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이슈 & 특집
"이러다가는 제주사람 다 죽는다"생명보다 높은 이념은 없다
민경중  |  CTK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4.01  
트위터 페이스북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큰일 났다. 큰일 났다.”

500미터 거리를 단숨에 달려 경찰서에 닿았을 때 아직은 꼭두새벽이었다.

“당신 누구요? 뭐 하는 사람이요?”

“나는 여기 교회 목사입니다.”

경찰서의 응원대장은 그가 목사란 사실을 확인하자 서장실로 안내한 뒤 자리에 앉게 하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1948년 11월이었다. 제주는 이미 봄부터 4·3사건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목사는 다급하게 말했다.

“오늘 새벽에 습격을 당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오늘 밤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차라리 내 소신이라도 밝히고 나서 죽는 한이 있어도 좋겠다는 결심으로 왔습니다.”

흥분하고 떨리는 목소리였다. 응원대장은 진정하고 자세히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조남수 목사와 문순형 씨는 그렇게 만났다.

문씨는 함경도 태생이며, 중국에서 독립군에 가담하여 항일투쟁을 하다가 해방 후 귀국한 사람이었다. 그는 석 달 전 4·3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 응원대장으로 임명을 받아 제주에 내려온 것이었다. 4·3사건이 일어나고 여름이 지나고 다시 가을로 접어들었지만 사건은 점점 광기만 더할 뿐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낮이면 대한민국이고 밤이면 인민공화국’인 세상이 몇 달째 이어지고 있었다. 낮에는 경찰과 서북청년응원대의 세상이었다. 그들은 ‘빨갱이’라는 의심만 들면 체포하여 처형하였다. 밤에는 반대로 남로당 무장대가 활보하였다. 낮 동안 산간에 머물던 그들은 민가로 내려와 우익의 흔적만 비쳐도 살해하였다. 지옥 같은 나날이 이어졌고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음의 자리로 내몰렸다. 무장대는 특히 교회를 습격하여 방화하고 살상한 뒤 납치하였다. 대개의 교회는 그들에게 적으로 비춰졌다.

그 무렵 모슬포교회에서 성인이란 소리를 들으며 존경을 받아오던 허성재 장로가 무장대의 습격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생전에 존경을 받아오던 허 장로가 한 말을 기억하였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서해야 제주도민이 살 수 있습니다. 우리끼리 서로 죽이는 광경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습니다.”

허 장로가 습격을 받은 다음 날 같은 교회 이백년 집사의 집도 습격을 받았다. 무장대는 이 집사가 없는 집에서 부인을 죽창으로 난자한 뒤 의복과 쌀을 훔치고 방화하였다. 그리고 며칠 뒤 조 목사의 집을 습격하였으나 다행히 조 목사 가족들은 살아났다. 이처럼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시간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못하였고, 군경과도 대화하지 못하였다.

이렇게 가다가는 제주 사람이 하나도 남을 것 같지 않았다. 이런 시간이 더 이상 지속되다가는 제주도민 모두가 죽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이 조 목사를 이 꼭두새벽 경찰서로 달려가게 만든 것이다. 조 목사는 응원대장과 마주앉아 단호하게 말했다.

“여러분들의 노고를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거리에 버려진 시체들을 보십시오. 밤에는 공비가 죽이고, 낮에는 경찰이 죽이니, 이렇게 가다가는 제주도민이 남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대체 백성 없는 나라가 어디 있답니까?”

응원대장은 조 목사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자기들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그가 제주도에 온 뒤 자신을 찾아온 첫 민간인이 조 목사라고 했다. 도민들이 그렇게 협조하기는커녕 무장대를 토벌하고 노획한 문서를 조사하면 쌀 양말 장갑 돈 등을 안 내준 주민들이 없을 정도였으므로 제주도는 온통 빨갱이 세상이라고 믿고 있었다. 응원대장을 비롯해 대부분의 우익은 빨갱이만은 모두 죽여야 나라가 된다는 입장이었다. 좌익의 눈이나 우익의 눈으로는 온 세상이 좌와 우, 그렇게 둘로 나눠져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죽이는 것만이 자신을 살리는 길이었다. 함께 공존할 길은 없어보였다. 게다가 좌와 우,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도 그들만이 희생자가 되어야 하는 세상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살려야 한다, 더 이상 살육은 멈춰야 한다는 게 조 목사의 생각이었다. 응원대장을 설득하자, 마음을 먹었다.

“대장님은 오해를 하고 계십니다. 밤중에 공비가 침입하여 위협하면 살기 위해서 일단 무엇이나 내주고 봅니다. 그렇게 협조했다고 해서 공산분자라 한다면 여러분들은 도민들을 다 죽여야 할 겁니다. 제가 알기로는 제주도에는 더 이상 공산주의자들은 모두 죽거나 일본 북한으로 도망친 상태입니다. 남은 사람들은 그저 양민들입니다. 죽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니, 어떻게든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조 목사가 생각한 근본대책을 이야기했다. 조 목사가 설명한 대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제주도 민중들을 잘 계몽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쌀이나 돈이나 양말 같은 것을 무장대에 내주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다만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 한 일이니 절대 죄가 아니다, 그러니 자수를 해서 그런 사실들을 말만 하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경찰이 민중의 적이 아니라 민중의 편임을 인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 하루속히 경찰의 공포분위기를 해소할 것을 당부했다. 조 목사의 간절한 호소는 응원대장을 움직였다.

“좋은 생각입니다. 그렇게 해봅시다.”

응원대장은 경비대장을 소개하며 함께 아침을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에 대한 불신을 하루아침에 해소하기는 불가능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천 여 명을 한 자리에 모으고 자수하면 용서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아무도 자수하지 않았다. 그 동안 경찰들이 만들어놓은 공포 분위기 때문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기왕 목사님이 좋은 제안을 해주셨으니 계몽 강연도 목사님이 직접 맡아주십시오.”

하지만 조 목사로서도 난처했다. 혹시 자수한 사람들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목숨을 잃게 된다면 그 원성이 모두 조 목사에게 미칠 것이 뻔했다. 이런 고민을 말하자, 응원대장이 맹세를 했다.

“우리는 덮어놓고 백성을 죽이기만 하는 사람입니까? 목사님이 계몽해서 자수한 사람 가운데 진짜 빨갱이가 있다 하더라도 절대 처단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도와주세요. 아니 아예 자수자가 나오면 그 자수자들을 목사님께 맡기겠습니다. 전권을 드리겠습니다.”

꼭두새벽 경찰서를 찾아가 자신의 소신을 말한 조 목사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깊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직하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사랑임을 조 목사는 뚜렷이 가르쳐준다. 그리고 그 사랑이 어디서부터 출발하였는지 알게 될 때 사람들은 비로소 사랑이 시작된 그 자리로 나아올 것이다.
 

제주 판 ‘쉰들러 리스트’의 발견

조 목사는 그 다음날부터 이른바 자수강연을 시작하였다. 연단에 올라선 조 목사의 마음이 뜨거워졌다. 알 수 없는 뜨거운 것들이 속에서부터 끓어올랐다. 아직 말도 꺼내지 못했는데 와락 눈물이 터져나왔다. 눈물이 끝도 없이 흘렀다.

조 목사의 눈물을 본 군중들 속에서도 어느새 훌쩍거리는 소리들이 들렸다. 왜 안 그랬을까.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뒤였다. 일제로부터 나라를 찾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정작 남의 나라 사람도 아닌 제 나라 사람들과의 이 슬픈 대결이 처절하고 안타까웠다. 울음이 조금 진정되었을 때 조 목사는 입을 열었다.

“여러분, 저는 기독교회의 목사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실 것입니다. 얼마 전 저도 공비의 습격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우리 군경 손에 죽게 될 운명입니다. 여러분이 공비들에게 돈을 주고, 쌀을 주고, 옷을 내준 사실이 공비에게서 압수한 명단에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명단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경찰은 그 명단에 따라 처단해 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처단할 판국이니 여러분의 목숨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는 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나는 군경과 담판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돈과 쌀을 낸 것은 절대로 죄가 아니라는 것, 다만 목숨이 아까워서, 다만 살기 위해서 할 수 없이 내주었고, 빨갱이기 때문에 낸 것이 아니라는 것, 그러므로 솔직히 자수만 하면 용서해 주기로 약속을 받았습니다. 또 한 가지 내가 약속하는 것은 여러분 중에 자수를 하였다가 만약 무슨 변을 당한다면 나는 여러분 앞에서 자결할 것을 맹세합니다. 여러분이 자수하지 않으면 그들이 쥔 명단에 따라 언젠가는 불려갈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나를 한번 믿어보세요.”

조 목사는 한 시간에 걸쳐서 연설을 계속하였다. 격정이 치밀어 말이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졌다. 연설이 끝나자 한두 사람이 일어나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목사님 자수하면 정말 아무 일 없겠지요?”

“그럼요, 그럼요. 잘하셨습니다.”

조 목사는 그들의 이름과 주소를 공책에다 적었다. 자수를 하겠다는 사람이 계속 일어섰다. 수십 명이 되었다. 너무 많아서 모두 기명하기가 어려웠다.

“이러지 말고 저와 함께 경찰서에 갑시다.”

그날 98명이 자수를 했다. 응원대장은 그들에게 다시는 과오를 범하지 말도록 훈시한 뒤 집으로 돌려보냈다. 소문은 금세 제주도 전역으로 퍼졌다. 부락의 책임자들은 다투어 조 목사의 강연을 요청하였다. 대정에서는 동네와 부락을 샅샅이 다니며 강연하였고, 한림 화순 중문 서귀에 이르기까지 수백 회 강연을 통해 2000여 명의 자수자가 나타났다. 조 목사는 군경들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그럴수록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편에 설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조 목사는 뚜렷이 보여준 셈이었다.

급기야 이런 일도 일어났다. 전택부 선생이 쓴 “토박이 신앙산맥”의 내용을 모슬포교회 100년사에서 옮긴 글이다.

어느 날 대정교회 유화평 전도사가 찾아왔다. 그는 자기 친척이 억울하게 총살 직전에 있다고 호소했다. 조 목사는 이름을 적어가지고 경비대 사령부에 들어가 허욱 경비대장을 만났다. 허 대장은 조 목사를 보자 먼저 말을 꺼냈다.

“목사님, 우리는 오늘도 눈물을 머금고 20명을 처단합니다.”

이 말을 듣고 조 목사는 유화평 전도사의 말이 맞는구나 생각하면서 말했다.

“허 대장님, 사실은 나도 그 정보를 듣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억울한 사람이 끼어 있습니다. 공비가 나타나서 삐라를 뿌리라, 뿌리지 않으면 죽인다기에 하는 수 없이 받아 주머니 속에 넣었던 것입니다. 만약 조금 시간의 여유만 있었더라면 삐라를 다 불태워버렸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처단한다면 정말 억울합니다.”

허 경비대장은 조 목사의 말을 듣더니 “절반 이상이 삐라 사건입니다” 하면서 처단할 20명의 명단을 펴놓고 “누굽니까?” 한다. 조 목사는 유 전도사에게서 받은 쪽지를 내주었다. 거기에는 동일리 사는 양남룡 부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허 응원대장은 그 쪽지를 자기 명단과 대조해 보더니 “틀림없군” 하면서 이름 위에 표시를 해놓고 “목사님, 그럼 이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세요” 했다. 그 순간 조 목사는 용기를 내서 이렇게 애원했다.

“허 대장님, 살려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공산 적색분자들은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지금 처단되는 사람들은 찌꺼기 분자들입니다. 억울하고 불쌍한 인간들입니다. 나머지 18명도 내게 맡겨 주세요. 내가 그들을 개과천선시키겠습니다. 그렇게 안 되면 그들 명단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책임지고 그들을 잡아다가 바치리다.”

허 대장은 처음에는 펄쩍 뛰면서 거절했다. 그러나 조 목사가 너무나 간절히 싹싹 빌면서 애원하니 허 대장은 감동이 되었던지 “에이 모르겠소. 다 데리고 가세요” 하는 게 아닌가. 조 목사는 허 대장의 손을 꼭 잡고 몇 번이고 절을 했다. 그리고 다 죽게 되었던 20명의 생명들을 데리고 교회당으로 왔다. 다 같이 울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생명을 다시 얻은 사람들은 선물 꾸러미를 들고 조 목사를 찾아와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조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은혜를 갚는다면 하나님께 갚아야지, 내게는 아무 공로가 없소. 앞으로 예수나 잘 믿읍시다.”

모슬포교회의 교인 수는 그렇게 꾸준히 늘었다고 한다. 80명이던 교인이 200명으로 늘어난 게 바로 그 무렵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생명을 얻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고마움의 마음은 여전히 모슬포의 모래처럼 사람들 가슴속에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그 마음이 1996년 5월의 어느 날 진개동산에 공덕비를 세움으로써 만개하였다. 이 비석이 기념하는 것은 무엇일까? 교회의 자리이다. 그 자리는 하나님의 선택이 머무는 자리이다. 세상의 길, 사람의 길과는 다른 온전한 길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길을 선택하여 가는 것을 일러 우리는 ‘믿음’이라 한다. 우리는 제주 4·3사건의 슬픔이 흥건한 모슬포에서 그 슬픔을 이겨낼 희망 한 줌을 얻어낼 수 있다. CTK

 

   
 





조남수 목사가 목회한 모슬포교회. 
교회 가까운 진개동산에 조남수 목사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모슬포교회에는 조남수 목사의 사료를 모은 박물관도 있다.

#4.3사건#제주#조남수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68길 98 5층  |  대표전화 : 080-586-7726  |  팩스 : 02-6919-1095
발행인 : 오정현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은홍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은홍  |  사업자등록번호 : 214-88-27116  |  통신판매업신고 : 제01-2602호
Copyright © 2018 Christianity Today K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