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적 글쓰기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구독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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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글쓰기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구독자 전용]
  • 송인규
  • 승인 2018.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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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규 교수의 책 이야기 | 책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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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글쓰기”는 지난 호의 주제였다. 이번에는 “신학적 글쓰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지 말하고자 한다. 언뜻 보기에는 이 내용이 약 5개월 전에 다룬 주제―“짧은 글/기사(記事) 글쓰기”―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 호는 “신학적 글쓰기”에 치중한다는 점과 또 그 과정을 좀더 자전적인 형식으로 풀어 간다는 점에서 완연한 차별성을 드러낼 것이다.

 

나는 최근에 “‘욤’의 길이”(사례 1), “여성의 위상에 대한 복음주의적 견해”(사례 2), “목회자의 성적 일탈”(사례 3)이라는 주제로 신학적 글쓰기를 시도했다. 이제 내가 이런 주제의 글쓰기를 구체화시킨 과정을 사실 그대로―물론 약간의 각색이나 변용조차 배제하지는 않았지만―기술하고자 한다. 사례 1은 창세기 1장의 “날”day인 히브리어 ‘욤’이 실상 어떤 길이의 시간을 표명하는지 규명하려는 것이다. 사례 2는 최근 대두되는 페미니즘 운동과 관련해 일종의 신학적 길라잡이가 필요하다 싶어 일단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입장을 소개하고자 꾸몄다. 사례 3은 왜 남성 목회자들이 여성들에 대해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자행하는지 밝히고 그에 대한 조치나 방안은 어때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나는 신학적 글쓰기의 과정에 세 단계―(i) 기획의 단계, (ii) 연구의 단계, (iii) 집필의 단계―가 있음을 제일 먼저 밝히고자 한다. 물론 이 단계들은 어느 정도 임의적이라서, 한 단계의 종료점과 다음 단계의 시작점이 하나의 연속선continuum 가운데 한데 어울린 것으로 목도될 수도 있다. 그러나 뭐 어떤가? 대체로 단계란 것은 그런 느슨한 성격의 경계점을 보유하기 마련 아닌가?
 

기획의 단계

신학적 글쓰기의 첫 단계는 “기획”이다. 기획은 어떤 특정한 주제의 신학적 글쓰기를 하겠다고 안을 꾸미고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기획을 이렇게 이해할 때, 기획의 단계에는 상황, 목표, 개략의 세 요소가 포함된다. 상황은 이런 주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이유에 관한 것이고, 목표는 이번 글쓰기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를 가리키며, 개략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분량(단락 및 소단락)이면 될지를 가늠하는 작업이다.


사례 1: 욤의 길이

내가 욤의 길이를 밝히는 일에 일종의 사명감을 갖게 된 까닭은 이 주제와 관련해 한국 교회에 널리 퍼져 있는 오해·무지·편견 때문이었다. 한국 교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은연중에 창세기 1장의 “날”day(욤)을 24시간으로 받아들이는 견해만이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을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합당한 판단이 아니다. 현재 전 세계의 장로교회 가운데 가장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장로교회(PCA)에서조차 욤의 길이에 대해서 네 가지 복수의 입장을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유독 한국의 기독교 지도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논의 및 결정 사항에 대해 깜깜무소식이다.

이러한 상황이 납득불가인 것만은 아니다. 우선 이런 자료가 있다는 것을 몰랐고, 혹시 알았다고 해도 영어로 되어 있어 내용의 파악에 지장이 있었을 것이며, 더군다나 여러 곳의 용어·이론·내용 설명이 낯설어 자신의 지식으로 만들기는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신학적 글쓰기의 목표를 욤의 다양한 용례를 간명히 소개하고 설명하는 데 두었다. 이런 주제에 처음 접하는 목회자나 지도자라 할지라도 쉽사리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우선은 깨우침이 있어야지만 그 다음 수준의 교육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기 때문이었다.

글의 개략은 복잡할 필요가 없었다. 우선, PCA 총회에서 욤의 길이를 다루지 않을 수 없었던 계기를 당시의 정황에 비추어 설명하고, 히브리어 “욤”의 3∼4가지 용례를 기술한 후, 세 가지 입장―(i) 24시간 견해, (ii) 시대일 견해, (iii) 틀 이론―을 차례로 선보이면 될 것이었다. 원래 자료에는 네 가지 입장이 수록되어 있지만 지면 관계상 네 번째 입장―“유비일 이론”―은 후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사례 2: 여성의 위상

강남역의 “묻지 마 살인 사건” 이후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비非정형이지만 풀뿌리적 성격을 지닌 남성 비판 운동이 준동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이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어떻게 응수해야 할지 난감해 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우선,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갖는 다의성多義性이 생각의 혼란을 초래했다. 또 대부분의 페미니즘 관련 아이디어나 사상이 비기독교적이거나 비복음주의적인 것도 문제의 심각성을 부추겼다. 게다가 과거에는 어떤 이슈가 발발할 때 무언가 한마디 하거나 그들 나름의 견해를 밝히던 기독교 지도자들(주로 기성세대의 남성들)조차 무관심·무지·당혹으로 일관한 때문이었다. 따라서 일단은 페미니즘 현상에 대한 성경적·신학적 길라잡이가 화급히 요청되는 것으로 판단이 섰다. 그래서 나는 주로 미국의 복음주의 내 다양한 반응들을 정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한국의 실정이 이상과 같으므로 글의 목표 또한 이에 비추어 설정했다. 즉 여성의 위상에 대한 미국 복음주의 내의 정확한 지형도를 그리는 것이 이 신학적 글쓰기의 목표가 되었다.

동시에 글의 개략도 네 가지 서로 다른 입장―(i) 가부장제, (ii) 상보론, (iii) 평등론, (iv) 페미니즘―을 골조로 삼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게 여겨졌다.

 

사례 3: 목회자의 성적 일탈

나는 예전부터 목회자의 성적 일탈이나 비행에 대해서 신학적 글쓰기를 시도하고 싶었다. 그것은 미국의 경우 벌써 1970〜80년대부터 기독교 지도자나 사역자 가운데 60∼70퍼센트가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보고 때문이었다. “텔레반젤리스트” 짐 베이커Jim Bakker(1940-)나 지미 스웨거트Jimmy Swaggart(1935-)야 그렇다 치더라도, 잠시 IVF 대표로 일했던 고든 맥도날드Gordon MacDonald(1939-)까지 (비록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적법한 징계의 과정을 거쳐 회복이 되었다고 해도) 성적 스캔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목회자의 성적 일탈을 이해하는 관점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그것은 목회자의 성적 일탈을 그저 개인의 부주의나 약한 의지로만 설명할 수 없고, 오히려 자신의 사역 대상에 대한 권세의 남용power abuse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부분적으로 가톨릭교회 지도자들의 뿌리 깊은 성적 비행 현상과도 맞물려 있었다. 가톨릭교회는 사제들의 이런 해묵은 비행을 은폐하고 묵인하고 눙쳐 버린 또 다른 차원의 죄를 범했는데, 뒤늦게나마 이런 잘못을 시정하려는 노력 가운데 성적 비행의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루게 된 것이다. 사실 개신교 내에서도 메노나이트 신학자 존 요더John Howard Yoder(1927-1997)의 끔직한 비행―1970〜80년대에 걸쳐 100여 명의 여성에 대해 성희롱과 성폭력을 자행한 일―이 권세 남용의 대표적 사례로 부각되었다.

그리하여 나 또한 이 주제의 신학적 글쓰기를 통해 목회자의 성적 탈선이라는 것이 개인적 과오인 동시에 권세 구조적 문제라는 것도 아울러 밝히고자 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고자 하니 개략을 잡기가 무척 힘들었다. 두 가지 관점―개인적 관점과 권세 구조적 관점―을 적절히 통합시키기도 어렵고, 또 후자의 경우 이에 대한 설명과 대처 방안이 다양하고 광범위하기 짝이 없는데 지면 관계상 몇 가지만 선택적으로 기술한다는 것 또한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쨌든 3∼4개의 단락을 염두에 두고 글의 개략을 계획했다. (비록 연구의 단계 및 집필의 단계에서 개략 설정에 큰 변동이 찾아오기는 했지만.)

 

연구의 단계

신학적 글쓰기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이 “연구”research다. 이 단계에서는 특정 주제와 연관한 자료를 찾아내고 그 내용을 섭렵하여 글 쓸 거리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자료 찾기, 내용 섭렵, 쓸 거리 마련이 연구의 단계에 포함되는 주된 활동이라고 하겠다.

자료 찾기의 경우, 이미 특정 주제를 취급한 적이 있으면 “맨땅에 헤딩하는”식의 부담과 수고가 훨씬 덜어진다. 기존의 연구 자료가 확보된 터라 필요하다면 부가적 자료만 더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만일 처음으로 이 방면의 자료를 찾는 경우라면 적실한 양질의 자료를 만날 때까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시간의 단축은 어느 정도 “운”의 문제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 노력의 열매이기도 하다.) 대체로는 이미 알려진 저술이나 논문을 기점으로 하여 출발하는 것이 안전하다.

요즘 나는 구글 검색이나 영어판 위키피디아의 설명을 통해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웬만한 주제나 아이디어, 사상 등이 상당히 자세하고 정확히 풀이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에 백과사전이나 각종 사전을 뒤적거리며 찾던 정보를 이제는 거의 온라인으로 입수할 수 있게 되었다.

내용 섭렵에는 왕도가 없다. 정확히 읽고 내용의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함양되려면 짧지 않은 세월의 훈련이 요구된다. 이런 형태의 “내공”이 쌓여야만 내용의 섭렵이 신속하고 정확해진다. 바로 이 시점에서 안타깝게도 영어 읽기의 숙달 문제를 거론해야겠다. 아직까지 신학적 글쓰기와 연관한 많은 자료들이 영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또 일일이 다 번역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영어 읽기의 실력은 내용 섭렵의 첩경이라 할 정도로 중요하다. 영어 읽기로 인해 문화적으로 종속되는 일은 피해야 하지만 훌륭한 도구의 획득이라는 관점에서는 필수불가결한 사항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쓸 거리 마련은 섭렵한 내용을 글 쓰려는 목표 및 글의 개략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시키는 작업을 의미한다. 자신이 읽고 파악한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목표나 개략 상 이번 글쓰기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면 제외시켜야 한다. 반대로 섭렵한 내용이 의미심장하고 적실하다 싶으면 그 내용이 자리 잡은 위치를 (책갈피든 밑줄을 긋든 별도의 장치에 의해서든) 정확히 표시해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어디서 읽었는지, 그 내용이 무슨 맥락에서 개진되었는지 흐릿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표시된 부분은 나중에 다시금 (아니면 심지어 3〜4회나 반복적으로) 자세히 살펴야 한다. 이런 부분들을 핵심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면서 나 나름대로의 사상이 수립되는 법이다. 어떤 때는 거기서 발전된 논점을 부연 설명해야 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으며, 또 어떤 때는 그 아이디어를 논지의 출발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다. 또 어떤 때는 자신의 주장점을 확립하는 데 유리하도록 그 본문을 인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례 1: 욤의 길이

내가 욤의 길이로 신학적 글쓰기를 시도했을 때는 다행히도 이 주제가 난생 처음의 과제가 아니었다. 사실 PCA 총회 자료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익히 알아 오던 터였다. 따라서 더 이상의 자료를 찾느라고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단지 두 가지 부가적 노력은 있어야 했다. 우선, 욤의 용례에 대한 어휘적 고찰이 필요해 구약 어휘 사전이나 구약 신학 사전 등을 참조했다. 또, 틀 이론framework hypothesis(욤에 대한 세 번째 입장)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구약학자 클라인Meredith G. Kline(1922-2007)의 논문 “Because It Had Not Rained”(비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Vol. 20, No. 2(May 1958): 146-157)를 찾아보아야 했다.

막상 난항을 겪은 것은 틀 이론의 내용을 섭렵하고자 할 때였다. 이 이론은 언뜻 보기보다 내용이 어렵고 복잡했다. 특히 논문 제목과 틀 이론 수립 사이의 이론적 관계가 명료하지 않았다. 결국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은 채 틀 이론을 소개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쓸 거리 마련에도 지장을 초래했다. 왜 클라인이 욤과 관련하여 24시간 견해나 시대일 이론을 마다하고 틀 이론을 제시했는지 충분히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이 논문을 쓰고 난 이후 틀 이론을 이해할 수 있는 성경의 증거를 시편 105:26-36에서 발견하고서 흥분했지만, 클라인의 이론 제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미진한 점이 남아 있다.)

 

사례 2: 여성의 위상

여성의 위상에 대한 복음주의 내의 지형도 역시 내가 처음 접하는 주제는 아니었다. 이미 이전의 연구를 통해서 복음주의자들은 가부장제patriarchy, 상보론complementarianism, 평등론egalitarianism, 페미니즘feminism의 네 캠프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 당시 처음 연구할 때는 이러한 지형도조차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각각 자신의 입장만을 강력히 내세울 뿐 다른 목소리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무척 도움을 준 것이 위키피디아의 글이었다. 각 입장에 대한 개관적 소개가 있을 뿐만 아니라 글의 끝에 연관 용어들―실은 이것이 다른 입장에 대한 명칭이었다―이 수록되어 있어서 여러 입장들을 함께 고찰할 수 있었다.

어쨌든 복음주의 내 여성의 위상을 주제로 다시금 신학적 글쓰기를 시도하고자 할 때 나는 과거의 연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로 페미니즘(네 번째 입장)의 형편을 살피는 데 주력하였다. 그리하여 성경적/복음주의적 페미니즘이 복음주의의 울타리 내에서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페미니즘의 기여점과 우려점은 무엇인지, 페미니즘 내의 여러 갈래는 어떠한지 탐구하는 일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었다. 이때 가장 큰 도움을 받은 책자는 메리 캐시언Mary A. Kassian The Feminist Gospel(페미니스트 복음, Wheaton, Illinois: Crossway Books, 1992)과 파멜라 코크란Pamela D. H. CochranEvangelical Feminism: A History(복음주의 페미니즘의 역사, New York: NYU Press, 2005)였다. 이 책들이 수록한 문헌 정보bibliography를 낱낱이 살피면서 필요하다 싶은 자료들도 구해 읽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질문할 것이다. “그런 자료들을 어떻게 구하느냐?”고. 우선, 논문이나 학술 자료의 경우 인터넷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본다. 불가능하면 도서관에 자료를 구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아니면 해외에 있는 유학생들에게 요청하는 수도 있다.) 책의 경우에는 뒤늦게라도 아마존이나 에이브북스로 신청을 한다. (물론 경비에 관한 문제가 따르지만 이곳에서는 논외로 하겠다.)

여성의 위상에 대한 글이나 자료는 내용의 섭렵에 어려움을 끼친 적이 없다.

또 쓸 거리를 마련할 때도 비교적 수월히 작업할 수 있었다. 새로이 섭렵한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곧 글 쓸 재료가 되었다.

 

사례 3: 목회자의 성적 일탈

목회자의 성적 일탈을 목회자 개인의 유혹이나 시험의 문제로만 다룬다면, 이 주제도 내게 생면부지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미 성직자의 성적 비행이 전全 서구적 보편 현상으로 알려지고 그것도 권세의 남용이라는 심각한 증상으로 밝혀진 오늘날에는 새로운 연구가 필요했다. 새로운 세기로 접어들면서 목회자의 성적 일탈 문제는 여러 각도에서 조명을 받았고, 그 연구 범위나 깊이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증폭되고 심화되었다.

내가 얼마 전 이런 주제의 신학적 글쓰기를 시도하고자 했을 때 나는 연구 자료의 방대함에 놀랐고 다소 위축감까지도 느낄 정도였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내용의 섭렵에 지장을 초래했다. 내용이 어렵거나 심오한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 읽고 섭렵해야 할 자료가 많기 때문에 시간적 한계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동시에 쓸 거리를 마련할 때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도대체 이 많은 내용 가운데 어떤 것을 선별하여 이 주제에 대한 글쓰기를 시도한단 말인가? 이런 자문 때문에 이 주제로 글을 쓰는 일에 대한 부담이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이럴 때에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나는 다행스럽게도 이 주제에 대한 신학적 표준서 한 권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스탠리 그렌츠Stanley J. Grenz와 로이 벨Roy D. BellBetrayal of Trust: Confronting and Preventing Clergy Sexual Misconduct(신뢰의 배반: 성직자의 성적 비행, Grand Rapids, Michigan: Baker Publishing Group, 2001)였다. 부담감 때문에 마음을 계속 졸이면서도 진득한 자세로 이 책을 세세히 읽어 나갔다. 또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저술과 논문 가운데 꼭 필요한 것은 구해서 읽고자 힘썼다. 그러고는 마음을 다잡고, 어차피 이 주제로 글을 쓴다고 해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내용이라는 점을 스스로 되뇌었다. 결국에는 글 쓸 거리의 범위를 좁힐 수 있었고 마음의 평정도 되찾게 되었다.

 

집필의 단계

이제 신학적 글쓰기의 마지막 과정인 집필의 단계에 이르렀다. 이 단계에서는 지금까지 준비해 온 자료와 구상한 바에 의거하여 구체적으로 글을 쓰는 일이 펼쳐진다. 글 쓰는 이는 기획의 단계에서 잡은 개략―그냥 머릿속에만 담겨 있든지 아니면 메모지에 끄적거려 놓았든지―을 좇아 한 부분 한 부분 자신의 생각과 관념을 외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작업을 컴퓨터 모니터 위에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나는 아직도 볼펜을 손에 쥐고 이면지에다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종이에다 쓴 내용을 보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원고를 채워 가는 일은 내 아내의 몫이다. 나는 보통 A4 용지 반 장(많으면 한 장) 정도의 분량을 쓰고서 아내에게 쳐 달라고 부탁을 한다. 나는 아내가 쳐서 출력한 내용을 읽으며 빨간 볼펜으로 수정 및 가감을 하는데, 보통 이 작업은 2∼3회 반복된다.

글을 쓰기에 앞서 유념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언급하고자 한다. 우선, 가능하면 지금 쓰고자 하는 글의 골격scaffold을 정확히 묘사할 수 있어야 한다. 글의 골격은 보통 단락, 논점, 하부 논점으로 구성된다. 이번 호에 내가 쓴 글의 골격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단락 1: (짧은 서론)

단락 2: 기획의 단계

          논점 1: 욤의 길이

                    하부 논점 1: 상황

                    하부 논점 2: 목표

                    하부 논점 3: 개략

          논점 2: 여성의 위상

                          ⋮

          논점 3: 목회자의 성적 일탈

                          ⋮

단락 3: 연구의 단계

               ⋮

단락 4: 집필의 단계

               ⋮

단락 5: (더 짧은 결론)

 

물론 글을 쓰다 보면 세부 사항에는 자주 변동이 생긴다. 특히 하부 논점과 논점에서 그러하다. 심지어는 단락에도 격변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글의 질이 높아지고 가독성이 향상될 수 있다면 단락의 변화가 대수겠는가?!

단락이나 소단락이 바뀔 때 그냥 넘어가지 말고 제목이나 소제목을 달아 주는 것이 글을 쓰는 이에게나 읽는 이에게나 도움이 된다. 상기한 예를 들자면 “기획의 단계” “연구의 단계” “집필의 단계”는 제목에 해당이 되고, “욤의 길이” “여성의 위상” “목회자의 성적 일탈”은 소제목으로 분류된다.

그 다음으로는 글의 내용 가운데 도표나 도식을 포함할지 결정해야 한다. 도표나 도식은 대조·비교·전후관계의 흐름을 통해 복잡한 개념과 현상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하다. 대신 글의 양이 그만큼 더 늘어난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이들에 비해 도표나 도식을 훨씬 자주 활용하는 편이다. 어쨌든 글을 쓰기 전에 어느 단락 어느 부분에 도표나 도식을 도입할지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한다.

또 한 가지 더 고려할 바로서 인용에 관한 것이 있다. 인용은 다른 저자나 자료 제공자의 글과 주장을 그대로 따오는 것이다. 인용할 내용이 적으면 따옴표를 사용하여 그저 자신이 쓰는 글의 본문에 소개하면 된다. 그러나 인용 내용이 상당히 길면(예를 들어 4줄 이상), 당연히 본문과 별도로 인용문을 위한 공간을 할애해야 한다. 물론 이때 각주가 따라붙어야 함은 기본 상식이다.

주의를 좀더 기울여야 하는 것은 외국 도서를 인용할 경우이다. 글 쓰는 이는 인용문을 정확하고 알기 쉽게 번역해야 한다. 번역된 인용문의 효율성 여부는 인용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독자의 입장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독자가 읽을 때 인용 내용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다면, 그 책임은 인용자, 곧 글쓴이에게 물어야 한다. 그러므로 글 쓰는 이는 번역 내용을 여러 번에 걸쳐 읽고 고침으로써 읽는 이들의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읽히고 쉽게 이해되도록 주선해야 한다.

 

사례 1: 욤의 길이

욤의 길이에 대한 신학적 글쓰기의 목적이 한국 교회에 만연해 있는 오해와 편견의 불식이었고, 주로 미국의 보수적 장로교회인 PCA 교단의 총회 문서 내용을 살피는 데 역점을 두었기 때문에, 나의 글도 그러한 취지에 맞추어 형성되었다. 최종적으로 구성된 글의 골격은 다음과 같다.
 

단락 1: (짧은 서론)

단락 2: 보수적 장로 교단에서의 연구와 결과 발표

단락 3: 욤의 용례와 의미에 대한 이해

단락 4: 세 가지 해석

           논점 1: 24시간 견해(Calendar-Day View)

           논점 2: 시대일 견해(Day-Age View)

           논점 3: 틀 이론(Framework View)

단락 5: (짧은 결론)


사례 2: 여성의 위상

나는 여성의 위상과 연관한 신학적 글쓰기를 두 번에 걸쳐 시도했다. 하나는 “여성의 위상에 대한 복음주의 내의 지형도”로서 네 가지 입장―가부장제, 상보론, 평등론, 페미니즘―을 자세히 소개하는 글이었다. 이 글에는 각 입장의 핵심적 주장, 주장의 근거, 그리고 입장을 달리하는 이들의 평가를 싣도록 했다. 도표나 도식도 여기저기에 나타났고 (특히 어떤 단락은 페미니즘 운동의 발전 과정을 연표적으로 정리했다), 무엇보다도 인용문이 많았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다시금 이 주제로 신학적 글쓰기의 기회가 주어졌다. 이번에는 주로 페미니즘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를 했고 글을 썼다. 두 번째 글의 골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단락 1: (짧은 서론)

단락 2: 정의定義의 문제: “복음주의”와 “페미니즘”

단락 3: 페미니즘 운동의 발전 과정

단락 4: 페미니즘: 기여와 우려

           논점 1: 기여한 바

                    하부 논점 1: 페미니즘의 주장과 고발은 압제 받는 여성의 처우를 혁신하는
                                      추동 요인이 되었다.

                    하부 논점 2: 가부장적 성경 해석의 문제점을 정확히 노출시켰다.

                    부 논점 3: 기독교의 핵심적 신앙 개념과 관련하여 새로운 깨달음을 자극하였다.

         논점 2: 우려스러운 바

                 하부 논점 1: 하나님에 대한 호칭의 변경은 하나님에 대한 개념조차 바꾸어 놓
                                      는다.
                                    

                 하부 논점 2: 페미니스트들의 해석학적 책략은 때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르곤 한다.

                     하부 논점 3: 페미니스트들은 동성애가 성경적으로 합당한 성적 형태라고 인정하
                                       는 데까지 나아갔다.

단락 5: (매우 짧은 결론)

 

사례 3: 목회자의 성적 일탈

나는 목회자의 성적 비행 문제를 목회자 개인의 신앙적 불찰이나 미성숙으로만 다루는 시각을 이미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가 목회자 개인의 성심리적·경건적 삶과 무관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런 측면도 권세의 남용이라는 더 큰 시각에서 조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관점에 대폭 수정이 가해지면서 나는 이 주제로 신학적 글쓰기를 시도한다는 것이 버겁게 느껴졌다. 중간에 우여곡절과 기복이 꽤 있었지만, 어쨌든 최종 골격은 다음과 같이 꾸며졌다.
 

단락 1: (짧은 서론)

단락 2: 성적 비행의 관련자

         논점 1: 가해자에 대한 탐구

                  하부 논점 1: 강탈자 유형의 목회자

                  하부 논점 2: 방황자 유형의 목회자

         논점 2: 피해자에 대한 이해

단락 3: 성적 비행의 주된 원인들

          논점 1: 가해자의 문제점

                   하부 논점 1: 어린 시절의 경험

                   하부 논점 2: 결혼 생활의 위기

                   하부 논점 3: 목회 사역의 성격

          논점 2: 피해자의 문제점

단락 4: 성적 비행의 과정

          논점 1: 어느 일탈의 사례

          논점 2: 네 가지 계기

단락 5: 성적 비행자에 대한 대책

          논점 1: 교단이나 상위 기관은 목사 후보생을 최종적으로 인준하기 전에 성적 비행과 연관
                      한 사전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논점 2: 목회자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부지런히 자신을 살피고 점검하되 성적 유혹과 싸우
                       는 면에서 그리해야 한다.

          논점 3: 목회자는 배우자와 더불어 친밀한 부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논점 4: 목회자는 성적 유혹과 관련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철칙을 고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까지 신학적 글쓰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과정을 세 단계―(i) 기획의 단계, (ii) 연구의 단계, (iii) 집필의 단계―로 구별하여 설명했다. 또 이런 설명이 하나의 이론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내가 최근에 시도한 신학적 글쓰기의 주제들―“욤의 길이” “여성의 위상” “목회자의 성적 일탈”―을 사례로 들면서 자전적 경험을 나누고자 하였다. 바라기는 이 내용이 신학적 글쓰기를 시도하는 모든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격려와 자극과 영감의 원천이 되었으면 한다. CTK 2018:10
 


송인규 한국교회탐구센터 소장, 전 합동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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