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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내일의 소망이 있는 까닭은친구의 죽음이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에 대한 확신을 새롭게 하다
케일럽 칼텐바흐  |  Caleb Kalten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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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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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시절, 교회 사역을 위해 남부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한 적이 있다. 이 지역에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교회에서 만난 몇몇 사람과 친구가 되었고 그중 셋이 집을 빌려 같이 살았다. 친구들과의 자취 생활은 즐거웠다.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대화 중에는 실없는 농담도 많았다.

두어 해 후에 같이 살던 한 친구가 결혼해서 우리 집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사했다. 뜻밖이었다. 그는 거의 모든 면에서 나와 정반대였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 풍성한 머리숱, 다부진 체형, 적당히 그을린 피부. 게다가 그는 마약단속국 요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의 결혼 이후, 나머지 한 친구와 나는 자연스레 각자의 길을 갔다.

그로부터 1년쯤 지났을까. 10월 말을 향하던 어느 날 저녁, 아무도 원치 않을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결혼한 친구가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그날 저녁, 한 주택가에서 오토바이를 몰던 친구는 불법 유턴을 하던 차량에 부딪혔다. 친구의 오토바이와 차량이 측면으로 충돌하면서 친구는 오토바이에서 내동댕이쳐져 영원으로 날아가버렸다. 끔찍한 사고였다.

전화를 받고 30분쯤 후에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이미 현장은 대부분 정리되었지만, 친구의 오토바이는 아직도 길 한복판에 누워 있었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진 상태였다.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속속 도착했다. 잠시 후에 우리는 걸어서 근처에 있는 그 친구의 집으로 갔다. 남편을 잃은 젊은 신부는 눈이 붓도록 펑펑 울고 있었다. 집은 그가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만 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그가 마시던 음료가 싱크대에, 내일 입을 옷이 침대에 놓여 있었다. 텔레비전이 켜져 있고 그가 읽던 책도 의자에 그대로 있었다. 절반쯤은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었다.

다른 열다섯 명과 함께 그 집에 세 시간 정도 앉아 있었다. 입을 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서로 안아주고 흐느끼는 이들은 많았지만,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거기 모인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인이었으므로 우리는 함께 기도했다. 뭐라고 기도해야 할지 몰랐지만, 어쨌든 기도했다.

두어 주 후에 장례식이 있었다. 그날이 마치 어제처럼 기억이 생생하다. 수많은 장례식에 참석해보았지만, 이 친구의 장례식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순서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자리를 지킨 경우는 처음 보았다. 아무도 자리를 뜨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가 자리를 뜨면,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을 상상하기

장지를 떠나기 전, 나는 할리우드의 복잡한 고속도로와 버뱅크 너머 언덕을 응시했다. 언덕 너머로 구름이 모여들더니 언덕 꼭대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묘사한 내용이 독자들의 마음에 어떻게 그려질지 모르겠으나, 아주 극적인 이 장면은 이미 감정적이 된 내 마음에 또 다른 울림을 주었다. 나는 예수님이 어서 오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때와 그분의 때는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 소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 저 멀리 언덕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정의와 질서와 구속을 주러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장엄하게 나타날 것을 떠올렸다. 눈을 감고, 예수님의 재림을 묘사한 바울의 말씀을 생각했다.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에, 눈 깜박할 사이에, 홀연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나팔소리가 나면, 죽은 사람은 썩어 없어지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썩을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하고, 죽을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합니다.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고전 15:52-54)
 

그 마지막 날에 친구가 하나님이 주신 새 몸을 입고 나타날 모습을 상상하니 소망이 샘솟았다. 내게는 여전히 그 소망이 있다. 능력이 많으신 내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셨고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같은 일을 하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죽음을 경멸하는 만큼이나 죽음은 최후에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에 기대어 살아가려는 우리의 의지와 신뢰를 받으시기에 하나님은 전혀 손색이 없으시다. 하나님이 주신 소망은 사회 환경과 우리 삶의 모순을 초월하여 확장된다. 그분만이 그런 소망을 주실 능력이 있으시다.

성경은 언젠가 더 큰 내일이 도래하여 우리 모두가 그 가운데서 살게 되리라고 강력하게 약속한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내일에 그분이 행하시는 일들 가운데 심긴 소망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러니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지든, 좋은 소식이 있든 끔찍한 사건이 있든, 우리는 그 시간을 헤쳐나갈 수 있다. 내일은 하나님의 손에 있고, 그분은 우리와 함께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실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을 창조하고 예비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한 가지만 묻고 싶다. 당신은 이 사실을 믿는가? 당신은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구원 계획을 갖고 계시며, 우리를 더 나은 내일로 인도하고 계신다고 정말로 확신하는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끔찍한 일들이 벌어져도 하나님이 그 가운데서 선을 이끌어내신다는 믿음이 있는가? 당신은 틀림없이 믿는다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누구나 의심하는 때가 있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도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권적이시고 내일을 주관하신다고 믿는다면서, 왜 내 삶은 항상 그런 믿음을 드러내지는 못하는가?

의학적으로 우울증을 비롯한 여러 질병을 진단받는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나는 대체로 내가 걱정하는 정도가 내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지표라고 믿는다. 하나님이 이미 내 인생길을 계획하신 대로 내가 살아간다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늘 궁금하다. 당신도 당신 자신에 대해 똑같이 궁금해할 것이다. 걱정이 늘어나고 믿음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할 때면 나는 돌아가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말씀을 읽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곤 한다. 그 말씀이 하나님을 묘사하는 내용이든, 엄청난 역경에도 그분의 능력을 신뢰하게 해주는 이야기이든, 그분의 신실하심에 대한 말씀을 읽고 나면 위안이 된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말씀을 읽는 것과 함께, 매일 기도 시간을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 하나님과 대화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서 도대체 어떻게 그분을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내게 신실하셨던 과거의 일들을 기억하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아야 한다. 그분은 암울한 시간에도 꾸준히 나를 지켜보고 계셨다. 걱정을 줄이고 믿음을 키우면, 하나님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시고 내일의 계획을 이미 가지고 계신 것을 기억할 수 있다. 하지만 걱정이 문제인 까닭은 단순히 내 믿음을 약하게 만들기 때문만은 아니다. 걱정은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걱정을 줄이고 믿음을 키우면 나 자신에게서 시선을 돌려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다. 오늘, 다른 사람들에게 소망을 줄 수 있다. [전문 보기: 우리에게 내일의 소망이 있는 까닭은]
 

케일럽 칼텐바흐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Messy Grace: How a Pastor With Gay Parents Learned to Love Others Without Sacrificing Conviction(Water Brook)의 저자다. 이 글은 그의 최신작 God of Tomorrow: How To Overcome The Fears of Today and Renew Your Hope for the Future(Water Brook)의 일부를 간추린 것이다.

Caleb Kaltenbach, “Bright Hope for Tomorrow” CT 20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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