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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피터슨, 그의 목회와 우리의 현장
양혜원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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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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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유진 피터슨 목사의 소천 소식을 접하고 한 이틀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 후로도 적어도 일주일은 평소와는 다른 기분으로 보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나의 일상생활이 잠시 정지되었을 뿐, 어느 출판사의 요청으로 추모의 글 하나를 번역하고 또 어느 미디어의 요청으로 나 자신의 추도문을 작성하며 그 이틀을 보냈다. 그의 책을 한국어로 가장 많이 번역한 번역자이자 그에 대한 유일한 한국어 연구서를 쓴 저자로서의 특권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요청이 없었어도 나의 일상은 정지되었을 것이다. 창세기 5장에 보면 아담의 계보에서 모두가 ‘죽었다’는 말로 끝이 나는데 에녹에 대해서는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5:24, 개역개정)고 한다. 그의 죽음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영어로는 “He was no more”이다. 비록 성경에서는 확실한 죽음과 확인할 수 없는 죽음을 구분해서 표현했지만, 나는 이 “was no more”라는 말이 오히려 죽음을 묘사하는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내가 죽음의 현장을 목격하지 않은 많은 죽음들에 대해서는 말이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부음’을 접할 뿐 대개는 죽음의 현장에 있지 않다. 심지어 ‘죽음의 소식’을 접하고도 예를 갖춰 망자를 떠나보내는 의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미국 유학 시절 외할머니의 부음을 접한 나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결혼 후에는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기에 지금도 가끔 할머니가 어딘가에 계신 것 같은 착각을 한다.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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