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인터뷰
“기독교를 넘어서는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김은홍  |  CTK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8.06  
트위터 페이스북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사진: 김희돈


조용성 선교사를 만났다. 그는 현재 총회 세계선교회(GMS)의 선교총무다. 그러나 그는 인생 대부분을 현장 선교사로 보냈다. 그는 1987년 터키 선교사로 파송 받아 그곳에서 26년을 사역했다. 1953년생인 그는 오는 9월 GMS 선교총무 직에서 은퇴한다. 6월 25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GMS 세계선교대회를 앞두고 있어 매우 분주한 그에게서 그가 30년 넘게 두 곳의 현장(터키와 한국의 선교본부)에서 체득한 선교에 대한 지혜를 들었다. ―CTK 김은홍
 

32세에 선교지에 갔습니다. [조용성 선교사는 1953년 12월 7일생이다.] 이곳 GMS에서 새벽에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기도하러 나올 때마다 스치는 생각이 있습니다. 저의 아저씨 되시는 조동진 목사님께서, 1974년 월문리 이곳에 ‘바울의 집’을 여셨는데(당시에는 국내 유일의 선교기관이었습니다), 제가 선교의 동기부여를 받은 바로 그 자리에 세워진 GMS 본부에서 선교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선교의 꿈을 갖게 된 것은 대학 시절 한국대학생선교회(CCC) 활동을 하면서부터였습니다. CCC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선교사로 헌신하게 된 것은 1980년 민족복음화성회 때 김준곤 목사님께서 “한 번뿐인 인생을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이름을 위해 헌신할 사람은 일어나라”고 하셨을 때, 그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선교 헌신의 꿈을 가졌습니다. 그때 주체할 수 없이 흘린 눈물이 꽃다운 젊음을 선교지에서 보낼 수 있게 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1978년부터 1981년까지 CCC 간사를 하고, 1982년에 총신 신학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총신에 진학한 동기는 두 가지였습니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교사가 되고자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총신대에는 화란(네덜란드)에서 유학하신 최홍석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처음 교회론 강의를 하실 때였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의 중요성을 강의하셨는데, 그것이 제게 얼마나 큰 감동과 깨달음을 주었는지 모릅니다. 신학을 공부하길 참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86년 서울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지역교회에서 목회자로서의 어떠한 경력도 없이 오직 선교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제가 선교사 파송을 받은 당시만 해도, 중동 지역, 특히 무슬림 지역의 터키는 선교사로 나가면 순교하러 가는 지역으로 다들 인식할 때였습니다. 1987년 5월 15일, 국제 CCC의 일원으로 터키에 입국해 캠퍼스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제 선교 사역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2012년 7월, 59세 되던 해 한국으로 돌아와 GMS를 섬기게 될 때까지 30대, 40대, 50대를 모두 선교지에서 보냈습니다.


터키 사역

저는 세 가지의 핵심 가치를 두고 선교에 임했습니다.

첫째는 한 국가의 심장부인 대학에서 젊은 지성인들의 복음화에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내 최인경 선교사와 함께 청바지를 입고, 책가방을 메고 캠퍼스에서 터키의 젊은이들과 수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당시 예수를 믿게 된 무슬림 학생들이 중심이 된 현지인 교회가 현재까지 120여 명이 출석하는 이스탄불 ‘모다’ 장로교회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둘째로는 신학교 설립이었습니다. 선교 10년을 마치면서 결국 경쟁력은 사람을 키우는 신학교를 세우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장로교, 홍콩, 한국, 미국 선교사가 중심이 된 연합신학교를 세웠습니다. 당시 조동진 목사님께서 “평양 신학교도 설립 당시에는 호주 장로교회, 캐나다 장로교회, 미국 북장로교회, 미국 남장로교회가 연합하여 세운 학교였다”라는 말씀으로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 영감을 안고 무디 바이블 칼리지를 방문했습니다. 그 학교에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성경을 잘 가르치는 신학교’라는 것이었습니다. ‘히브리어, 헬라어를 안 가르쳐도 괜찮다. 무엇보다 성경을 잘 가르치는 신학교를 세우자!’ 그렇게 현지인 신학교를 시작했습니다. 벌써 19년이 되어갑니다. 저는 지금도 이 학교를 세계에서 가장 좋은 신학교라고 감히 말합니다. 현지인 목회자를 현재까지 6명 배출했습니다. ‘썩어지는 밀알, 씨앗’이라는 뜻의 이 ‘토움 신학교’는 사람이 경쟁력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현지인을 양육하는 신학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세 번째는 교육 사역입니다. 선교지에서 아내 최인경 선교사가 했던 사역 가운데 ‘어린이 디모데 교육’이 있습니다. 터키의 유일한 현지인 중심 교회학교로, 어린이 교육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자체 건물을 갖고 있으며 이 교회학교가 터키 지하교회 전체를 아우르는 구심점이 되어 여름과 겨울 성경학교 때 현지 교사들을 훈련시킵니다. 사역 초기에 터키에는 성경 교재가 전무했기 때문에 아내가 유치부, 초등부, 중고등부에 이르는 예장합동총회 교육부 교재를 모두 터키어로 번역하고 인쇄해서 터키 교회에 배포했습니다.

이렇게 터키 선교사로서 캠퍼스 선교, 신학교, 교회학교 사역에 전념했습니다.

   
 


선교란 무엇인가?

저는 터키에서 26년간 무슬림 선교를 하면서 변화하는 글로벌 선교라는 책을 썼습니다. ‘선교는 균형’임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현장과 이론이 함께 가야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조동진 목사님께서 “현장에서 지역학을 공부하는 것이 진짜 선교 공부다”라고 조언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터키에서 석사와 박사 공부를 했던 이유입니다. 터키 국립대학인 마르마라 대학교에서 ‘실크로드 민족 이동사’를 전공했습니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알게 하고 현재를 진단하는 학문입니다. 역사를 알면 실패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그때부터 선교지의 자료들을 모았습니다.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선교의 이슈, 트렌드, 동향을 직접 정리하고 책을 썼습니다. 26년 선교 사역을 마치고 GMS 본부에 들어올 무렵, 선교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학문화한 것입니다.

   
 

마르바라 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주제가 ‘실크로드 민족 이동사’ 가운데 ‘오공법사 여행기’입니다. 이 논문은 8세기 때 대상들이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 장안에서 비단을 가져왔던 길에 대한 연구입니다. 좀 특이한 논문이지요. 오공법사는 손오공이 아니고 한자로 깨달을 ‘오’, 하늘 ‘공’자로, 천기를 깨달았다는 이름을 가진 불교 고승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왕오천축국전을 쓴 해초나 법형법사 같은 대승불교의 승려들만 잘 알려져 있지요. 오공이란 승려는 소승불교의 거목으로, 인도 캐시미르에서 27년간 산스크리트어를 중국어로 번역해 메콩 강을 거쳐 남방불교를 전한 장본인입니다. 불교계에서는 이 오공법사가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조동진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지역학의 핵심가치는 비교종교학이었습니다. 선교란 “기독교를 넘어서는(beyond Christianity) 눈을 가지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기독교를 넘어서 볼 수 있는 안목이 더욱 필요합니다. 조 목사님께서 제게 가르쳐주신 선교의 통찰이었습니다. “선교를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지요. 우리가 처한 문화는 무슬림, 불교, 힌두교 등 스펙트럼이 매우 넓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라는 세계관 속에 갇혀 선교를 접하니까, 늘 문화 충돌과 종교 충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제가 오공법사를 연구하고 마르바라 대학교에서 강의할 때 오히려 제게 기독교에 대해 물어보는 현지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먼저 기독교를 말하지 않아도 제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그들이 알았던 것입니다. 제가 쓴 책도 ‘Beyond Christianity’의 관점이 한국 교회와 한국 선교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선교를 서구적 관점에서 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 보기: “기독교를 넘어서는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68길 98 5층  |  대표전화 : 080-586-7726  |  팩스 : 02-6919-1095
발행인 : 오정현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은홍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은홍  |  사업자등록번호 : 214-88-27116  |  통신판매업신고 : 제01-2602호
Copyright © 2018 Christianity Today K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