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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한다는 것후지산, 그리고 아사미 레이코의 인생
홍승영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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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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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가지 사진 김병수 목사 30년을 줄곧 함께해 온 친구가 이리도 많은 것은 다들 목회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1988년도에 신학대학에 입학했다. 올림픽이 열리는 해였다는 이유로 꿈나무라 불렸다. 선교가 뜨거운 시기여서 얼굴 마주칠 때마다 “세계 선교”를 외치며 다녔다. 신학 전공이 아닌 학생들은 얼굴을 찌푸리곤 했다. 제자훈련 받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때론 가까운 곳에서 또는 까마득한 곳에서, 각자 사역하는 것 같으면서도 이런 저런 일들을 함께 사역했다. 서로에 대한 공감이 커졌다. 공감이 커지다 보니 얼굴만 떠올려도 가슴 한편이 울린다. 올해는 30주년이 되니 특별한 시간을 갖자고 했다. 이십여 년을 도쿄에서 사역한 친구를 방문하기로 했다. 쉰 살이 된 열다섯 쌍의 부부가 일본에 갔다. 후지 산을 향해 가는 버스 안에서 듣는 목소리는 옛날과 거의 같았다. 목소리는 얼굴보다 천천히 늙는다, 고맙게도! 스무 살에는 모든 것이 숨은 것 같았다. 가능성 있는 나이라고 했지만 가능성이 보이지는 않았다. 약점들도 많았는데 그것이 가져올 불편한 결과도 아직은 숨어 있었다. 안수 받아 목사가 된 서른 살의 우리는 그 직임에 스스로 낯선 설익은 목사였다. 두 손을 들어 축복하는 것이 어색해 몰래 거울을 보며 연습했다. 연습하고 축복하는 것은 무효인 것 같아서 두렵기도 했다. 사명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마흔에는 많은 일들이 생겨 다양해졌다. 친구들은 담임목사가 되거나 교수가 되었다. 잠시 목회를 중단한 이도 있었고,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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