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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침묵이 있었다왜 그리스도인의 활동은 비-활동과 함께 시작되어야 하는가
마크 갤리  |  Mark Ga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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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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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tock 1983년 템플턴상 수상 연설에서,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말했다. “여기서 다시 20세기 전체의 주요 특징을 간략하게 식별해 보라는 요청을 받았다면, 다시 한 번 이 말을 되풀이 하는 것 말고는 더 정확하고 간결한 것을 찾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잊었다.” 이러한 현실은, 물론, 21세기에도 배어들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그 흔적을 본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잊었다기보다는 더 긴급한 일, 가령 교회를 성장시킨다거나 희망을 설교한다거나 불의에 맞서 싸우는 일에 참여하면서, 그분을 선반 위에 올려둔다. 우리가 하는 이런 일들도 모두 나름 옳은 일이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데 부가적인 생각이나 수단이 될 때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것은 새로운 유혹이 아니다. 바울은 이웃 사랑과 비교하면서 이것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하나님 사랑에 더 많이 적용된다: 우리는 권력을 향해 기적의 혀로 또는 선지자적 진리로 말할 수 있고, 우리는 문화를 바꿀 만한 믿음을 가질 수도 있고,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고전13:1-4). 당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면, 바울이 왜 이런 이야기를 했겠는가? 가을은 활동의 계절이다. 새 학기가 시작하면, 가족들은 온갖 종류의 계획들과 일과들을 실행에 옮긴다. 교회들은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준비한다. 그리고 지금이 선거의 해라면, 활동가들은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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