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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의 진정한 소망우리는 구유에 누운 아기를 기다리는가, 권능과 영광 가운데 오실 심판주를 기다리는가?
플레밍 러틀리지  |  Fleming Rut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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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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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마스를 즐길 준비를 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대림절과 세례 요한이라는 인물은 낯설기로 따지면 매한가지일 것이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마3:7)이라고 퍼부은 세례 요한을, 당신이라면 어떻게 크리스마스카드에 담아내겠는가? 사랑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이 인물이 우리 시대와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지만, 그는 대림절에 가장 중요한 인물의 하나다. 적어도, 내가 속해 있는 성공회 전통이 따르는 교회력에서는 말이다.

대림절도 크리스마스나 우리 시대와 어울리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대림절은 크리스마스를 즐기려는 우리에게 침범하여 우리의 흥에 찬물을 끼얹는다. 우리는 대림절을 그럴싸한 가족 파티로 만들어 버렸고, 나도 거기서 예외가 아니다. 우리 집에서는 해마다 아이들에게 대림절 달력을 선물한다. 작고 귀여운 문을 열면 작고 귀여운 그림이 보이는 달력이다. 세례 요한 그림이 있는 대림절 달력은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세례 요한은 정말 아무데도 안 어울리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 광야 복장을 하고 강가에 선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온 군중에게 소리를 지른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쳐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도끼를 이미 나무뿌리에 갖다 놓았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어서 불 속에 던지실 것이다.”(마3:7,10)

 

심판주 예수

사복음서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의 길을 닦는다. 그의 언어는 종말론적이고, 하나님의 오심을 상징한다. 우리가 아기 예수를 크리스마스 시즌 계획에 끼워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임박한 진노”를 선언하는 달갑지 않은 세례 요한이라는 인물을 제거할 방법이 없다.

우리 집 식탁에도 대림절 화환이 있지만, 그 부드럽고 로맨틱한 촛불은 세례 요한이 선언한 그 불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대림절이 성탄절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유명하면서도 굉장히 이상한 점은, 대림절은 베들레헴에 오실 아기 예수가 아니라, 종말에 만물의 심판주로 오실 예수님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요한은 예수님을 시골 사람들과 강력한 통치자들, 농장 동물들 가운데 자애로운 미소를 띤 귀여운 아기로 선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외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분이시다.…그는 손에 키를 들고 있으니,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여,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마3:11-12)

대림절 전례 기도문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마라나타” 곧 “오소서, 주 예수여!”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다시 오시라는 기도가 아니라, 그가 능력과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시기를 고대하는 하나님 백성의 간절한 외침이다. 그때에는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실 것이다(빌2:10-11).

왜 사복음서는 모두 세례 요한이라는 인물로 시작할까? 굳이 대림절 기간에 사람들의 머리털을 곤두서게 하는 목적이 무엇일까? 결국엔 다시 오셔서 모든 죄와 악함을 영원히 멸하실 우주의 심판주 예수님이라는 이미지가, 잃을 게 많은 사람과는 달리 이 땅의 가난하고 억압받은 사람들에게는 그리 무서운 존재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나 친구가 당신에게 값비싼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주곤 한다면, 산타클로스가 도착하기 전에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에 그리 열광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이 구소련의 교도소에 갇힌 그리스도인이라고 가정해보자. 아니면, 아파르트헤이트 시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살던 흑인이라고 생각해보자. 남아공 당국은 당신에게 변변찮은 세간을 챙겨서 소위 흑인 자치 구역home land으로 가라고 명령한다. 그곳은 사실 당신 고향이 아닐뿐더러, 품위 있는 직장도 챙겨주지 않을 것이다. 혹은 당신이 우범 지역에 사는 늙은 장애인이라고 생각해보자. 이제 막 세 번째로 강도와 폭행을 당했다. 그런 상황에서 당신이 “마라나타”라고 말할 때는 정말 간절한 느낌이 들 것이다.

오늘날에도 세례 요한의 외롭고 금욕적인 생활방식은 다가올 실재, 곧 모든 세속적 실재, 모든 세속의 조건, 모든 인간의 약속이 사기요 덧없음을 폭로하는 실재를 입증할 것이다. 1년 중 이때 무대에 등장하는 세례 요한의 존재는 우리의 허세를 있는 그대로 폭로한다. 그러니 이보다 더 그가 필요한 때가 또 있겠는가!

아마도 역사상 가장 진지한 외골수였을 세례 요한이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3:2)라고 외칠 때 그의 전존재는 오실 그분의 실재로 불타고 있었다. 세례 요한은 내가 종말론적 초월비전apocalyptic transvision이라고 부른 것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것은 이 세상의 외양을 간파하고 오실 주님의 능력과 거룩함을 볼 수 있도록 교회에 주신 비전이다. 세례 요한은 기독교 신앙의 종말론적 특징, 곧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지향하는 신앙, 종교 관행의 답습이 아니라 메시아이신 분을 지향하는 신앙, 기성의 방식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권위와 지배를 지향하는 신앙을 궁극적으로 구현한다.

 

밖에서부터 오는 능력

요한은 아주 특이한 방식으로 우리와 동시대를 산다. 그는 두 힘이 충돌하는 벼랑 끝, 하나님에 대한 세상의 저항이 오실 그분의 저항할 수 없는 힘과 만나는 교차로에 서 있다. “도끼를 이미 나무뿌리에 갖다 놓았으니….” 거기에 그가 있다. 그리고 그는 나팔소리가 울릴 때까지 계속 거기에 있으면서, 우리가 우리 삶을 전적으로 재고하고 재조정하도록 요청할 것이다. 우리를 전혀 새로운 관점, 곧 하나님의 관점으로 인도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보시는지 생각해보라. 그분은 내게 구찌 가방 세트가 있는지 신경 쓰실까? 내 이름이 공연 안내문이나 회사의 공식 편지지, 후원자 목록에 등장하는 인지도에 따라 나를 판단하실까? 어머니나 남편, 친구, 이웃으로 얼마나 역할을 잘 감당하는지에 따라 판단하실까? 그분은 나를 무엇으로 판단하실까?

요한이 전한 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어서 불 속에 던지실 것이다.” 따라서 심판의 기준은 회개의 특징인 열매다. 그런데 회개는 단순히 미안해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너무 자주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남발할 때 이런 경험을 한다. 그래서 분통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미안하다는 말도 한두 번이지, 지긋지긋해요! 말로만 하는 사과는 됐고, 이제 행동의 변화를 보고 싶다고요!” 그리스어 메타노이아metanoia는 ‘돌아서다’ ‘다른 방향으로 향하다’라는 뜻이다. 전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회개하라’ ‘달라져라’ ‘네 삶을 하나님께 향하라’라는 말을 아무리 많이 듣는다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구찌 가방에 집착할 것이고(사실 그만한 경제적 여력은 없다), 세속의 지위를 드러내는 상징이 전보다 더 간절해질 것이다. 회개하라는 권면은 필요 없다. 나를 변화시킬 외부의 힘이 필요할 뿐이다.

블레즈 파스칼은 팡세에 이렇게 썼다. “낙심하지 말라. 그대는 그것을 그대에게서 기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그대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기대해야 하는 것이다.” [전문 보기: 대림절의 진정한 소망]
 


플레밍 러틀리지 성공회 사제이자 베스트셀러 저자. 이 글은 그의 책 Advent: The Once & Future Coming of Jesus Christ(강림: 예수 그리스도 오심, 그리고 다시 오심, Eerdmans)에 실린 설교를 갈무리한 것이다.

Fleming Rutledge, The Real Hope of Adv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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