 그 형상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처럼 조선 초기 성리학자들은 그들의 내세론에서 귀신의 존재를 현저히 부정하였으나, 조선 중기에 이르러 서경덕은 그의 책 〈화담집〉花潭集의 ‘귀신 사생론’鬼神 死生論에서 “비록 일편촉향의 기氣라도 그것이 면전에서 흩어지는 것같이 보이지만 그 여기는 마침내 흩어지지 아니한다”라고 하여,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희미한 단초를 놓았다. 그는 “흩어지지 않는 기”를 “귀”鬼로 명명하였는데, 그 흩어지지 않는 기간이 49일이라고 말함으로, 불교의 49제 이론과 조화를 이루었다.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샤머니즘을, 그리고 그 내세관이나 귀신 현상에 대하여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개혁주의 신학자이자 성경 주석가인 윌리엄 헨드릭슨William Hendriksen은 그의 저서 「내세론」(새순출판사 역간)에서 인간이 죽으면 그 영혼은 하나님의 생기로 형성된 것이므로 소멸되지 않고 영존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악인이나 선인이나 그 영혼은 소멸되지 않는다. 단지 악인의 영혼은 예수의 재림에 의한 종말 심판 때까지 스올(음부)에서 고통을 느끼며 대기하고, 의인 혹은 신자의 영혼은 낙원에서 안식하며 주님의 재림과 부활을 기다린다고 성경은 말한다. 음부에서 고통당하는 부자와 아브라함의 품에서 안식하고 있는 거지 나사로의 비유(눅16:20-31)나, 예수님이 한편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고 하신 말씀이 그 근거이다. 따라서 사후 인간의 영혼은 귀신이 되어 현생에 남아 인간들을 괴롭히지 못한다.

또한 성경은 귀신 현상은 타락한 마귀와 악령들이 죽은 사람의 형상이나 이름으로 인간들을 미혹하여 두려움과 친밀감 가운데 마귀 악령 숭배를 하도록 유혹하는 것이라 이야기 한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이런 귀신의 존재를 죽은 인간의 영으로 잘못 해석하여 종교적 숭배를 하는 행위를 엄중히 금지한다. “이방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은 귀신에게 바치는 것이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귀신과 친교를 가지는 사람이 되는 것을 나는 바라지 않습니다.”(고전10:20)

신약학자 레온 모리스Leon Morris는 이렇게 경고한다. “마귀는 사람이 쉽게 우상숭배한다는 점을 이용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우상에게 희생 제사를 드릴 때 그들은 아무 의미도 없는 중립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은 사실 악한 영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마귀와의 영적 교제에 들어가는 것이다.” 영국의 성경학자 버클레이Berklay도 고린도 주석에서 “마귀들과 악령들은 언제나 사람의 몸에 들어가려고 숨어 기다리고 있었으며 실제로 들어가면 그 사람의 몸을 상하게 하고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였다. 이 영들은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에 머물러 있다가 그 사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먹을 수 있을까? 고린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문제는 아주 심각한 문제였다”라고 했다.

〈신과 함께〉에 깔려 있는 동양적 내세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한국 사람들을 향한 문화적 선교 접촉점 확보를 위해서도 필히 심층이해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으로 이 모든 세계관들을 온전히 필터링해야 한다. 이 필터링 작업이 미흡할 때 문화적 혼합주의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신과 함께〉에 나오는 내세관을 성경으로 재해석하는 문화신학적 작업이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이 있게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CTK
 


이문식 광교산울교회 목사. CTK에 검은 사제들에 대한 영화 평을 비롯하여 여러 편의 글을 기고했다. CTK 20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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