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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찾아온 질병의 사색
홍승영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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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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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가지_홍승영 목사의 목회 이야기


자기 입원을 하게 되었다. 금요일 밤 기도회를 인도하면서 몸 상태가 좀 이상하다 느꼈다. 토요일 늦은 밤이 되자 왼쪽 다리가 덜렁거리는 것 같았다. 7년 전, 갑자기 찾아온 추간판탈출증(흔히 “디스크”라고 하는) 때문에 수술 받은 일이 있었다. 사실 갑자기 찾아왔던 것은 아니었다. 통증이 지속되던 수개월간 의사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내가 너무 튼튼해서 다리도 척척 올라가고 발가락도 잘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주일 2부 예배를 드리면서 왼쪽 발가락에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조심히 주일 사역을 마치고 월요일 낮에 병원을 찾았다. 바람 빠진 고무장갑처럼 덜렁거리는 발가락을 본 의사는 황급한 표정으로 내 등을 떠밀었다. “목사님, 이럴 시간 없어요. 어서 응급실로 가세요. 지난 번 수술 받은 병원으로 가시는 것이 좋겠어요. 마비된 것이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디스크 질환의 환자에게 발가락의 상태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외통수에 걸린 말처럼 꼼짝 못하고 대학 병원의 응급실을 찾았다.

엑스레이니 씨티CT니 엠아르아이MRI니 하는 것들을 차례로 찍었다. 심전도 검사와 수술에 필요한 몇 가지 검사가 이어졌다. “교수님이 저녁에 수술하실 거예요.” 응급실 의사의 말이 너무도 무심하게 들렸다. ‘나 진짜 수술 받나 보다…’ 기가 막혔다. 7년 전의 수술 이후로 나름대로 허리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자세도 바르게 하려고 애썼는데…

“그럼 뭐해요. 내가 무리하지 좀 마라고 그렇게 부탁했잖아요.” 동동거리며 따라다니던 아내가 울먹인다. “나 별로 무리 안 했어요.” 괜히 한마디 했다가 잔소리만 더 들었다.
 

예견하고 아픈 사람은 없겠지만, 질병은 너무나도 갑자기 찾아왔다. 그것은 삶을 정지시키는 능력이 있다. 모든 계획과 만남이 취소되었다. 늘 다음에 할 일을 생각하던 현실에서 떠나니 시간이 멈춘 듯 했다. 적어도 나의 세계는 정지된 것이다. 하지만 교회와 기타 사역들은 계속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그런 현실이 거짓말 같았다. 통증이 시작되면 아픔에 빠져들고, 잦아들 때면 스스로를 자책했다. ‘자기 관리도 못하는 사역자…’ 내가 붙여준 내 이름이 되었다.

꽉 짜인 시간표가 떠나자 하나님께서 내 삶에 채우기 원하시는 것이 찾아왔다. 누구나 그렇듯이 갑자기 찾아온 질병은 가족의 소중함을 보게 했다. 내가 누운 침대는 이렇게 큰데, 보조 침대에 쪼그려 잠을 청하는 아내를 보는 것이 불편했다. 입원한 다음 날부터 집에 가서 자라고 잔소리를 시작했다. 내가 좀 못된 편이다. 아내는 “거동도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두고 가냐”며 이 침대가 편하다고 했다. 그런 아내가 고마운 내 자신이 다시 불편해졌다. 하루 한번, 전화기 너머로 듣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달달한 목소리는 일곱 살이 지나면 사라진다던 생각은 착각이었다. 아빠를 사랑하는 자녀의 마음을, 마음으로 듣지 못했을 뿐이다.

시편 68:6은 하나님이 좋으신 분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고독한 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시며….”

자기 관리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 질병으로 정지된 삶의 고독에 빠진 때에는 가족과 함께 있음을 감사하게 된다. 누군가의 고통이 그로부터 떠나가기를 가족만큼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예수님은 거라사의 귀신들린 사람을 치유하시고 떠나보내셨다. 그가 치유의 은혜를 입은 것을 가족에게 알리게 하신 배려였다(막5:1-20). 그의 가족이 얼마나 행복해했을 지를 상상해보라. 질병은 가족이 있음의 은총을 감사하게 한다.

입원 열흘째 되었을 때 장로님들이 다시 찾아왔다. “목사님이 안계시니까 교회 일들이 더 잘되고 있습니다.” 위로하려고 하는 말인 줄 알기에 고마웠다. 교회의 사역들이 더 잘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계속 전진하고 있었다.

문득 7년 전 입원했을 때가 떠올랐다. 담임목사로 사역을 시작했던 그 해에 이 병원에서 진단 받고 이틀 만에 수술하게 되었다. 갑작스런 입원이었다. 옆 병동에는 나이 많은 권사님이 노환으로 입원해 있었다. 수술을 앞둔 밤에 권사님을 찾아갔다. 왜소한 노인이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손을 잡고 동그란 등을 쓰다듬으며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 노 권사님의 통증은 잦아들었고 나는 내 병실로 돌아왔다. 그날 밤 권사님은 평안하게 잠 들었고 다음날은 천국에서 깨어났다. 수술을 받아야 했던 나는 담임목사가 되고 처음 있는 성도의 장례를 집례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내내 아쉬워했다. 하지만 내 생애 가장 은혜로운 천국 환송이었던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임을 알았다.

아프면 아무것도 못하게 될까? 7년 전의 그 밤, 나는 환자였기 때문에 권사님의 지상생애 마지막 밤을 돌볼 수 있었다. 오래전 일본 선교를 마치고 돌아온 고 하용조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아파도 됩니다. 아파도 전도할 수 있고, 아파도 사랑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사역이 있습니다. 건강해서 사역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하 목사님은 수술을 받을 수도 없을 만큼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다. 설 수 없어 의자에 기대선 그 환자 목사님은 하늘처럼 웃으며 그 다음의 계획을 이야기 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그 때에 맞는 사역을 주신다고….

입원 한 달이 지난 지금, 나는 퇴원하여 재활에 열심이다. 기도했던 것처럼 수술은 받지 않았다. 나와 우리 가족과 사랑하는 성도들에게는 기적이다. 치유의 기적을 모두가 사모하지만, 모든 치유의 기도가 응답되지는 않는다. 전도하며 치유의 기적을 많이 일으켰던 바울이지만, 그가 아들처럼 사랑했던 목회자 디모데의 질병을 고칠 수는 없었다. 바울 자신에게도 심각한 질환이 있었지만 치유 받지 못했다. 하지만 치유와 치유 받지 못함이 모두 성령의 은혜 안에 있었다.

치유의 은혜가 있을지라도 언젠가는 다시 질병을 만나게 되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놀라운 기적을 누렸던 중풍병자라도 세상을 떠났겠고, 죽었다 살아난 나사로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도 아니다. 천국을 향하는 순례자와 같은 성도들에게는 질병과 치유와 삶과 죽음이 모두 과정일 뿐이며, 모든 과정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전문 보기: 갑자기 찾아온 질병의 사색]
 

홍승영 서울 송파구에 있는, 요셉의 무성한 가지처럼(창49:22)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참되고 아름다운 가지가 되기를 소망하는 장지교회 목사. 스무 살에 어린이 설교를, 서른 살에 어린이방송을 시작했고, 마흔을 조금 넘긴 나이에 담임목회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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