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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마음의 당신을 위하여
홍승영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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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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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음 4장에 있는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 이야기는 읽는 사람들에 따라 다양한 조명을 받는다. 낮선 땅을 찾아가는 전도자의 열정과 외로운 사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심,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의 영적 풍요 같은 것들 말이다. 또한 한낮의 뜨거운 햇빛을 무릅쓰고라도 사람들과의 만남을 회피하던 수가성 여인이 마을 사람들을 찾아가 자신이 만난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된 일은 외로운 사람들과 그들을 염려하는 이웃에게도 소망이다. 그렇게 생명력 넘치는 사람이 어쩌다 스스로를 고립하게 되었을까?

백일승 형제는 모태신앙은 아니었다. 지금은 장로가 된 고향 친구는 그가 약간은 부족한 신앙이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그 신앙의 진실함을 누가 알겠는가? 유년의 친구조차 몰랐던 그의 신앙은 자녀의 이름을 통해 고백되었다. 두 아이의 이름을 엘리야를 따라 지었다. 문제는 그의 남다른 명석함이었다. 엘리야를 추종하는 뜨거운 마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은 모든 것이 빤히 보이는 차가운 이성이었다. 성경의 진리와 기적은 오히려 쉽게 믿었다. 그러나 자신의 신앙고백과 다르게 행동하는 성도들, 특히 교회 리더십들의 이중성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덮어가는 가슴의 포용성으로 잘 견뎠지만 결국 한계에 이르렀다. 이성은 마음을 닫게 만들었다. 이 시대의 많은 성도들이 그러하듯이 그도 교회를 떠나있기로 결정했다. 경건한 아내가 간곡히 만류했지만 그의 결정을 바꾸지 못했다. 이사하면서 새 교회를 만났지만 남편은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자신의 결심을 확고히 하기 위해 남편은 생활 터전을 전라도에 있는 자신의 고향으로 옮겼다. 거기서 직업을 얻고 부정기적으로 서울을 오가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내는 남편의 마음이 다시 열리기를 기도했다.

2017년 봄, 50대 중반의 건강했던 남편에게 병이 찾아왔다. 후두암이었다. 성도들은 얼굴도 본 적 없는 그를 위해, 그가 목소리를 잃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성대를 보존할 수 있었다. 일 년 후 가슴에 통증을 느낀 남편은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이번에는 수술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암은 폐를 포함한 대부분의 장기에 퍼져 있었다. 상상도 못할 정도로 빨리 퍼지는 암세포에 의사도 경악했다. 2018년 4월, 스스로 운전해 찾아갔던 병원에서 나오지 못한 채로 급속히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되었다. 8월, 목사의 심방을 허락하기로 했다. 십여 년 만에 목사를 마주했을 성도에게 간절한 권면을 전한 나는 그의 마음이 어떤지 물었다. “참 좋은 시간이 있었는데 그것을 낭비하고 헛되이 보낸 것이 안타깝습니다…” 하나님께 올려 드린 회한이었으리라. 누가 강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닫아 버린 마음의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승강기 앞에서 우리를 배웅하던 형제는 다시 한 번 교회에 갈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백일승 형제의 이야기는 예기치 않던 때에 김인자 주부에게 전해졌다. 아래층에 사는 아이 엄마가 언니라 부르며 잘 따랐는데 기회 될 때마다 교회에 가보자고 했었다. 분명하게 거절했다. 자주 절에 다니던 어머니께서 어느 날 목사님의 권면으로 기도를 받았는데 그 이후로도 많은 고난을 당하셨다. 어머니의 고생을 가까이서 지켜본 김인자 주부는 종교를 바꾸면 안 된다는 터부를 강하게 가졌다. 남편이 뇌졸중을 앓아 거동도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아래층 동생은 늘 남편의 안부를 묻고 기도하겠다고 말해서 고맙기는 했다. 그럼에도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은 역시 어머니로부터의 영향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라디오 극동방송에서 전도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우리에게 연결이 되었고 스튜디오의 수화기 너머로 백일승 형제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그녀는 “의도치 않게 연결된 것이니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아 달라”는 말로 인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백일승 형제의 고백이 복음에 터부가 있던 중년 여성의 마음에 틈을 내었다. 우리는 그녀의 상황을 진심으로 아파하며 기도했고, 그녀는 눈물로 예수님을 영접했다.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울음이 스튜디오 안에 울리며 청취자들의 마음을 치유했다. 예기치 않던 일을 만나 원망하고 숨고 거절했던 사람들의 영혼이 다시 숨 쉬기 시작했다. 한 영혼이 거듭난 그 순간의 생명력이었다. 백일승 형제가 의사로부터 24시간을 선고 받은 그 날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음날 새벽, 구원의 기쁨과 소망으로 김인자 성도는 아래층 동생과 함께 새벽예배에 참석했다. 그날 정오쯤에는 백일승 형제가 주님 품에 안겼다. 불볕더위로 뜨거운 한낮의 임종이었다. 55세의 나이에 당하는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마음의 문을 연 형제는 알지 못하는 여인의 마음을 열어 주었다.

수가성 여인이 어떻게 마음을 닫았는지 모른다. 다만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살고 있는 남자도 네 남편이 아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그녀의 고단한 삶을 느낄 수 있다. 누가 그런 고통의 삶을 계획할까! 의도치 않은 일들이 수가성 여인에게 일어났고 그녀는 점점 불행과 고립에 빠져들었다.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마음을 열게 된 여인은 비로소 자신이 기대하는 소망을 고백했다. “나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압니다. 그가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요4:25)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했다(요4:39-42). 그녀의 마음을 열어준 것은 사마리아인들과 상대를 안 하던 유대인들의 터부를 깨신 예수님이었다.

이틀을 머물며 먹먹한 장례를 집례한 후 경상도에서 늦은 밤의 집회를 인도했다. 그날 꼭 돌아와야만 했기에 마지막 무궁화호를 탔다. 동대구에서 고속철도로 갈아타는 계획이었는데 눈앞에서 기차를 놓쳤다. 20분에 불과한 짧은 거리를 무려 9분 가까이 연착한 무궁화호 때문이었다. 분명 기관사의 실수였다. 10분이었던 갈아타는 시간이 2분도 안되게 남았다. 여덟 개의 플랫폼을 뛰어 지나는 동안에는 오로지 저 기차를 타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몇 미터 앞에서 출발하는 기차의 하얀 뒷모습을 보아야만 했다. 너무 안타까워 손을 휘저으며 따라 뛰던 내 모습을 상상하면 지금도 어이가 없다. 그 기차를 못 타면 다음날 오전에 제천에서 만나기로 했던 어린이들을 못 만날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급했던 것이다. 참 바보 같은 일이었다. 쫓아간다고 고속열차가 다시 설 일은 없다는 것을 잘 알았으면서! 더 바보 같은 일이 있는데, 30분 뒤에 마지막 고속열차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걸 알았으면 그렇게 뛰어가지 않았을 거라는 후회는 속으로 부끄러움이 되었다.

부끄러움이 된 후회는 금세 내 마음을 휘저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사역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기차를 놓친 것도, 막차로 오해해서 뛰어갔던 것도, 땀에 흠뻑 젖은 나 자신도, 우울한 감정과 다 포기하고 싶은 우울함을 일으켰다. 천국의 소망을 말한 지 이틀도 되기 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으로부터의 기대가 솟았다. “이렇게 어리석고 애쓰는 나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겠는가…” 예기치 않게 놓친 기차가 준 잠시의 멈춤이 소망의 근원을 다시 돌아보게 해 주었다.

누구나 예기치 않던 일들을 만난다. 당황하는 그 순간은 마음을 닫는 순간일 수도, 하나님의 손길을 묵상하는 순간일 수도 있다. 자신의 영혼을 고립시키는 그 순간을 ‘상처 받았다’고 말하지만, ‘상처를 안았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닫힌 마음은 다섯 남편과 십여 년의 후회와 별것 아닌 일에도 포기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잠시 멈칫하는 그 순간은 예기치 않게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만 조심 할 수 있다면. CTK 2018:9

 

홍승영
서울 송파구에 있는, 요셉의 무성한 가지처럼(창49:22)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참되고 아름다운 가지가 되기를 소망하는 장지교회 목사. 스무 살에 어린이 설교를, 서른 살에 어린이방송을 시작했고, 마흔을 조금 넘긴 나이에 담임목회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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