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의 추구’라는 막다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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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의 추구’라는 막다른 길
  • 유진 피터슨 | Eugene Peterson
  • 승인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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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는 우리에게 쾌락을 쫓지 않으면서도 기쁜 삶을 누리는 법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욥에게 “폭풍 가운데서”(욥38:1) 말씀하셨을 때, 하나님은 자신이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그러니까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만드셨을 때에, “새벽 별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이 기뻐서 외쳤다”(욥38:4, 7)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상상력이 허락하는 한 충분히 과거로 거슬러 간다면, 거기에는 기쁨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별과 하나님의 아들들이 노래하며 즐거워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로 우리의 상상력이 허락하는 한 충분히 미래로 간다면, 하늘까지 간다면, 거기에도 비슷한 즐거움이 있는 것을 봅니다. 밧모섬의 요한이 본 묵시의 비전에서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모여 있고, 기쁨의 노래가 흥겨운 합창으로 울려 퍼집니다.

그렇게 함께 모인 자리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교회의 열두 제자를 대표하는 스물네 명의 장로들―마지막 피날레에서,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온 제자의 길과 믿음을 상징하는 존엄한 인물들―이 관을 벗어 하늘로 던져 하나님의 보좌 앞에 떨어지게 합니다(계4:1-11).

이 장면은 매우 흥겨운, 심지어 장난스럽기까지 한 장면입니다. 수염을 기른 이 고대의 인물들이 보좌 앞에서 관을 벗어 하늘 높이 던지는 모습이라니요. 사관학교 생도들이 졸업을 축하하며 흰 모자를 하늘 높이 던지는 모습, 혹은 미식축구 선수들이 승리를 자축하며 한꺼번에 헬멧을 하늘로 던지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가능하다면 이들은 자기 머리를 던져 기쁨을 표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이야기는, 우리의 존재 자체가 기쁨으로 시작해서 기쁨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그 시작과 결론 사이에도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을 기쁘게 하는 그 강의 줄기들”(시46:4). 예수님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나의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15:11).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서신서의 바울은 빌립보 사람들에게 자신이 소위 “믿음의 즐거움”(요1:25)을 얼마나 잘 알고 또 다른 사람들도 거기에 동참하기를 원하는지에 대해서 썼습니다.

성경 외에 교회의 삶에서도 우리는 마찬가지의 기쁨을 발견합니다. 20세기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기쁨을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슬픈 그리스도인들, 어둡고 칙칙한 예수님의 추종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들은 기쁨으로 가득해 보입니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믿음의 형제자매들 중 몇 명에게 그들이 신앙의 모범적 삶을 살았음을 표시하는 ‘성인’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주는 작업을 할 때, 그 자격의 요건 중 하나가 기쁨의 증거였습니다. 성인 후보가 되려면 웃고 찬양하고 즐거워할 줄 아는 흥이 있는 남자 혹은 여자여야 했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에, 그리고 그 사이의 매 순간에 기쁨이 있습니다. 기쁨은 하나님의 창조물이고 선물입니다. 기쁨으로 가득 차지 않은 성경적 신앙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의 대청소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야말로 좀 즐겨 보려 애를 쓰다가 결국에는 난관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요?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추구하지만 그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한 것일까요? 실제로 우리가 보게 되는 상당수의 불행이 즐거움을 추구하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이 마약의 환각이든, 섹스의 황홀경이든, 소비의 욕심이든 말입니다. 즐거움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왜 그것을 최대한 누리려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쾌락의 실험

전도자는 솔로몬 왕의 역할을 자처함으로써 자신의 요점을 전달합니다. 히브리 왕 중에서 가장 지혜롭게 시작해서 가장 어리석게 임기를 마친 왕 솔로몬은 전도서가 기록되던 당시에는 이미 아련한 과거의 인물이었습니다. 전도자는 재치 있게 이 역할 놀이를 함으로써 잘못된 즐거움의 모습을 솔로몬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말합니다. “자, 내가 쾌락이라는 것을 실험해 보겠다. 한번 놀아 보자.”(전2:1) 그 뒤에 나오는 부분(전2:4-8)을 제가 풀어서 번역해 보겠습니다,

 

나는 쾌락을 추구할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즐겁게 놀아 볼 것이다. 먼저, 내 취향에 맞게 내 주변 세계를 구축할 것이다. 큰 집을 지어서 내 편의에 맞게 모든 것을 갖출 것이다. 포도원을 만들고 정원을 만들어서 내가 보고 싶은 것 그리고 내가 맛보고 싶은 것이 완전히 내 통제 하에 있게 할 것이다.

공원도 만들고 풀장도 만들어서 내 주변에 있는 모든 땅과 물이 내가 원하는 대로 모습을 갖추게 할 것이다. 모든 것을 내 취향에 딱 맞게 구성해서 그것을 완전히 통제할 것이다. 그다음에는 모든 것을 소비품으로 바꾸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가장 편리한 방법은 수를 늘리는 것이다. 그러면 각각의 물건이 개별성을 잃어버려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종들도 늘려서 각자 자기 정체성을 잃고 그저 내 뜻을 따르는 로봇이 되게 할 것이다. 가축의 무리와 떼도 늘려서 개별성을 잃어버리고 그저 식량과 의복이 되게 할 것이다. 은도 많이 쟁여 놓아서, 개인적 관계에서 물건을 교환하는 수단이 아닌 내 권력과 중요성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쓰겠다.

첩도 늘려서 여자들이 다 개성을 잃어버리고 내 개인적 쾌락의 대상이 되게 하겠다. 내가 이 세상을 호령할 것이다. 그 어떤 것도 그것 자체로 개성이 있는 것은 없다. 내가 모든 쾌락과 모든 것을 완전히 통제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환경을 만들 것이고, 모든 것이 내 통제 하에 있을 것이다.

 

전도자는 솔로몬의 입을 빌려 이 말을 함으로써 이 역할 놀이의 절정을 이룹니다.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으니 완전히 거기에 탐닉할 것이다. 내 눈이 원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고,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에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았다.”(전2:10)

 

 

생명을 가지는 우상

이 말은 그가 기획한 모든 것이 사실은 ‘사기’였음을 드러냅니다. “내 눈이 원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 곧 자기 눈이 자신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한다는 표현에 나타나는 비인격성을 보십시오. 자신이 통제하려 했던 것이 이제는 자기 자신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 혹은 ‘아니요’라고 할 수 있는 능력, 선택하고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탐닉에 휩쓸려 버렸습니다.

자신이 통제하기 위해서 비인격화시킨 쾌락의 세계가 이제는 그를 비인격화시키고 있습니다. 먼저 그는 쾌락을 위한 세상을 구축했지만, 이제는 자신이 그 구축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는 쾌락을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우상으로 만들었지만, 이제는 그 우상이 스스로 생명력을 가져 그를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 자극제의 통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파블로프의 개 수준으로 전락했습니다. 쾌락의 종이 울리면 침을 흘립니다. 호르몬의 명령에 바보처럼 따르는 무조건반사의 왕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저 충동에 좌지우지되면서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솔로몬을 잠시 가상의 인물로 사용해서, 많은 것을 소유하고 이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이 기쁨과 관계가 있다고 보는 생각의 유치함을 드러냈습니다. 지혜의 명성이 아무리 자자하다 해도, 그것으로 기껏해야 성이나 사고 첩이나 들인다면,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전도자는 심지어 그게 솔로몬이라 하더라도 그런 이름에 감명을 받지 않습니다.

그 명성의 이면에는 소외와 천박함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들고 얻고 하는 것은 기쁨의 막다른 골목입니다. “내 손으로 한 모든 일, 그리고 그러느라 수고한 모든 것을 생각해 보니, 보라, 모든 것이 헛되고 바람을 좇는 것이었다. 해 아래서 얻는 게 하나도 없었다.”(전2:11)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의 선물에 대한 솔로몬의 오해에서 얻는 것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쾌락을 추구하지 말라. 그리고 쾌락은 살 수 없다.
첫째, 쾌락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쾌락은 누려야 하는 산물이지, 추구해야 하는 목표가 아닙니다. [전문 보기: ‘즐거움의 추구’라는 막다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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