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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목회, ‘일상의’ 목회자
조성돈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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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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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전통적 목회의 틀을 벗은, 낯설고 새로운 모습들이다. 이름 하여 소통형 목회, 복지형 목회, 지역사회형 목회…. 소통형 목회는 교회가 특별한 공간(가장 대표적인 것이 카페다)을 준비하여 지역사회와 더욱 소통하고자 한다. 교회 공간을 주중에는 카페로, 주일에는 예배하는 곳으로 스위칭한다. 카페만 한다고? 아이들 놀이방도 있다.

목회의 영역이 이렇게 다양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시대적 변화 때문일 것이다. 교회 울타리 안 또는 예배당 중심의 목회를 유지하기가 갈수록 어려운 시대가 되면서, 새롭고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에 더하여, 같은 맥락에서, 목회자의 경제 상황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자구책이 절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원인이 무엇이건, 목회의 방향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것이 근본의 문제를 씨름하여 나온 의미 있는 변화의 시도가 아니라면 자칫 개인의 호구지책으로 변질되기 쉽고, 그러면 결국은 교회의 변화는 물론이고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위험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왜 ‘사회적’ 목회인가?

먼저 ‘사회적’이란 말을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영어 social이나 독일어 sozial을 직역한 느낌이 강하지만, 어쨌든, ‘사회적’이라는 말은 라틴어 socius에 어원을 대고 있다. ‘소시우스’는 ‘공동’ 또는 ‘연대’의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다. 좀 더 응용한다면,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함께 살아감’의 의미를 지니고, 동시에 더 나아가서 ‘개인의 이기주의를 넘어서 남을 돌아보고 돌본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공동체의 개념을 갖는 ‘사회적’이라는 단어에는, 약한 자들을 돕고 경제적 자원에의 참여나 인간적인 현존을 보장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에서는 ‘사회복지’를 social welfare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여기에는 공동체 또는 연대라는 의미가 강하게 포함되며, 더 나아가서는 약한 자들을 도와 함께 살아가도록 하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도 ‘사회/사회적’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 사회적 ‘목회’인가?

따라서 ‘사회적’이라는 단어는 그 의미상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익숙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신앙공동체요 동시에 국가공동체로서 그 사회의 약자인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에 대한 배려의 정신과 습속을 가지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제도를 통해서도, 곧 희년의 제도를 통해서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그래서 자신의 소유를 잃었던 자들이 다시 자기 것을 찾아가는 축복의 해를 만들어놓았다. 또 여인이 남편을 잃으면 그 가족들이 아내와 자녀들을 돌아보도록 하고, 밭에 떨어진 나락을 거두지 않음으로써 이러한 약자들도 먹고살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들에서도 볼 수 있다. 성경에서 제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이와 같이 사회적 책임이 가능한 공동체였다.


‘선교형 교회’로 부름

선교형 교회missional church는 그 시작이 서구 사회가 더 이상 기독교 사회가 아니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그러한 인식은 이제 그 사회가 선교지로서 인식되고, 동시에 교회는 그러한 선교지에 맞는 형태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서구 교회는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교회였다. 모든 국민들이 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굳이 전도를 하거나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이다. 오히려 찾아오는 그들에게 좀 더 나은 종교적 서비스를 제공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이 모두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게 되었다. 기독교는 문화가 되어버렸고, 실제적인 삶이 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교회는 기존의 형태로 유지될 수 없다. 이곳이 선교지라면 이제 선교형 교회로 탈바꿈해야 한다.

그래서 여기서 질문이 나오는 것이다. 선교지라면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일반적으로 선교사가 다른 나라에 간다면, 그것도 기독교에 대해 무지하거나, 심지어 적대적인 심정을 가지고 있는 곳에 간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가장 기본적인 것은 그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그들에게 호감을 살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섬기는 일을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하는 일들은 의료봉사나 교육봉사가 가장 기본적이다. 100여 년 전 이 땅에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했던 많은 일들을 기억해보면 그 해답은 정말 명확히 나올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은 사람들을 초청하기 전에 그 사회에서 기독교가 이로운 종교이며 섬기고 나누는 종교라는 것을 먼저 알리는 일이었다.

선교형 교회는 바로 이러한 일을 먼저 한다. 해외의 선교지가 아니라 교회가 현재 존재하고 있는 그 지역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선교지 조사를 하듯이 그 지역이 현재 필요로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먼저 찾는다. 그리고 그 필요에 교회가 응답하는 것이다. 그러한 일을 통해서 교회를 전환하는 것이다. 초청하는 교회에서 찾아가는 교회로의 전환인 것이다.
 

‘이중직’

이른바 ‘목회자 이중직’과 관련하여 목회사회학연구소와 함께 월간 목회와 신학이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이 조사에서 월 사례비가 눈에 띄었다. 120〜180만원이 21.7퍼센트로 가장 많았다. 그리고 180〜250만원이 18.9퍼센트로 두 번째, 80만원 미만이 16퍼센트 세 번째였다. 받지 않는다는 응답이 15퍼센트였고, 80〜120만원이 14퍼센트였다. 2014년 보건복지부에서 4인 가족 최저 생계비는 163만원이었다. 4인 가족에게는 적어도 이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인 파산의 기준이 되는 대법원의 기준은 244만원이다. 적어도 이 정도 돈은 있어야 4인 가족이 살 수 있으니 빚을 갚을 때 이 돈은 남겨두어도 된다는 것이다. 이 기준으로 볼 때 대법원이 보는 최저 생계비 244만원보다 못하게 받는 목회자는 월 사례비 250만원 미만으로 보아 85.6퍼센트에 이른다.

또 보건복지부의 최저 생계비인 163만원을 기준으로 했을 때 180만원 이하로 보면 66.7퍼센트에 이른다. 물론 이 조사의 취지에 따라 응답한 사람들이 겸직에 평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저소득의 목회자들이라고 해도 900명이 넘는 인원이 응답한 설문조사라는 신뢰성을 가지고 볼 때에 한국 교회 목회자들의 현실과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볼 때 목회자 가정을 4인 기준으로 볼 경우, 교회에서 주는 사례로 생활을 정상적으로 물론 법적인 측면에서 볼 때 꾸릴 수 있는 목회자는 14.4퍼센트밖에 안 된다. 설문에 응답한 904명의 목회자 가운데 겨우 129명인 것이다.

첫 번째 질문은 경제적인 이유로 목회자가 겸직하는 것에 찬성하느냐는 것이었다. ‘적극 찬성한다’(21.5퍼센트)와 ‘찬성한다’(52.4퍼센트)의 비율을 합치면 73.9퍼센트다. 이에 반해 ‘반대한다’(22.9퍼센트)와 ‘적극 반대한다’(3.2퍼센트)는 합쳐서 26.1퍼센트에 그쳤다. 응답자의 절대다수가, 목회자도 경제적인 이유, 곧 생계를 위해서 겸직을 할 수 있다고 대답한 것이다. ‘목회자는 제사장으로서 헌금만으로 살아야 한다’는 우리의 통념을 뒤집는 의견이다. 특히 자세히 보면 ‘적극 반대한다’는 의견은 3.2퍼센트로 매우 적은 데 반해, ‘적극 찬성한다’는 의견은 21.5퍼센트로 상당히 높게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목회 사역 외에 다른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는지도 물었다. 이 질문에 37.9퍼센트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교역자들 가운데 약 40퍼센트 정도가 현재 경제적 이유로 겸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겸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는 들었는데, 40퍼센트라면 상당히 높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직분별로 살펴보면 담임목사의 경우는 35.2퍼센트가 현재 겸직중이고, 전임사역자는 27.3퍼센트, 파트사역자는 62.3퍼센트, 협력목회자는 73.7퍼센트가 현재 겸직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파트사역자나 협력목회자의 경우는 현재 한국 교회에서 일반적인 생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전임사역자들보다 담임목사의 경우가 겸직 비율이 더 높다는 것이다. 물론 전임사역자들이 시간에 매이는 상황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며 담임목사의 경우 생활이 더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또 80만원 미만의 사례를 받는 경우는 아무래도 현재 겸직 상태인 목회자가 훨씬 더 많이 나오고 있다. 80〜120만원의 경우는 40.1퍼센트이고 120〜180만원의 경우는 27퍼센트밖에 안 되었다. 그 이상의 사례를 받는 경우는 급격하게 그 비율이 떨어지고 있다.

이를 볼 때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의 경우는 이 사회가 이야기하는, 더 정확히는 보건복지부가 정하는 최저 생계비만 보장이 되어도 겸직보다는 목회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목회자들의 대다수는 풍족한 생활을 위한 겸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겸직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생계를 목적으로 겸직을 하고 있는 목회자 5인과의 인터뷰를 나누려고 한다. 설문조사는 겸직에 대한 목회자들의 일반적인 의식을 살펴보고 목회자들의 겸직 상황 등에 대해서 알아본 것이라면, 이 심층 인터뷰는 정말 겸직을 하고 있는 목회자들의 현실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전문 보기: ‘사회적’ 목회, ‘일상의’ 목회자]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목회사회학 교수. CTK에 ‘사회를 읽는 목회’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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