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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드러내어 이웃을 사랑하자. 프라이버시 뒤에 숨지 말자.그리스도인이 프라이버시 침해를 덜 염려해야 하는 이유
크리스 리즈웨이  |  Chris Ridge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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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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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매트 체이스

용정보 유출 사고들, 8000만 건의 고객 정보가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mbridge Analytica에 유출된 사태에 대한 페이스북의 사과, 또는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이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다는 뉴스…, 이런 소식들이 들릴 때면 잠시 알람을 켜 두었다가 이내 꺼버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이런 문제를 보는 기독교 특유의 시각이 있을까? 쉽지 않은 문제다.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설정이나 감시 카메라에 관해 설교하는 목사님이 얼마나 될까? 우리 목사님은 아니다. 개인정보 설정privacy settings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이 있기나 할까?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서버 해킹에 관해 할 말이 있을 뿐만 아니라, 불안에 떨고 있는 세상에 깊은 위안을 주는 유일한 삶의 방식이 있다.

그 삶의 방식은 우리에게 프라이버시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고,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 공동체에 대한 성경적인 (그리고 근원적인) 접근방식을 택하라고 요청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을 가질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디지털 시대를 향해 제대로 증언하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프라이버시’ 살펴보기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했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어떤 일이 있었나요?” 파티나 커피숍이나 가족모임에서 나는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대부분 자신의 프라이버시가 걱정된다는 데 바로 공감한다. 확실히 침해당한 적 있고, 그래서 불안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세하게 말해 달라고 하면, 별다른 말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불안의 편차는 매우 크다. 어느 경영 컨설턴트는 자기 팀은 랩톱 컴퓨터에 장착되어 있는 카메라를 테이프로 가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해커들이 인터넷을 통해 불법적인 접근을 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미친 작자들입니다.” 그가 말한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한 사람이 사안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기도 한다. 미국인들은 직장 내 카메라 설치에 대해 절반은 찬성하고 절반은 반대한다. 광고를 수신한다는 조건으로 대학동기들과 무료로 접촉할 수 있게 해주는 웹사이트가 있다면 수용할지 묻는 질문에 2/3가 ‘싫다’고 답했다. 하지만 동일한 비즈니스 모델인 페이스북을 매달 이용하는 활동적 유저는 12억 9000만 명이나 된다.

경험의 차이와 기술 불안증이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리의 문화적 불안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모순들 가운데 몇 가지가 바로 우리 앞에 있다. 예를 들어, 10퍼센트 할인 쿠폰을 줄 테니 내 이메일 주소를 건네 달라고 제안을 받으면, 나는 바로 동의한다. 업체들이 아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에게 내 이메일 주소를 알려준다.

이런 변덕스런 문화적 환경 속에서, 우리는 기독교적 기초를 세울 수 있을까?

“프라이버시의 신학”theology of privacy을 구글에서 검색하면 프린스턴과 클레어먼트, 풀러와 웨스트민스터 같은 훌륭한 신학교들이 죽 나온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내용은 각 신학교 웹사이트의 개인정보 보호 정책 알림이다.

티머시 조지(비손 신학교)와 마크 D. 로버츠(풀러 신학교) 같은 신학자들이 쓴 논문이 있기는 하지만, 아주 짧고 몇 편 안 된다. 미국 복음주의 신학계 밖에는 영국 신학자 에릭 스토다트Eric Stoddart가 있다. 런던 중심부 도처에 설치되어 있는 보안 카메라들에 자극을 받은 그는 감시 사회와, 그런 사회가 특히 소외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룬 논문을 썼다. 스토다트의 이 논문[“Theological Perspectives on a Surveillance Society]이 단행본으로 출간된, 지금까지는, 유일한 논문이다.

Dictionary of Scripture and Ethics(성경ㆍ윤리학 사전)에 간략한 ‘프라이버시’ 항목이 있다. 이 사전은 갈라디아서 2:2―바울이 문을 닫아걸고 예루살렘 지도자들을 만난 이야기―과 마가복음 4:34―무리가 떠난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비유를 설명하신다―을 인용한다. 사무엘상 24:3도 있다. 여기서 사울은 (부하 3000명이 있는 동굴 밖이 아니라) 동굴 안에서 뒤를 본다. 하지만 이 구절들은 프라이버시와 관련한 어떤 관점이나 규범을 제시하지 않고 단지 프라이버시와 연관 지어 볼 수 있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사전은 프라이버시에 관한 신학을 결국 포기하고, 이렇게 인정한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는 현대의 프라이버시 개념에 관한 자료가 빈약하다.”
출발점은 아마도 다른 데 있을 것 같다.


친밀 패러독스

성공회 기도서의 “마음의 정결함을 위한 기도”Collect for Purity는 전 세계 성공회 그리스도인들이 매주 드리는 기도문이다. 예레미야 23:24과 로마서 2:16을 떠오르게 하는, 이 기도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전능하신 하나님, 주께서 모든 사람의 소원을 다 아시며, 은밀한 것이라도 모르시는 바 없나이다.”

아마도 프라이버시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을 찾는 가장 좋은 출발점은 다음과 같은 질문일 것이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있는 우리에게 프라이버시는 있는가?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는 창조주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는 두려워서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네가 벗은 몸이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하나님이 물으신다. 타락하기 전에, 저주 받기 전에,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옷을 입고 숨는다.

우리가 “프라이버시”라 부르는 것은 저주의 일부일까? 의복처럼 어디에나 있고 자연스러운 그런 것에 불행한 측면이 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아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방어기제는 죄에 물든 우리의 본성에 뿌리 내리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어떤 불편한 진실이 있다. 우리는 친밀intimacy을 갈망하고 또 두려워한다. 알려지고 사랑받고자 하는 우리의 바람보다 유일하게 더 강한 것은 알려지고 사랑받는 것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다.

이러한 친밀 패러독스intimacy paradox는 타락의 결과이다. 이런 까닭에 나는 대화가 깊어진다 싶으면 실없게 농담을 꺼내거나,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에게 버럭 화를 내곤 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낯선 사람이 나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을 때 화가 치미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이 디지털 세상에서 프라이버시를 보는 우리의 방식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우리가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 될 것이다. 가족 저녁식사 자리에서든 우리의 아이폰에서든, 우리는 알려지고 싶은 마음과 숨고 싶은 마음, 포스팅 하고 싶은 마음과 삭제하고 싶은 마음, 창문 가리개를 내리고 싶은 마음과 거리를 활보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끝임 없이 갈등하고 타협한다.

하나님께서 다시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실 때―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위하여 모든 죄를 단번에 없애실 때―프라이버시도 없어질까? 바울은 말한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고전13:12)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프라이버시를 거부하는가? 아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과 서로에게서 도망하려는 죄로 가득한 우리의 본성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프라이버시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나를 드러내어 그들을 사랑하라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the Knower을 아는 자유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새 힘이 있다. 숨기려 하지 않는 우리에게는 자기 드러냄self-revelation의 힘이 있다.

이것이 기독교적 사고가 지식과 관계, 친밀과 프라이버시에 일으키는 대역전이다. 문제는 “어떻게 나를 보호할 것인가”가 아니라, “나의 삶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이다. 우리의 삶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낸다는 것은 곧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간증의 힘을, 특히 그 간증이 매우 정직할 때를 떠올려보라. 눈물이 흐른다. 십자가의 자기 드러냄은 사람들이 고립과 방어와 익명 속에 자신을 감추는 두려움의 공간으로 파고들어간다. 십자가의 자기 드러냄은 약함과 증언으로 우리를 휘감고 있는 죄로 인한 관계적 절망을 받아친다.

세상도 이것을 갈망한다. [전문 보기: 우리를 드러내어 이웃을 사랑하자. 프라이버시 뒤에 숨지 말자.]


크리스 리즈웨이 기술과 신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글을 쓴다. DEVICE and Virtue 팟캐스트 진행자이며, 시카고 지역을 중심을 사역하는 성공회 교회 개척 조직인 그린하우스 운동Greenhouse Movement의 실행 커미셔너이다.

Chris Ridgeway, “Fixing Our Privacy Settings” CT/CTK 20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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