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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버마 그리스도인들미얀마에서 탄압 받는 소수민족은 무슬림 로힝야족만이 아니다.
리 윌리암스  |  Lee Willi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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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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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수십만의 로힝야족 무슬림을 삶의 터전에서 내쫓았다. 미얀마 서남부 지방을 그렇게 휩쓸어버린 버마족 군대가 이제는 또 다른 종교ㆍ민족적 소수집단인 카친족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북부 지방으로 이동하고 있다.

2018년 6월 현재, 카친족 수천 명이 50개가 넘는 마을에서 내몰렸다. 이로써, 카친 독립 기구(KIO)에 따르면, 모두 400개 마을, 300개 교회, 그리고 100개 학교 이상이 2011년부터 미얀마 군인들에 의해 파괴되거나 피해를 입었다.

집과 마을을 등지고 피난길에 오른다고 카친족에게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미얀마 군경은 카친독립군(KIA)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 있는 국내실향민(IDP) 캠프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도주의 지원을 차단했다. 이 캠프들의 다수는 침례교회들과 가톨릭교회들이 운영하고 있다.

17년간의 휴전이 깨지고 미얀마(버마)가 다시 내전에 휩싸인 뒤로 카친 주와 샨 주에서 약 13만의 카친족이 IDP 캠프로 쫓겨났다.

그런데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군의 초토화전은 지속적으로 국제사회에 알려지고 있지만, 카친족에 대한 유사한 인권침해 만행―강간과 고문과 살인―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유엔 조사단은 로힝야족과 카친족에 대한 폭력은 “매우 유사하다”고 보고했다.

지난 가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얀마를 방문해 카친족의 환영을 받았을 때 잠시 세계의 시선이 카친족에게 모아졌다. 그러나 그 이후로 카친족은 세계 교회가 자신들에게 무관심하다고 느끼고 있다.

“미얀마군이 주민들을 마을에서 강제로 내쫓고 우리 교회들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카친 대학ㆍ신학교의 신약학 교수 라양 셍 자는 말했다. “세상이 우리에게 무관심한 것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어디에 있나요?”

“우리는 미국 선교사들의 수고의 열매입니다.” 그녀는 말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있나요?”

카친족에 대한 만행은 지난봄에 절정에 달했다. 미얀마군은 KIA는 테러 집단이고 마을에서 발행한 폭력은 대부분 부차적인 것이라며 자신들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역 지도자들과 외부의 종교자유 감시단들은 카친족 마을들에 대한 공격은 기독교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한다.

카친족은 오래 전부터 기독교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이들의 기독교 역사는 아도니람 저드슨 선교사가 버마에 도착하여 성경을 버마어로 번역한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여러 곳에 침례교회를 세웠고, 그 영적 후손들이 현재 카친족 120만 인구의 다수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종교 탄압’이라는 말을 가벼이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미국에 본부를 둔 옹호 단체인 카친 연맹의 은상 굼 산 대표가 말했다. “그러나 교회들을 조직적으로 파괴하는 것은 틀림없는 종교탄압입니다.” 그와 카친 침례회(KBC)는 버마족이 교회를 파괴하고 그 자리에 불탑을 세우고 있다고 말한다.
 

   
연합뉴스


‘우리에게 남은 것이란 두려움뿐이에요’

카친 주와 샨 주에 165개가 넘는 IDP 캠프가 있다. 그 대부분을 침례교회들이 운영한다. 흐카운 누는 지난 5월에 IDP 캠프로 피난 왔다. 임신 수개월 째였던 그녀는 집을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남아 있는 것은 곧 굶어죽거나…살해당하는 것을 의미했어요. 우리에게는 남은 것이란 두려움뿐이에요.”
 

캠프에 도착하고 두 주를 막 넘겼을 때, 그녀는 여자 아이를 낳았다. 엄마가 인터뷰를 하고 있던 그 오후 시간에, 두 달이 채 안 된 아기는 평화롭게 자고 있었다. 아기 옆에서 누와 그녀의 딸이 파리들을 휘휘 쫓았다. 캠프에서는 시간이 더디 간다. 그냥 앉아 있거나, 자거나, 밥이나 죽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다.

비좁은 거주 공간, 모기 떼, 그리고 온통 진흙 바닥이지만, 난민들에게 캠프는 안식처이다. 이날, 와잉마우 침례교 협회(WBA)가 운영하는 진료소가 캠프에서 열렸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안과 및 구강 검사를 했고, 혈압을 쟀다. WBA는 월드 컨선World Concern, 월드 비전 같은 단체의 후원을 받고 있다고, WBA 남성사역 디렉터 흐파우유 탕 제가 말했다.

농구 코트 절반 크기의 공간에 350명이 생활하는 WBA 캠프는 미얀마에서 가장 큰 에야와디 강에 접해 있는 8개 캠프 중 하나이다. 이들 8개 캠프에는 모두 1만 명이 넘는 실향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바완 사우는 중국 국경이 가까운 마을을 떠나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가족은 총성이 마치 벼락과 천둥이 치듯이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서 도망쳐 나왔다고 말했다. “떠나야 할 때가 됐다는 걸 알았어요.” 이 열다섯 살 소년이 말했다.

카친족과 정부의 충돌은, 버마가 영국에서 독립한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KIO와 KIA는 1960년대에 불교가 버마의 국교로 선포되면서 결성됐다. 최근 몇 년 동안 카친ㆍ카렌ㆍ샨ㆍ친ㆍ로힝야 등 소수민족들은 불교로 강제개종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회와 모스크가 강제로 폐쇄 당하는 고초를 겪었고, 많은 사람들이 집단으로 이웃 방글라데시,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로 피난하고 있다.

1994년에 한 차례 휴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카친족과 정부 사이의 긴장은 2008년에 다시 고조됐다. 미얀마 개정 헌법의 몇 조항을 KIO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대변인 둠사 다우 흐카는 말했다. 2011년, 버마족으로 구성된 군대가 KIO가 통제하고 있던 수력발전소를 장악하기 위해 KIA를 공격하면서 휴전은 깨졌다. 그렇게 다시 내전이 시작됐다.

미얀마군은 전투기와 헬기, 중화기를 동원해 카친족 마을을 폭격하고 불태우고 있다. KIA는 공군력이 없고, 지상군도 AK-47 소총과 단거리 로켓포가 전부라고 다우 흐카는 말했다.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전문 보기: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버마 그리스도인들]
 

리 윌리암스 텍사스 포스워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
Lee Williams
Burma's Beleaguered Bap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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