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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죽을 각오로 살았다4월 9일에 디트리히 본회퍼를 기리며
고든 맥도날드  |  Gordon MacDon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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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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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히틀러가 독일의 수상이 되고 이틀 뒤, 본회퍼는 라디오 설교를 통해 “국민의 바람에 굴복하는” 지도자를 경계하라고 했다. “국민은 늘 지도자를 우상처럼 높이므로 결국 그는 ‘잘못된 지도자’가 됩니다.…그런 지도자는 자신과 정부를 우상으로 변질시키며, 따라서 하나님을 우습게 여깁니다.”

그 설교는 중간에 끊어졌다. 아마도 히틀러를 지지하는 방송국 직원들의 소행이었으리라. 그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설교를 인쇄해서 배포했다. 그는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밝혔지만 이윽고 애국심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신학생들에게 전하는 그의 설교와 가르침은 점점 더 단호해졌다. “성경을 얼토당토않게 해석하지 말라. 성경은 자명하다.…하나님의 말씀은 증언하는 것이지 방어하는 게 아니다.…말씀을 믿으라. 말씀에는 더할 것이 전혀 없다.”

   
Lightstock

그 무렵 본회퍼의 나를 따르라가 나왔다. 이 역작에서 그는 사람들에게 자아를 버리는 삶을 추구하라고 촉구했다. 요즘 말로 바꾸면 본회퍼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본회퍼는 말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져야 한다. 제자도로 향하는 우리는…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1939년 디트리히 본회퍼는 뉴욕을 찾았고, 그가 독일로 돌아가면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교계의 친구들은 한사코 그의 귀국을 만류했다. 하지만 본회퍼는 독일로 떠나는 배에 몸을 실었다.

그는 말했다. “동포들과 함께 시련을 나누지 않으면 종전 후 독일 기독교 재건에 동참할 권리를 잃게 됩니다.”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성공이 눈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본회퍼와 여러 가담자들은 체포됐고 감옥에 갇혔다, 그는 1945년 4월 9일 새벽,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나치 패망 한 달 전이었다.

본회퍼는 형장으로 끌려가기 전까지 설교를 멈추지 않았다. 죽음을 앞둔 그에게 수감자들이 마지막으로 설교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본회퍼는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설교의 본문은 이사야의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였다.

그는 설교를 마치고 교수대로 끌려갔다. 전기에 의하면, 나치는 그를 처형한 후 “시신을 가방과 원고와 함께 불태웠다.” 원고라니! 본회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결코 설교를 멈추지 않았다.

#디트리히 본회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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