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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기, 초대 교회 스타일브라이언 라이트의 새로운 역사 연구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깜짝 놀랄 만큼 책벌레였음을 보여준다.
케일럽 린드그렌  |  Caleb Lindg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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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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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T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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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트가 최근 펴낸 예수 시대의 공동 독서Communal Reading in the Time of Jesus는 그의 연구 결과를 자세히 다루어 매우 다양하고 저명한 학자들로부터 찬사를 이끌어냈다. 그는 1세기 그리스-로마 세계의 활기차고 역동적인 공동 독서 문화를 밝혀냈다. 현재 팜비치 애틀랜틱 대학교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인 라이트가 1세기 기독교 독서 공동체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하여 신학 부편집장인 케일럽 린드그렌과 대담을 나누었다.
 

대부분의 성경 연구 자료는 많은 사도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교양 있는 엘리트 집단이 아니라 대개 문맹이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은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내 책이 특별히 고대의 읽고 쓰는 능력을 다루지는 않지만, 질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고대의 식자에 관해 합의된 견해는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이 문맹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껏 그 누구도 1세기의 광범위한 공동 독서 관습에 대해 견해를 내거나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나는 고대인들이 문맹이었으리라는 추측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이것이 내 연구의 초점은 아닙니다.

공동 독서 행사가 사회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내가 입증했기 때문에, 문헌에 정통하거나 정기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으려면 많은 사람이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는 것을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요한복음(12:32-34)에서 율법학자도 종교지도자도 엘리트도 아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느 종속절에 나오는 동사 용례에 대하여 예수님께 도전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또는 성경이 아닌 다른 1세기 문헌에서, 군중 가운데 누군가가 일어나 공동 독서 행사에서 나눈 특정한 내용이 자신들이 다른 곳에서 들은 내용과 달라 이의를 제기했다는 내용을 읽어도 별반 놀랍지 않을 것입니다.
 

1세기 공동 독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공동 독서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친구들과 문서를 공유했을 수도 있고, 유명 인사들이 극장이나 공회당에서 실제로 무언가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방과 사원, 유대교 회당 등 공식, 비공식 장소 모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법정이나 가정집, 학교를 비롯하여 어디에서든 열렸습니다.

1세기 작가 마르티알리스는 사람들이 아무 데서나 아무에게, 심지어 공중 화장실에 있을 때조차 책을 읽어주는 것이 얼마나 짜증스러웠는지를 이야기하며 꽤나 우스꽝스러운 예를 몇 가지 듭니다. 그러므로 학자들의 생각 이상으로, 1세기에 많은 사람들이 집단으로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여럿 있습니다. 공동 독서는 당시 사회 구석구석에서 찾아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독자 유형이 단지 엘리트 계층만이 아니라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두 책을 읽었습니다. 내 책을 보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읽기에 참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당시에는 모든 사람이 문학 작품을 읽고 암송하려 했던 것이 문제였고 반대로 오늘날에는 아무도 책을 읽으려 하지 않거나 읽을 수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공동 독서 현상이 기독교 문헌 전파에서 어떤 일관성을 제공했을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까?

물론입니다. 좀 더 많이 읽혔을 글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성경과 무관한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 어떤 사람이 호메로스의 글을 잘못 인용한다면 누구라도 알았을 겁니다. 사람들이 호메로스의 글을 많이 읽었으니까요. 초기 기독교 문헌도 비슷했을 겁니다. 바울의 글을 비롯한 많은 글이 1세기 당시에도 빠르게 또는 즉시 읽히고 사용되었을 테니까요. 실제로 1세기 이후에 누군가가 일어서서 글을 읽었다는 사례는 셀 수 없이 많고, 새로운 번역으로 바뀐 단어 하나 때문에 회중 사이에 소란이 일기도 합니다.

나는 제롬이 라틴어 불가타를 번역했을 때 아우구스티누스가 그에게 쓴 편지를 책에 인용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도들은 요나서의 한 구절(4:6) 때문에 소란을 피웠는데 자신들이 알던 것과 다른 한 단어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이후 3〜4세기에는 이런 사례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2세기는 물론 1세기에도 이와 똑같은 예가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좀 더 많이 읽히는 글들은 필연적으로 더 유명해지고, 사람들이 일어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겠지요. “그건 우리가 듣던 내용과 다릅니다”라거나 “그 본문을 그렇게 읽는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군요”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따라서 그때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기독교 전통의 전승과 기독교 문서의 안정성이 높았다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리스도인들과 그 외 고대 사람들의 독서 방식에서 유사한 점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서로 다른 점도 있었을까요?

예, 몇 가지가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리스도인들과 그 독서 관습이 주변 문화와 눈에 띄게 다른 점 중 하나는 겸손과, 영성 형성에 독특한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들은 마르티알리스처럼 돈을 벌려고 글을 쓰지 않았고, 루치아누스처럼 지식을 자랑하려고 독서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비디우스처럼 포로 생활이나 고난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고, 프로페르티우스처럼 명성이나 높은 지위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유베날리스처럼 자신들의 업적에 자존심을 세우지 않았고, 아리아노스처럼 다른 사람들을 비웃거나 당황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공동 독서를 통해 그리스도를 닮아가려 했습니다. 이는 개개인의 변화 못지않게 공동체의 변화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귀히 여겼으며, 하나님이 주변에 보내주신 사람들을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하면, 그리스도인들에게 공동 독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본문을 이해하고, 하나됨을 촉진하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영성 형성 방법으로 장려했다는 점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독서를 하고 당시 문헌과 상호작용을 했는지에 관한 이와 같은 새로운 이해가 우리가 1세기를 이해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는 데에는 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내가 초기 기독교 독서 관습에서 배운 모든 내용은 네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공동으로 독서를 했다.” 그리고 오늘날 신도들에게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텐데, 바로 “함께 읽으세요”입니다. [전문 보기: 함께 읽기, 초대교회 스타일]
 

Interview by Caleb Lindgren, “Reading Together, Early Church Style” CT 20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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