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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가진 이들의 섬김(교회로부터 단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섬기는 지적 장애를 가진 그리스도인들
에이미 줄리아 베커  |  Amy Julia Be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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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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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는 워싱턴 DC의 라르쉬 공동체 회원이다. 버지니아 알링턴의 세인트메리 성공회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정기적으로 치유기도를 해주고 있다. 


“이 아이는 커서 어떤 섬기는 일을 하게 될까? 빨리 보고 싶다!”

우리 딸 페니가 태어나고 몇 주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한 친구가 페니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페니는 태어날 때 다운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그 진단 하나로 이 아이의 장래에 대해 우리가 가졌던 많은 기대들이 사라져 버렸다. 그 자리에는 어두운 걱정들이 자리를 잡았다. 우리 딸이 태어나고 그렇게 처음 얼마동안, 나는 우리 아이가 누군가를 “섬기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워싱턴DC의 라르쉬 공동체는 이따금 행사를 연다. 앤드류 코미소(가운데)는 라르쉬의 지적 장애인들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핵심 인물"이다. 그가 두 친구 메러디스 거스키와 매트 폰더를 서로에게 소개시켜 주고 있다. 


친구의 말은, 꿈도 꾸지 않았던 딸아이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품게 해주었다. 페니가 내게 인내와 긍휼을 가르치리란 건 이미 예상했다. 이 아이를 통해 나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나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마주하게 되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또한 이 아이를 통해 지적,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연결되고, 그러한 관계로 나는 새로운 종류의 섬김에 발을 들이며 내 안의 새로운 은사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친구에게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나는 하나님께서 페니에게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 은사를 주셨는지 아닌지 전혀 고민해 보지 않았다. 나만 이럴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장애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도움밖에 못 본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주신 은사를 놓치게 된다.

   
프란선 쇼트는 공동체 사람들에게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에 맞춰 "하늘을 나는"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아직은 인정받지 못한, 섬김의 자격

페니는 이제 열두 살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페니가 어떤 섬기는 일을 하는지 말해 줄 준비를 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일이지 싶다.

페니는 진심어린 구체적인 칭찬을 건네려고 늘 애쓴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할 것 같으면, 페니는 반사적으로—충동에 가깝게—행동한다. 네 살 때 페니는 증조할아버지가 고관절을 다쳤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기도했고, 몇 주 동안 시도 때도 없이 할아버지가 나으셨는지 물었다. 이제는 좀 더 나이를 먹어서인지 사람들에게 직접 관심을 표현할 줄 안다. 내 친구가 쇄골을 다쳤을 때, 이웃집이 이사준비를 하고 있을 때, 친구가 독감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페니는 곧장 사랑과 관심을 담은 편지를 썼다.

“우리는 너무나 자동적으로 장애는 곧 ‘도움이 되지 못함’이라고 가정한다.” 신학과 장애 여름 강좌Summer Institute on Theology and Disability라는 워크숍의 디렉터인 빌 가벤타는 Journal of Disability and Religion(장애와 종교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물음표를 던진다. “모든 사람들에게 저마다 은사, 목적, 소명, 천직이 있다면, [그래도 이런 가정이 성립할까]?”

가벤타의 말처럼, 우리 대부분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받기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베푸는 사람도 되고 싶어 한다. 장애를 가진 이들도 전혀 다르지 않다. 나처럼 내 딸도 깨어진 존재이면서 또한 은사를 받은 존재라는 그 갑작스런 자각을 통해 나는 페니에 대해, 그리고 다운증후군, 자폐증, 중증 발달지체 같은 상태를 가진 다른 사람들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도 교회가 이 세상에서 사랑의 일을 할 때 기여하도록 성경께서 준비해 두신 이들이다.

그렇다. 나에게는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을 도울 수 있는 은사가 있다. 그러나 나는 도움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그들을 통해서 채워져야 하는 부족한 것들이 있다.

   
 

최근에 페니는 목사님께 생일축하 카드를 받았다. 페니는 이렇게 답장을 썼다: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목사님의 말씀에 눈물이 났어요. 하나님은 목사님도 사랑하셔요.” 목사님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담은 편지를 쓰는 중학생이 얼마나 될까?

어쩌면 다른 사람을 섬기는 페니의 적극성이 유별난지도 모르겠다. 나는 우리의 이러한 경험이 정말 보기 드문 일인지 알고 싶은 마음에 친구나 동료, 온라인 커뮤니티를 찾는다. 그러면 반응이 물밀듯이 밀려든다. 저마다 경험은 다르지만,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하나다: 예수님이 제자로 부르신 모든 사람들의 사역을 통하여 힘 있고 굳게 서 있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는 아직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제사장 직분이 남아 있다.

그레고리 리터라는 청년이 있다. 서른셋의 이 젊은이는 뉴저지 리지우드의 프렌드 투 프렌드 커뮤니티 교회의 성가대원이다. 이 교회 주일 저녁 예배 참여자 120명은 거의 대부분이 지적 장애인이다. 리터는 어릴 때 바이러스성 뇌염을 앓았고, 그 때문에 복합 신경변이와 인지장애가 생겼다. 그의 교회에는 “기쁨이 있다”고 그가 나에게 말했다. “이 기쁨과 견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기쁨뿐일 겁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워요.”

주일 저녁에 성도들이 도착하면, 장로 한 분—전반적 발달지연Global Developmental Delay 장애를 가진 존 코션다라는 이름의 남성—이 회중에게 예배 말미에 함께 나눌 기도제목을 묻는다. 기도제목을 종이에 적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큰 소리로 말하는 이들도 있다.

“전에 내가 몸담았던 여느 곳과 달리, 이 교회의 성도들은 가족과 친구와 이웃을 위한 아주 깊은 수준의 기도제목을 나눕니다.” 이 교회의 죠앤 반 산트 목사는 말한다. “이들은 푸에르토리코, 텍사스 등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까지 폭넓게 기도합니다. 한 주간 그룹 홈에서 수많은 뉴스를 듣게 되는데, 이들은 그것들을 전부 기억합니다. 이렇게 이들은 지역사회를 섬기는데, 정작 지역사회는 이 사실을 모릅니다.”

   
 

매임 없는 기도

요컨대, 기도는 지적 장애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두드러진 방법이다. 로리 갈람보스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전문 보기: 장애를 가진 이들의 섬김]
 

에이미 줄리아 베커 White Picket Fences: Turning Toward Love in a World Divided by Privilege(NavPress, 2018 출간예정)의 저자이다. 코네티컷 서부에서 남편, 세 아이와 살고 있다.

Amy Julia Becker, “Willing & Able” 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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