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자 러셀 무어가 프레드릭 비크너를 만났을 때 [구독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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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자 러셀 무어가 프레드릭 비크너를 만났을 때 [구독자 전용]
  • 러셀 무어 | Russell Moore
  • 승인 2018.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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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주류 개신교인 때문에 더 복음주의자가 되었다

몇 년 전, 어쩌다 보니 켄터키 주 헨리 카운티에 사는 나의 문학적 영웅 웬델 베리의 집 저녁 식탁에 동석하게 되었다. 밤이 되자 베리는 “자, 함께해주셔서 반가웠습니다”였던가 하여튼 그런 인사말로 이제 헤어질 시간임을 알려 주었다. 하지만 그 집을 나서기 전 이 농사꾼 소설가 겸 시인이 나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사람인지 털어놓지 않고서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어떻게 표현해야 생각 없는 광팬이 아니라 학구적 그리스도인처럼 보일까 고민하면서 말이다. 나의 고백에 그는 감사보다는 축복에 가까운 말로 답변했다. “이건 필요한 걸 어떻게 적시에 얻는가의 문제 아닐까요? 그 시점에 딱 어울리는 책이 적시에 나타나고, 그 시점에 꼭 필요한 친구가 적시에 찾아오고, 그 시점에 꼭 나눠야 할 대화를 적시에 나누게 되는 것 말입니다. 그건 은혜지요.” 그의 말을 듣자 내 안에서 감사가 터져 나왔지만, 그 감사는 주로 베리에 대한 감사만은 아니었다. 그의 농장 집을 나서며 내가 필요로 할 때 적시에 등장해 준 두 작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두 사람은 C. S. 루이스와 프레드릭 비크너였다. 사실 루이스는 나 같은 보수 복음주의자들에게 그리 놀랍게 다가오지 않는다(이따금 일부 신학적 입장에 의견이 불일치하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들은 대개 비슷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 노인의 옷장을 통해 순전한 기독교와 지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기독교 유신론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비크너는 우리 진영의 일부 사람들에게 좀 받아들이기 힘든 존재다. 처음 보기에 그는 우리 같은 사람들과는 달라 보인다. 비크너가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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