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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과 빌립은 과연 집사였을까?
권해생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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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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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사도행전 6:3-6, 개역개정

8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사도행전 21:8, 개역개정
 

어느 목사님의 오해

     

년 제직 세미나를 앞두고 있는 한 목사님으로부터 문의를 받았다. 신임 집사 교육 및 제직 세미나 본문으로 사도행전 6장을 선택했는데, 혹시 좋은 신학적 아이디어가 없냐고 물어왔다. 그는 아마도 일곱 명의 집사를 선출하는 내용이 나오는 사도행전 6장이 집사 교육을 위한 적절한 본문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스데반과 빌립을 비롯한 일곱 명은 사실은 집사가 아니라고 했더니, 그 목사님은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우리가 흔히 집사로 알고 있는 스데반은 집사가 아니다. 물론 빌립도 집사가 아니다. 따라서 스데반과 빌립을 집사 직분의 모델로 제시하는 것은 성경적 근거가 없다. 물론 스데반과 빌립은 충성된 일꾼으로서 우리 모두의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집사이기 때문에 사도행전 6장을 신임 집사 교육을 위한 필수 본문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바른 해석을 위한 열쇠: 원문 비교

개역개정 사도행전 6:1-6에는 “집사”라는 말이 없다. 다만 사도행전 21:8에서 빌립이 소개될 때, “일곱 집사”라는 명칭이 나온다: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바울 일행이 전도여행 중에 빌립의 집에 머무른 것을 설명하기 위해, 사도행전 저자는 빌립을 일곱 집사 중의 하나로 소개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헬라어 원문에는 없다. 원문에 따르면, “일곱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이 된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도 집사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다. 다만, 1534년판 틴데일 신약성경Tyndale New Testament이나 NIV를 의역한NIRVNew International Reader’s Version 등 소수의 영어 성경만이 ‘집사’deacon라는 말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왜 개역개정은 원문에도 없고, 대부분의 영어 성경도 표기하지 않는 ‘집사’라는 호칭을 사도행전 21:8에 붙였을까? 아마도 오래된 영어 역본에 기초한 초창기 한글 성경의 전례를 그대로 따랐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구제와 관련된 일곱 사역자들의 일이 지역 교회에서 집사가 하는 일과 유사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집사’로 번역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좀 더 원문을 연구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사도행전 6장에서 “구제”를 뜻하는 헬라어 단어는 디아코니아(섬김, 봉사)이다(행6:1). 또한 “접대”를 뜻하는 헬라어 단어는 디아코네오(섬기다: 원문은 ‘테이블을 섬기다’는 뜻이다)이다(행6:2). 헬라어로 “집사”는 디아코노스인데, 개역개정에서는 집사 뿐 아니라(빌1:1; 딤전3:8, 12), “일꾼”이나(롬16:1; 고후3:6, 6:4), “하인”(요2:5, 9), “사역자”(롬13:4; 고전3:5), “섬기는 자”(마20:26; 막9:35; 10:43) 등으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디모데전서 3:10, 13에 의하면, 디아코네오(섬기다)도 ‘집사 직분을 섬기다’는 뜻을 함축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일곱 사역자를 ‘집사’와 관련하여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원문에도 없는 말을 추측하여 “집사”라고 번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꼭 집사 직분이 아니더라도, 섬기며 봉사하는 것은 다양한 사역자들의 일이다. 사도행전 6:4은 사도들의 말씀 사역도 디아코니아라 한다. 예수님의 사역이나 사도들의 사역을 가리킬 뿐 아니라, 하인을 가리키기도 한다. 따라서 일곱 사역자를 꼭 집사라고 볼 수는 없다. 브루스F. F. Bruce는 그들을 사역자minister라 부르는 것이 좋다고 한다. 한글 성경 중에서 공동번역이나 새번역 성경은 “집사”를 붙이지 않는다. 개역한글 번역을 수정한 개역개정 성경이 “집사”를 여전히 쓰고 있는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바른 해석을 위한 열쇠:
다른 신약 성경과 비교 연구

그렇다면 일곱 사역자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사도행전 자체가 붙인 그들의 공식 호칭은 없다. 다만 사도행전 21:8은 일곱 중 하나인 빌립을 “전도자”(유앙겔리스테스)라 부른다. 빌립에게만 “전도자”라 호칭했는지, 아니면 일곱 명 모두가 전도자에 해당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빌립과 스데반의 주요 사역이 사도행전 자체에서는 구제보다는 전도에 초점을 두고 있다.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고(행8:4-13), 또한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했다(행8:26-40). 스데반의 주요 사역도 전도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행6:8-7:53).

“전도자”(유앙겔리스테스)는 신약에서 3회 등장한다(행21:8; 엡4:11; 딤후4:5). 바울은 교회의 직분을 열거하면서 “전도자”(복음 전하는 자)를 언급한다(엡4:11). 에베소서에 따르면, “전도자”는 사도나 선지자처럼 초대교회에서 교회를 설립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존재했던 직분처럼 보인다(엡4:11). 성도들을 온전하게 준비시켜서, 봉사하게 하고, 교회를 세우게 하기 위함이다. 바울은 디모데를 “전도자”로 부른다(딤후4:5).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디모데에게 유언과 같은 말씀을 한다. 점점 더 사람들은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자의 직무를 잘 감당하라고 권면한다.

스데반과 빌립 외에 나머지 다섯 사역자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다. 니골라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니골라 당과 연결하는 시도도 있다(이레니우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이레니우스는 이단에 대항하여Against Heresies(I. 26. 3, Ⅲ. 11.1)라는 그의 책에서 니골라당은 니골라의 부도덕한 행위를 본받는 자들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니골라당은 스승의 금욕주의적인 행태를 벗어나 방종에 이르렀다고 한다. 요한계시록 본문에서 니골라 당은 초기 영지주의 이단의 형태를 띠었는데, 영과 육의 이원론에 바탕을 둔 종교혼합주의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계2:6, 15).

그러나 사도행전 니골라와 요한계시록 니골라 당을 연결시킬 만한 확정적인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관계가 있다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니골라의 가르침을 오해하거나 배신하여,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기독교 이단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바른 해석을 위한 열쇠:
문맥 안에서 본문 비교 연구

사도행전 6:1-6에 나오는 일곱 사역자의 선출은 주님의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한 세 가지 교훈을 제시한다. 첫째, 구제를 위한 일곱 사역자의 선출은 역설적으로 말씀과 기도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구제 사역에 일어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만한 여유가 사도들에게는 없었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구제 사역에 집중하다가, 자칫 말씀과 기도에 소홀해 지기 쉽기 때문이다. 말씀과 기도 중심으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일곱 사역자를 선출하였다. 사역의 역할을 분담하여 사도들이 좀 더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여, 교회를 든든히 세우기 위해서 구제 사역을 위한 직분자를 선출하였다.

누가복음-사도행전에 나타난 말씀과 기도의 중심성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하지만, 저자는 이것을 말씀의 부흥이라고 묘사한다(행6:8; 12:24; 19:20).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작별하면서 그가 가르친 말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더 일깨운다(행20:32). 또한 다른 복음서들에 비해, 누가복음은 훨씬 더 예수님의 기도 사역에 초점을 맞춘다.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특히 예수님이 홀로 기도하시는 모습을 많이 묘사한다. 마태복음은 1회(마14:23), 마가복음은 2회(막1:35; 6:46) 기록하는데 비해, 누가복음은 5회 기록한다(눅5:16; 6:12; 9:18, 28; 11:1). 또한 세례 받으실 때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 다른 복음서는 침묵하지만, 누가복음은 주목한다(눅3:21). 또한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세 가지 기도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데, 기도와 제자도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다(눅11:5-8; 18:1-8; 9-14). [전문 보기: 스데반과 빌립은 과연 집사였을까?]

 

권해생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작은목자들교회 협동목사. 「요한복음주석(고신총회출판국, 2016)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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