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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보다 더 무서운 사랑의 얼굴나는 적처럼 달려드는 낯선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김지찬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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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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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ORD 나를 바꾼 말씀No.1 창세기 32:24-32
 

   
 

는 할아버지가 지병의 치유를 위해 처음으로 예수를 영접한 가정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의 오랜 병치레로 그나마 있던 논과 밭을 다 팔게 되어 더 이상 농사를 짓기 어렵게 되자, 아버지는 무작정 서울로 올라오셨다. 그 덕분에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수는 있었지만 집안 형편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결국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등록금을 못내 휴학을 했다.

게다가 오른 쪽 귀에 물이 들어가 중이염을 앓게 되었지만 병원은커녕 약국에서 약을 사먹지도 못할 형편이라 오랫동안 중이염을 달고 살았다. 믿음으로 병이 낫고 싶은 생각에 나는 방학이면 기도원들을 전전하며 부흥회에 참석하였고 권사님들을 따라 산 기도를 다녔다. 그러나 중이염을 고치진 못했다. 나는 복학시켜주시고 귓병 낫게 해주시면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을 할 수밖에 없었고, 끝내 대학 입시에서 재수까지 하는 우여곡절 끝에 서원을 지키기 위해 신학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지만 오랜 가난과 질병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런 나에게 하나님은 인자하고 자상하신 분이 아니었다. 신학생이 되고 교회에서 유초등부 전도사를 하면서도 이런 생각은 쉽게 지울 수 없었다. 번역 일을 해서 생긴 여윳돈으로 스물여섯 살, 그러니까 신학대학원 1학년 때 병원을 찾았을 때에는 오른 쪽 청각을 모두 상실한 뒤였다. 그 때의 충격은 너무나 컸다. 하나님이, 나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낯선 적처럼 느껴졌다.

하나님, 사랑하는 자녀라면 모든 좋은 것을 주시면 될 것이지 왜 저를 이토록 가난하게 하셔서 휴학에 청력까지 잃게 하십니까?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글씨 임동규

야곱을 공격하는 하나님에 눈 뜨다

하나님에 대한 나의 이러한 부정적 인식을 한 번에 바꾸어 놓은 것이 얍복 강가에서 낯선 이와 씨름하는 야곱의 이야기이다. 그 밤 그 강변에서 야곱을 공격한 적대적인 낯선 사람이 사실은 사랑의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개안”開眼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 체험은 하나님에 대한 나의 인식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나의 정체성을,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었듯이, 바꾸어 놓았다.

야곱이 식구들을 데리고 얍복 나루를 건넌 후 홀로 있을 때 한밤중에 낯선 이가 야곱을 공격했다: “뒤에 홀로 남았는데, 어떤 이가 나타나 야곱을 붙잡고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하였다.”(창32:24) 밤에 야곱을 공격한 이가 누군지는 우리도 이 에피소드의 첫 부분에서는 알 수 없다. 성경 기자는 그를 가리켜 “어떤 이”(새번역; 개역개정은 “어떤 사람”)라고만 밝힐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토리 전체를 안다고 해서 그가 천사 또는 하나님이라고 전제하고 읽어서는 안 된다. 그저 어떤 이가 야곱을 덮친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야곱 역시 처음에는 그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어떤 이”가 야곱을 공격한 것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이 “어떤 이”를 만나기 전에 야곱은 자기 식구들을 인간 방패로 삼고 자신은 맨 뒤에 남는다. 에서가 공격하면 앞서 간 식구들을 희생양 삼아 도망치려는 속셈이었다.

그런데 그가 홀로 남아 있을 때 뜻밖의 일이 일어난다. 누군가가 그를 공격한 것이다. 홀로 남아 있던 야곱은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이제 홀로 불의不意의 적과 한판 씨름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야곱은 그 씨름을 어떤 자세로 했을까? 일정한 게임의 규칙에 따른 그레코로망형 레슬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한 사람이 쓰러질 때까지 계속되는 이종 격투기 같은 사투에 더 가깝지 않았을까? 씨름을 하는 둘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갔는지도 언급이 없다. 어쩌면 그날 그 강가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 흥미롭게도 밤새 사투를 벌인 끝에 야곱은, 여태까지 인생살이에서 그래 왔던 것처럼, 그를 이기고 만다: “그는 도저히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창32:25)

야곱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아버지를 속여 형 에서의 장자권을 가로채고, 외삼촌 라반이 열 번이나 삯을 바꾸는 계략에도 끝내는 아내 넷과 아들 열하나를 얻고 수많은 가축을 소유하는 데 성공한 천부적 싸움꾼 아닌가!

그런데 바로 그 때 갑자기 모든 것이 역전되는 일이 일어났다. 적대자가 야곱의 엉덩이뼈를 쳐서 위골시킨 것이다: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창32:25, 개역개정)

창세기 32장을 자세히 보면 낯선 자가 야곱을 이기는 것은 처음부터 문제가 아니었던 것처럼 보인다. 낯선 자는 그저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을 뿐인데,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면서 그는 꼼짝도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야곱과 싸우던 그 적이 야곱에게 “날이 새려고 하니 놓아 달라”고 말한다. 형 에서가 부하 사백 명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데, 이 적은 야곱의 엉덩이뼈를 위골시키는 중상을 입히고는 그냥 가버리겠다는 것이다.

이제 야곱은 싸움은커녕 도망갈 처지도 못되었다. 인간적으로 축복을 얻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이제 그 축복을 모두 상실하게 될, 그야말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 몸도 목숨도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야곱은 완전히 무릎을 꿇는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32:26, 개역개정)

야곱은 상대방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야 처음 느끼게 된 것 같다. 그는 이제 은총을 구한다. 이전의 야곱이라면 이런 모습은 매우 낯설다. 자기 힘과 능력으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했던 그였다. 그러던 그가 인간의 힘으로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이제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더 이상 알몸 씨름을 통해서는 그 무엇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야곱은 두 손을 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야곱은 씨름을 멈추고, 축복해달라며 그에게 매달린다. 그러자 그는 야곱의 이름을 묻고는, “네가 하나님과도 겨루어 이겼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겼다”는 선언과 함께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고 야곱을 축복한다(창32:28).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어둠이 점차 물러가면서 야곱은 처음으로 희미하게나마 적대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본 것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이었다: “야곱은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뵙고도, 목숨이 이렇게 붙어 있구나!’ 하면서,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하였다.”(창32:30)

그런데, 더욱 놀랍게도, 야곱이 본 하나님의 얼굴은 밤새도록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던 험악한 죽음의 얼굴이 아니었다. 아니, 죽음보다 더 무서운 ‘사랑의 얼굴’이었다. 그 하나님의 얼굴은 야곱을 거룩하게 변화시키기 위해 한밤중에 적의 모습으로 나타나 밤새 싸움을 걸고 끝내 져주시고 축복하시는 사랑의 얼굴이었다. [전문 보기: 죽음보다 더 무서운 사랑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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