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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선, 예수의 선
박윤만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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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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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 임동규

그리스도인에게 자연은 무엇인가

만물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적 성품이 간직되어 있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모종의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그 역할은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 자신의 성품과 능력을 알리고 인간은 그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도록 하는 역할이다. 자연을 인간 위에 두면 숭배의 대상이 되고(범신론) 자연을 인간 아래에 두면 착취의 대상이 되지만(인본주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두면 그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배움의 현장이 된다. 물론 자연이 가르치는 바를 배운다고 우리가 영생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영생의 길은 자연의 은총이 아닌 특별은총을 통해, 곧 예수님을 통해 온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통해 특별은총을 받은 자에게 자연은 이제 그냥 자연일 수 없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담긴 자연은 우리 인간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그 은혜를 받아 누리도록 하는 또 하나의 은총의 현장이다. 이를 위해 자연은 인간에게 계속 말을 건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말해주기 위해서이다. 물론 자연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와 다르다.
 

자연의 선

인간의 언어는 읽어서 이해하지만 자연의 언어는 봄으로 이해한다. 예수님은 그래서 공중의 새를 “보라”(마6:26), 들의 백합화를 “보라”(마6:28) 하신다. 자연은 보여줌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인간은 그것을 봄으로 소통한다.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보려면 자연의 무엇을 보아야 할까? 자연에는 선線;line이 있다. 인위적인 것 말고 자연스러운 선 말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주님, 자연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려 하십니까’라고 물으면 아마도 하나님은 ‘선을 보라’ 하실 것이다. 자연에는 어떤 선이 있는가? 자연의 선은 곡선이다. 굽이도는 곡선 말이다. 자연은 직선을 만들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선이란 지그재그이다.

강은 굽이굽이를 만들며 흐르고, 해변으로 밀려오는 바다의 파도 역시 언덕과 같이 굽이쳐 올랐다가 아래로 치달으며, 구름도 두루뭉술 울퉁불퉁 형성되어 흘러간다. 빛 역시 현대 과학이 밝힌 것처럼 파장으로 비추인다.

직선으로 만들어진 산이 있을까? 기계의 손이 닿지 않는 이상 모든 산은 곡선이다. 그 산을 오르는 길 역시 지그재그이다. 인간의 발걸음이 만든 길은 또 어떤가? 고부랑길이다.

돌고 도는 길을 걸을 땐 답답하고 조급증이 올라온다. ‘언제 도착하나…’ ‘아직 멀었나…’ 여러 부정적 감정이 생긴다. 그래서 산을 오를 때면 빨리 오르려고 직선의 지름길을 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산 정상을 둘러 허리 길을 만들어 낸다. 직선 길로 오르면 얼마 못 가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곧 지치고 포기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강도 굽이치지 않고 직선 길이 되면 급한 물살이 만들어져 홍수가 날 수 있다. 하지만 굽이굽이 난 강줄기는 물살을 완만하게 하여 대지의 젖줄이 된다.

자연의 곡선과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나님이 자연을 만드실 때 그 선이 곡선이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자연의 일부분인 인간의 삶 속에서 천편일률로 앞으로만 뻗어 나가는 직선이 아니라 오히려 두르고 굽이도는 곡선의 방식으로 일하신다는 것을 말한다. 언뜻 생각하면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은 구부러진 곡선을 직선으로 만들어 우리로 모든 일에서 직행하도록 하실 것 같지만 적어도 자연을 통해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길은 그 반대다. 하나님이 걸으시는 길은 지그재그이며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순간도 굽이치는 길에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체험하고 그의 성품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은 잘 나가던 선이 꺾이는 바로 그 지점이다. 파도가 일어날 때 바다의 에너지를 경험할 수 있듯이 인생의 파도가 밀려올 때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직선 인생을 꿈꾼다. 그런 인생을 꿈꾸기에 고부랑길을 깎아 곧게 뻗은 고속도로를 만들기도 한다. 모든 직선을 욕망이라고 말하기는 너무 가혹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자연의 선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곧게 뻗은 길은 원하는데, 적어도 자연의 선을 통해 알 수 있는 바는 하나님은 우리를 직선으로 급하게 인도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충돌이 일어난다. 인위적인 직선과 하나님의 곡선이 우리 내면에서 서로 부딪힌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자. 이 세상 누가 굴곡 없는 탄탄대로의 삶을 살았는가? 또 살고 있는가? 아무도 없다. 어쩌면 인생의 실패는 직선으로 오르려 하다가 겪는 일일 수 있다. 산행을 할 때 거리가 짧다고 무작정 직선 코스를 택하다간 올라가지도 못하고 힘이 빠져 포기하게 되는 일과 같은 것이다.

새옹지마(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 예측이 어렵다), 고진감래(쓴맛이 다하면 단맛이 난다; 고생 끝에 기쁨이 온다), 전화위복(재앙이 바뀌어 오히려 좋은 일이 생김), 우후지실(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이런 사자성어들이 말하는 바는 인생은 직선으로 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이런 말을 만든 옛 사람들은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만나지는 못했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자연과 더불어 살다가 깨달은 지혜가 아닐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그들이 얻은 지혜가 자연의 지혜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연에 심어 놓으신 신적 지혜의 일부분인 것을 안다. 자연의 일부분으로 이 땅을 사는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과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들을 언제 어떻게 우리가 맛보게 되는지를 옛 사람들이 말해주는 듯하다. ‘쓴맛 없이 단맛만 추구하지 마시오. 그런 것은 없소. 다만 쓴맛이 느껴진다면 끝까지 견디시오. 하나님의 선하심은 견딜 때 맛보게 될 것이요.’ [전문 보기: 자연의 선, 예수의 선]
 

이 글은 한겨례신문 2018년 1월 11일치 “지그재그로 살아볼까! 행복 되찾는 법”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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