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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목숨을 끊었을 때늘어나는 자살 현상...그리고 교회에 희망의 메시지
모건 리  |  Morga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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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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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ylor Castle


국 기독학생회 출판사(IVP)의 편집장 앨 쉬는 결혼한 지 9개월 되었을 때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가 목숨을 끊으셨다.” 어머니가 그에게 말했다. 그 소식을 들을 무렵 쉬와 그의 아내는 부모님을 찾아뵐 계획을 갖고 있었다. 58세의 아버지는 뇌졸중 이후 부분마비가 왔고, 극도로 좌절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쉬는 자살에 대해 연구하고 조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얻은 답을 2002년 초판 이후 올 해 다시 출간한 Grieving a Suicide: A Loved One’s Search for Comfort, Answers, and Hope(자살을 슬퍼하다: 사랑하는 이들의 위로와 해답과 소망 찾기)에서 찾을 수 있다.
쉬는 아버지의 자살로 인해 자신이 겪은 슬픔과 내적 갈등을, 그 고통에 대해 공동체가 보였던 최선의 반응과 최악의 반응을, 그리고 자살한 그리스도인은 지옥에 가는 것인지에 대해 CT 부편집장 모건 리에게 털어놓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살로 잃는다는 것은 어떤 걸까요?

상담 전문가들은 이런 유의 슬픔을 복잡한 슬픔 또는 복잡한 사별이라고 부릅니다. 슬퍼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슬픔과 트라우마를 함께 겪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은 평범하고 있음직한 일이지만, 자살로 인한 사별은 트라우마를 동반합니다. 자살의 트라우마를 겪는 과정에서 평화에 이르는 쉬운 길은 없으며, 슬픔의 여정에 온갖 생각과 감정이 주기적으로 반복됩니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이 슬픔이 공격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군요.

그렇습니다. 슬퍼하는 사람들은 고뇌, 고통, 또는 살아남은 사람으로서의 죄책감과 수치심 등, 그 어느 것이든 수없이 많은 감정들을 공통적으로 겪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했을 때 자기가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나는 이런 일이 생길 것을 알지 못했을까? 왜 나는 이 일을 막기 위해 뭔가 하지 않았을까?’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낍니다. ‘이런 일은 내 가족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뭔가 잘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수치스럽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또한 갈등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자살이 일종의 살인이라면 우리는 그 살인에 대해 분노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살인자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갈등과 자기파괴 속에 우리를 남겨둔 사람으로 인해 슬퍼하고, 동시에 분노하게 됩니다. 분노는 정상적이므로, 그것을 가두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실에 대한 자기 파괴적 반응에 대해 주의해야 합니다. 술이나 마약을 복용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사랑하는 사람처럼 똑같은 행동을 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살한 사람의 마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이해해 보려고 애쓰다가 총을 든 채 거울 앞에 또는 발코니 턱에 설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기 파괴적 반응에 주의해야 하며, 공동체가 우리를 지켜보게 해야 합니다.
 

아버님의 자살 이후 교회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았습니까?

우리가 출석한 지 일 년이 못되었지만, 당시 목사님 부부는 미네소타에서 7시간 운전하여 장례식에 오셨습니다. 우는 사람과 함께 울고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라는 위대한 메시지를 행동으로 보여 준 것이지요.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사람들은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도, 판에 박힌 짧은 해답이나 빠르게 사태를 수습하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또는 “아버지에 대해 기억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요?” 이런 말이나 질문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뿐만 아니라 그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기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됩니다.

로마서 8:28 같은 구절―“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을 제시하거나 “하나님에겐 계획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의도는 선하지만 고통을 주는 행동입니다. 친척 한분이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이겨내면 더 강해질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너의 아버지는 뇌졸중과 좌절을 이겨낼 만큼 강하지 못해서 자살을 했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선한 의도에서 “너는 이것을 이겨낼 수 있어”라는 뜻으로 한 말이 “너의 아버지는 이겨낼 수 없었어”로 들렸던 것입니다.
 

자살로 죽은 그리스도인들은 지옥에 갈까요?

자살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이며 자살로 죽은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지옥에 간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살을 한 후에는 자살에 대해 고백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용서를 받을 수 없다고 믿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성경보다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중세 신학에서 온 것입니다. 성경은 자살이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결코 자살과 동일시되지 않습니다. 삼손 같은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조 가운데 포함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8장에는 “사망이나 생명이나” 심지어 자살에 의한 죽음조차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는 약속이 있습니다.

최근에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는데, 한 청취자가 전화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항상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고 믿어왔어요. 이러한 믿음이 제가 자살하는 것을 막아왔지요. 그런데 지금 저는 혼란스럽네요. 자살한다고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면 사람들이 (자살의 결과에 대한) 부담감에서 벗어나지 않을까요?”

나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글쎄요, 성경은 절대로 자살을 적극 지지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사울 왕부터 유다에 이르기까지 일곱 건의 자살 사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부정적으로 묘사됩니다. 그 자살들은 결코 그 각 사람들의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살이 영원히 정죄 받아 마땅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자살을 비극이라는 문학 범주에 놓습니다. 그리스 문학이나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 누군가가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어떤 치명적인 부조리에 의해 생을 마감합니다. 그 비극적 영웅은 인생에서 무언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죽습니다.

그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 자살로 잃어버린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자살한 사람의 행동을 변명해 주지는 않지만 우리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공감하도록 돕습니다. [전문 보기: 아버지가 목숨을 끊었을 때]

 


Morgan Lee-All Hsu, “When Dad End His Life” CT 20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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