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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 거래에 빠진 교회들보이지 않는 것을 주고 보이는 것을 얻었으니 만족스러운가
최규창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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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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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근대 이전 인간의 삶에서는 ‘소유’보다 ‘거주’가 훨씬 중요했다고 분석한다. 특히 고대사회에서는 화폐가 활성화되지 못했고, 화폐로 구매할 수 있는 재화 역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욕구 자체도 그리 강화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사막에서 아무리 돈이 많아도 물 한 모금의 가치도 없는 것처럼, 쓸 곳이 마땅치 않은 재산을 불리느라 인생을 소모하는 것은 미련한 짓으로 취급되었다. 따라서 고대인들에게는 재산 몰수보다 거처를 실질적으로 박탈하는 추방이 훨씬 중한 벌이었다. 소유(所有)라는 말 자체가 ‘거처를 가진다'는 의미인 것처럼, 근대 이전 사회에서 소유와 거처는 잘 구분되지 않았고, 인간이 굳이 소유에 강하게 집착할 필요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거쳐 급격한 자본화가 진행되면서 소유는 구체적 공간과 장소의 성격을 상실하고, 임의로 처분하고 양도할 수 있는 동산(動産)으로 변화되어갔다. 근대 이전의 사유재산은 대부분 처분이 불가능한 부동산의 성격이었으나, 산업화 이후에 급격히 ‘동산화’가 진행된 것이다. 소유의 유동성(환전 가능성)이 증가하고 동산화가 진행되면, 산업화는 가속화되고 거래는 활발해지지만 인간의 삶은 무한한 욕망의 노예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나님이 삶의 근간으로 주신 거주 공동체를 동산(분깃)으로 환전해 먼 길을 떠난 둘째 아들처럼(눅 15:12), 낙원에서의 영원한 삶을 걸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도박을 감행한 인류의 조상들처럼, 인간은 인생의 귀한 자산을 내놓고 그 대가로 쾌락과 욕망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이 대개 멸망의 길로 달음질하는 어리석은 짓임을 깨닫는 지혜는 얻지 못했다. 이것이 근대성이 우리에게 안겨준 또 다른 측면의 비극이다. 이제는 이민을 가더라도 재산만 충분하면 살아가는 데는 별다른 제약이 없는 시대다. 다시 말해, 눈에 보이지 않는 거처, 공동체의 가치보다는, 막강한 구매력을 제공하는 유동자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삶의 가치가 다시 매겨지게 됨으로써, 우리는 오히려 진정한 거주지를 상실한 떠돌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같은 함정에 빠진 교회
교회의 타락 역시 이와 같이 거래 가능한 형태의 자산을 얼마나 보유하게 되었는가에 비례하여 심화되어왔다. 교회야말로 지역성을 중심으로 가장 평등한 사랑의 관계가 맺어지는 공동체로서 역사적 위상을 확보해왔으나, 산업화의 영향으로 동산의 비중이 커지고 구매 가능한 대상이 늘어남으로써 자본의 힘에 점점 굴복하게 되었다. 성도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현금자산이 늘어나고, 세금도 면제되고, 저렴한 종교부지 혜택도 받으면서 교회는 착실히 유동자산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자산들은 교회의 본래 영역인 ‘공공성’(公共性) 안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모든 나라에서 사유재산이 인정되고 있지만 사유화의 수준과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사실 우리가 경험하는 대다수 정치·경제적 이슈는 적정한 ‘사유화’ 그리고 합리적인 ‘공공성’의 영역을 정의하는 데 집중되고 있다. 민주화의 개념도 달리 보면 공공성의 영역을 확보하려는 싸움이다. 신분이나 출신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하나의 투표권을 가지며 동등한 권리를 갖게 된다. 양도 및 환전 가능한 자산이 많지 않을 때의 교회는 이러한 공공성의 영역을 확보하는 데 매우 우호적이었으나, 유동자산이 늘어남에 따라 이것을 사유화하려는 욕망에 휩쓸리고 말았다. 유동자산의 증가, 사유화하려는 욕망의 증대로 인해 공공성이 약화되고, 대형화, 물량 공세 등의 방법으로 거처를 무시한 채 각처에서 신도들을 불러모아 숫자만 불리려함에 따라, 교회 본연의 사명인 공동체성은 서서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처분 가능한 재산은 빠른 속도로 사유화되고 있고, 처분이 어려운 자산은 세습이라는 수단으로 간접 사유화되고 있다. 최근 20년간 두드러진 일부 대형 교회들의 정치적 행동주의 역시 사유화된 교회의 자산을 지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아도 큰 무리가 아닐 정도다.

사실 사유화의 욕망이 크지 않고, 유동자산의 구매력에 굴복하지 않은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자본의 힘이 미미하다. 집은 그저 먹고 자고 사람들  모이는 곳이면 되고, 옷은 깔끔하게 입으면 되는 것이며, 차는 잘 굴러가면 되는 것이고, 밥은 싸든 비싸든 한 끼 맛있게 먹으면 되는 것이다. 그 외의 불필요한 자산은 공공성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평생 폐지를 줍거나 노상에서 김밥을 팔던 노인이 장학금 수억 원을 기탁하는 뉴스를 보면, 우리는 ‘폐지’와 ‘수억 원’의 부조화에 놀라지만, 그들에게 먹고 자는 것 외 잉여의 돈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노년의 좋은 공동체, 친구들이 더욱 소중한 것이다. 우리가 정말 놀라야 할 일은, 교회들은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하는 사실이다. 교회는 오히려 공동체를 해체시키며 썩어 없어질 자산을 모으고 있지 않은가. 잃는 것이 훨씬 많은 명백한 부당 거래다.

자산의 동산화, 사유화라는 대세 속에서 교회가 지역성(공동체성), 공공성을 지키며 생존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폐지 줍는 노인이 아닌, 텐트 만드는 노인 바울의 깊은 내공을 다시 한 번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빌 4:11, 딤전 6:6). [전문 보기: 부당거래에 빠진 교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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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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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성
공산당이 교회 폐쇄시킬 때 제일 먼저하는 행동이 뭘거 같아요? 교회 땅과 재산을 빼앗는 겁니다. 저자는 사유 재산을 탐욕이나 좌라고 바라보지만, 사실 사람들이 자기 재산을 지키는 이유는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예요. 공공성? 헌금 많이 내는 부자들 덕에 교회 굴러가는거 고맙게 생각하는게 합당합니다. 누군가의 탐욕이 죄일지 아닐지는 나중에 주님께 물어보세요. 돈 필요 없다면 혼자 그리 사세요.
(2018-08-10 09: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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