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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내어주라남편이 신장 기증을 하겠다는데 내가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알레 마스던  |  Aleah Mars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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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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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VENT

   
 

“내가 신장을 기증하는 것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그가 느닷없이 물었다.  년 전 지인의 결혼식에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이 심각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난 속으로 답했다. 죽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건 그렇고 누구에게 기증하려는데? 혹시라도 언젠가 우리 네 아이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면 우리 친척이 신장 이식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려고? 또 당신에게 신장 질환이 생기거나 자동차 사고라도 나서 하나밖에 안 남은 신장을 다치기라도 하면?

그러나 내 입에서 나온 답은 “왜 기증을 하고 싶은데?”였다. 알고 보니 마이크는 잡지 기사를 읽었고, 그 후 얼마 안 되어 우연히 팟캐스트에서 신장 기증의 도미노 효과에 대해 듣게 된 것이다. 남편은 신장 기증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또 자기 형제로부터 신장을 이식받은 청년부의 한 학생도 멀쩡하다는 것이다. 의학적 소견대로 사람에겐 하나의 신장만 필요하다면 누군가가 그의 “여분의” 신장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 나는 그 대화에서 확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부르심에 대한 남편의 생각이 하도 진지해서 우리는 다음 행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신장 이식에 대한 통계는 놀라웠다. 미국의 국립신장재단National Kidney Foundation에 따르면 14분마다, 또 매월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신장 이식 대기자 명단에 새로 이름을 올린다고 한다. 기증자가 나타날 때마다 무려 7만 명의 환자가 이식을 기다리고 있으며, 매일 평균 13명이 기다리는 동안 사망한다.

통계 수치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나는 진짜 내 속마음을 직시해야 했다. 그것은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신장을 내준다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넉넉한 것

현대 과학과 의학은 합리주의에 치우쳐 있는 우리의 성향에 편승하여 우리로 하여금 주로 해부학적-생리학적 렌즈를 통해서만 인체의 장기를 보게 한다. 고대 세계에서 신장은 신화적, 은유적 중요성과 함께 인체에서 존중 받던 부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구약 원전에서 신장[콩팥]이란 단어가 얼마나 자주 사용되었지 알면 놀랄 것이다. 예를 들어 시편 저자는 시편 139:13에서 하나님이 그의 “장기”inmost being를 모태에 있을 때부터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장기”는 “신장”kidney으로 번역된다. 현대 독자들이 은유적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신장은 “영”soul, “은밀한 생각”secret thoughts, “가장 깊숙한 곳”innermost, 심지어 “마음”heart로 번역된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마음을 이성reason의 중심과 연결시키고,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마음의 상징적 역할을 신장이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기증을 하고 싶다는 남편의 바람과는 달리 주저하고 있는 나 자신을 조율하기 위해 나는 성경으로 눈을 돌렸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 독특한 장기의 중요성 외에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있었다. 누가복음에서 세례 요한은 모여 있는 무리에게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라”고 촉구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겐 아브라함의 유산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그들의 행동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다. 사람들이 요한에게 어떻게 이것을 할 수 있는지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속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그들이 베푸는 관용으로 인해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이 알려질 것이다. 물론 신장은 속옷과 직접적으로 상응하지 않는다. 세례 요한도 장기 기증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사람들에게 너희에겐 넉넉한 것을 나눠주라고 명했다. 예수님은 또한 부자 청년에게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곧 희생과 불편을 감수할지라도 네게 풍부한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다.

성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당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세상의 생명을 위해 내어주시는 가장 과격한 방법으로 이를 입증하셨다. 우리가 매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는 주저하지 않고, 결과를 계산하지도 않으며, 따르게 되는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값진 선물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one and only son을 주셨으니”(요3:16, 이탤릭체 부분은 글쓴이의 표시) 우리 또한 주저할 이유가 없다. 이 모든 것을 받은 내가 어떻게 계산할 수 없는 소중한 무엇인가를 주고 싶어 하는 남편을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 [아파도, 내어주라.]
 

앨리아 마스던 작가이며 캘빈 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 과정에 있으며, 리빙 브레드 미니스트리즈Living Bread Ministries의 이사로 일하고 있다.
Aleah MarsdenGiving Until It Hu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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