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돌봄을 위해서 회복해야 할 것은 예배다. 심리상담이 아니다. [구독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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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돌봄을 위해서 회복해야 할 것은 예배다. 심리상담이 아니다. [구독자 전용]
  • 김선일
  • 승인 2018.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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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치료요법의 문화’라 불린다. 지난 20~30년 동안 스트레스, 트라우마, 힐링 같은 이전에는 생경했던 단어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간지 나는” 용어가 되었다.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그의 「한계비용 제로사회」에서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으로 인해 전통적인 노동들이 대폭 감소하는 대신에 새로운 일자리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새로운 일들은 주로 자동화가 해결할 수 없는 인간적 접촉과 공감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케어와 휴먼 서비스 분야일 것이라고 했다. 이에 화답하듯, 신학 교육과 교회 사역에서도 심리치료와 상담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상담학은 신학교 경영에 “효자” 학과로 견고히 자리 잡고, 목회자는 상담기술을 장착해야 가장 효과적이고 은혜로운 목회를 할 수 있다는 풍조가 확산되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전문적인 심리치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은 분명하다. 전통적 공동체 사회가 붕괴하면서 현대인의 고립과 단절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또한 교회 사역자들에게 진리의 강요에 앞서 인간을 섬세하게 이해하려는 자세와 기술이 요청되는 것도 마땅하다. 그런데 과연 인간을 심층 다면적으로 이해해서 인간 안의 내면적 역량을 끌어내는 심리상담이 기독교 목회를 구원하는 해법일까? 「예배가 목회다」Worship As Pastoral Care의 저자 윌리엄 윌리먼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주관적이고 순전히 직관적이며 심리학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소위 사람들에 대한 ‘목회 돌봄’을 강조하는 목회자들은 이러한 돌봄을 실행하면서 더욱 객관적이고 신학적-역사적이며, 윤리적 맥락에 대한 이해를 배제한 채, 기독교 사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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