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소개하는 글, 어떻게 쓸 것인가 [구독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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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소개하는 글, 어떻게 쓸 것인가 [구독자 전용]
  • 송인규
  • 승인 2019.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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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규 교수의 책 이야기 | 책집에서

 

이번에 다루고자 하는 글쓰기의 방면은 책 소개에 대한 것이다. ‘책 소개’라 함은 어떤 책의 가치나 내용을 저자 이외의 사람이 알리고 평하고 선보이는 행위를 말한다. 그렇다면 책 소개의 글쓰기는 대체로 단평, 추천사, 서평, 해제의 네 가지 형태로 대별이 된다고 하겠다. 이 네 가지는 글의 길이가 가장 짧은 것부터 시작하여 가장 긴 것까지의 순서다. 이제 각 형태의 책 소개 글을 어떻게 쓰는지 하나씩 알아보도록 하자.

단평 쓰기

단평短評은 말뜻 그대로 짧고 간략한 비평이지만, 여기에서는 주로 신간 서적을 긍정적으로 선보이는 작업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실제로는 이 경우 ‘추천사’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고 (그리하여 첫째 형태와 둘째 형태를 동일한 범주로 취급하고) 있지만, 나는 글 쓰는 이의 입장에서 볼 때 각각의 형태에 요구되는 노력의 정도나 성격이 다르므로 ‘단평’과 ‘추천사’를 차별화하고자 한다.

꽤 오래 전부터 거의 모든 신간이 여러 명의 단평으로 치장을 한 채 출간되고 있다. 그것은 단평을 출판사가 광고나 홍보 목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평이 아무리 많아도 그 대부분은 책 겉표지의 후면이나 책 앞부분 목차 이전의 몇 쪽을 빼곡히 채운다. 이것은 독자의 눈길과 관심을 바짝 끌기 위함이다. 단평의 분량은 짧으면 3∼4줄 정도이고, 길어도 7∼8줄을 넘지 않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물론 단평만으로 책의 특징이나 진면목을 제대로 나타내기는 힘들다. 단평은 그저 장식적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출판사나 글 쓰는 이나 다들 단평을 헤프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출판사 쪽에서는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어 책의 홍보에 유리하다 싶으면 그 대상에게 단평을 써 달라고 요청을 한다. 부탁을 받은 이도 자신이 추천자로 인정을 받았다는 뿌듯함에 겨워 정작 글쓰기의 임무는 소홀히 한다.

단평을 쓰는 이에게는 최소한 두 가지 책임이 따른다.

첫째, 평을 하고자 하는 책을 읽었어야 한다. 목차만 훑어보거나 책의 내용을 어림짐작으로 넘겨짚은 채 단평을 시도하는 일은 사실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위험한 짓이다.

둘째, 글의 길이가 짧다고 하여 시간의 여유와 마음의 준비 없이 해치우듯 글을 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비록 사람들이 자신의 단평에 대해—실은 누구의 단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큰 의미를 두지 않고 읽는다고 해도, 글 쓰는 이로서는 소신껏 성의를 다해 글의 내용을 작성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모든 단평의 부탁에 대해 항시 “예”라고 반응해서도 안 된다. 내가 책의 내용을 검토할 시간이 부족하든지 (대부분의 출판사는 코앞에 닥치게 글을 부탁한다!) 책의 주제나 내용이 나의 지적ㆍ학문적 능력에 버겁든지, 저자의 관점이나 입장이 어떤 이유로든 나와 맞지 않을 경우에는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다음은 내가 쓴 단평의 구체적 예이다.

 

창조 타락 구속
알버트 월터스ㆍ마이클 고힌, 양성만ㆍ홍병룡 옮김, IVP, 2007

「창조 타락 구속」은 개혁파 특유의 세계관 내용을 소개하는 단연 최고의 안내서이다. 기독교 세계관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책의 내용에 일부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절대 이 책을 도외시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재판에 추가된 후기의 내용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세계관, 이야기, 선교 사이의 관계에 대해 포괄적인 이해가 가능하게 되었다. 기독교 세계관이 소개된 지 30년이 가까워 가는 이 시점에도, 여전히 이 책을 필독서 리스트의 첫 자리에 놓고 싶다.

 

추천사 쓰기

둘째 형태의 소개문으로 분류된 추천사 역시 단평과 마찬가지로 해당 책자나 저술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때 작성하는 글이다. 추천사 또한 어느 정도 광고나 홍보 효과를 의중에 두고 쓰인다는 점에서 단평과 유사하다.

그러나 추천사는 단평과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네 가지 사항을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앞에서 언급했듯 추천사는 단평보다 글의 분량이 훨씬 길다. 물론 얼마나 긴지는 추천사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분량의 상한선을 명시할 수는 없다. 아마 A4 용지로 두 쪽까지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글의 길이가 길기 때문에 추천사는 보통 책자의 내용 시작 부분에 나타난다. 추천자는 한 명일 수도 있고 더 될 수도 있지만 아무리 많아도 통상 3∼4명을 넘어가지는 않는다.

둘째, 추천자는 책의 가치를 선양한다는 점에서 단평자보다 더 큰 권위를 행사한다. 단평자는 그가 보유한 일반적 인지도 때문에 글의 부탁을 받지만 추천자는 책자의 주제ㆍ내용ㆍ사안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경험으로 말미암아 의뢰 대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추천문은 책의 위상과 가치를 드높이는 데 대체로 단평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곤 한다.

셋째, 추천사에는 추천의 이유ㆍ근거를 또렷이 밝힐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 단평의 경우에는 제한된 지면 때문에 이런 것을 밝힐 수가 없지만 추천사에는 꽤 큰 지면이 할애되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런 점을 명시할 수 있는 것이다. 보통 추천의 이유/근거는 3∼4가지만 거론하면 충분하다.

넷째, 추천사는 단평과 달리 비평(부정적 논평)의 내용을 포함할 수 있다. 위에서 나는 추천사 또한 긍정적 평가 일변도로만 쓰이는 것처럼 설명을 했다. 그러나 이것은 대충대충 말한 것이지 엄밀한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추천자는 부정적 논평과 관련하여 두 가지 서로 다른 방도를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추천하는 책을 겨냥하여 비판의 목소리가 있을 때 (그런데 추천자는 그런 비판이 과장되거나 오해ㆍ편견의 결과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을 때) 그에 대한 간략한 해명이나 저자에 대한 변호를 시도할 수 있다. 또, (추천자의 생각에도 저술의 어떤 점이 흠이라고 판정이 된다면) 추천자는 책이 지닌 장점이 워낙 많고 도드라져서 그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추천한다는 설명을 붙일 수 있다.

충실한 추천사를 쓰고자 한다면 (단평의 경우에도 그랬지만) 무엇보다도 추천할 도서를 꼼꼼히 읽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한 번의 읽기로 충분하지 않아 책 전부(또는 일부)를 다시금 살펴야 할지도 모른다. 책을 읽을 때는 단순히 내용 파악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점을 추천의 이유ㆍ근거로 삼을지 촉각을 세우며 읽어야 한다. 그러면서 읽을 때 떠오르는 바를 그때그때 메모해 두는 것이 좋다. 또 그런 아이디어가 형성된 부분에 책갈피를 꽂아 놓거나 하여 후에 필요할 때 곧장 찾아볼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 자신의 기억력을 믿고 그냥 생각만 한 채 지나가면 십중팔구 그 아이디어를 까맣게 잊거나 혹시 생각이 나도 해당 페이지를 찾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메모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추천의 이유ㆍ근거를 3∼4개의 항목으로 정리하면 된다.

역시 내가 쓴 추천사로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철학자들의 신과 성서의 하나님
존 쿠퍼, 김재영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1

만일 어떤 이가 범내재신론(panentheism)의 사상적ㆍ역사적 뿌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일자(一者)와 여럿 사이ㆍ존재/실유와 생성 사이ㆍ영원과 시간 사이ㆍ필연과 우유偶有 사이의 형이상학적 조화 작업에 대한 서양인의 몸부림에 대해 알기 원한다면, 왜 대부분의 현대 신학자들이 기독교 정통 유신론의 울타리를 마다하고 “철학자의 신” 구역에서 서성거리는지 궁금하다면, 자연 과학(특히 우주론)과 신학과의 상관관계를 설정함에 있어서 왜 그토록 양극적(兩極的, dipolar) 신개념에 집착하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면, 존 쿠퍼의 「범내재신론」은 필독서 중의 필독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지닌 미덕은 최소 세 가지이다. 첫째, 취급 범위의 포괄성이다. 저자는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폴킹혼에 이르기까지 범내재신론과 연관된 80명가량의 사상가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우리는 수많은 인물들의 형이상학적 비전에 노출되면서 그들과 대화하게 된다. 둘째, 내용 소개의 명료성이다. 저자는 범내재신론이라는 철학적 주지(主旨)를 연대기적이고 사상사적인 흐름을 좇아 간명하고 확실하면서도 상세하게 기술했다. 책의 앞 부분에서 개진되고 설명된 논변은 그 이후에도 계속 반복됨으로써 독자들의 인식과 학습에 커다란 유익을 준다. 셋째, 개인 신념의 투철성이다. 저자는 학자로서의 공정성과 솔직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고전적 유신론을 신봉하는 개혁파 신앙인임을 천명하고 있다. 오늘날 북미의 학문계(또 신학계)가 어떤 경향과 풍조에 물들어 있는지를 감안할 때 이는 보기 드문 모범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바라기는 이 역서가 관심 있는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의 손에 꼭 쥐어졌으면 한다. 특히 조직신학ㆍ철학신학ㆍ현대신학에 관심을 가진 지도자들과 신학교 교수들에게 좋은 안내서와 교육 자료가 되기를 바란다.

 

서평 쓰기

서평은 명칭 그대로 어떤 저술의 가치와 의의를 비판적으로—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검토하는 글이다. 이것은 해당 책자의 내용을 소재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소개문의 한 부류이지만, 실제로 논점을 탄탄히 구성하여 자신의 주장점을 명료히 부각시키고자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영락없이 신학적 글쓰기의 작업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글의 분량도 A4 용지로 2∼5쪽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추정해 본다. 그런데 신학적 글쓰기에 대해서는 이미 전술한 바(2018년 9월, 10월 호)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서평이 지니는 소개문으로서의 측면만을 다루고자 한다.

서평이 앞에서 선보인 단평 및 추천사와 차별화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항목에 있어서이다. 첫째, 서평은 대체로 책자의 광고나 홍보 전략과는 거리가 멀다. 그 주된 이유는 각 소개문이 등장하는 매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단평이나 추천사는 발간된 책자 가운데 포함되는 데 반해, 서평은 그 책자와 상관이 없는 별도의 정기 간행물에 기사로 등장한다. 물론 서평이 실리고 나서 해당 책자의 판매가 크게 신장되는 사례를 거론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우발적 현상이지 의도된 결과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서평은 책이 출간되고 한참 있다가 게재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둘째, 서평자는 해당 저술의 주제나 내용과 관련하여 전문 지식 (및/또는 경험)을 보유한 인물이어야 한다. 단평과 추천사를 의뢰 받은 이들은 혹시 자신이 해당 책자의 내용에 대한 권위자가 아니더라도 근본적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해당 서적을 읽고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면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 책에 대해 단평이나 추천사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평의 영역으로 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평자는 논하고자 하는 저술의 내용과 주제에 대해 빠삭할 뿐만 아니라 그런 내용이나 주제가 제대로 다루어졌는지—이 주제의 핵심이 명료히 밝혀졌는지, 마땅히 이야기되어야 할 요소가 빠짐없이 거론되었는지,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 기술되지는 않았는지, 이 주제나 사안과 관련한 최근의 이슈가 소개되었는지—평가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서평을 맡기는 매체도 이런 작업을 하기에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나 권위자로서 인지도가 높은 인물에게 그 책임을 맡겨야 한다.

셋째, 서평은 평가가 주안점이므로 책자가 지닌 가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마련이다. 역시 이 점 또한 단평이나 추천사와 사뭇 다르다. 왜냐하면 단평이나 추천사가 칭찬 일변도로 꾸며지는 반면 서평은 거의 대부분 부정적 비평조차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평 작업이 매우 중요한데도, 현재 한국의 (신앙) 풍토를 보면 단평이나 추천사만 난무할 뿐 수준 있는 (바람직한) 서평의 예는 상당히 희소한 형편이다. (독자들도 단평이나 추천사에만 익숙해 있지 제대로 된 서평 읽기를 골치 아프게 생각한다.) 서평의 편만한 정도와 그리스도인의 의식 수준은 어느 정도 함께 가므로, 후자의 고양을 위해서라도 서평의 장려는 꼭 필요한 사안이라고 하겠다.

그러면 서평의 내용은 어떻게 꾸밀 것인가? 서평의 내용이 알차게 꾸며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핵심 사항과 부수 사항을 대별하는 것이 유익하리라고 생각한다. 핵심 사항은 서평에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반면 부수 사항은 여차하면 생략할 수 있겠지만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부수적으로나마 도움이 되는 내용을 말한다. 먼저 부수 사항부터 설명하도록 하자.

부수 사항에는 우선 저자의 배경이 언급되어야 한다. 대개는 그의 신앙 배경과 교육 배경이 주된 관심사이다. 아울러 저자의 경력 또한 책의 내용을 이해시키는 좋은 힌트가 된다. 그리고 책의 제목에 대한 해설도 때로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특히 번역서의 경우에는 원제를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우리 실정에 맞추어 의역을 시도하는 때가 많다. 이때 원서의 제목이 무엇이고 역자가 왜 그렇게 책의 제목을 바꾸었는지 설명하면 사태의 실상을 그만큼 정확히 밝히는 셈이 된다. 또 혹시 해당 책자가 몇 판을 거쳤다면 이 역시 소개함직한 사항이 된다. 판이 거듭되면서 책명을 이렇게 저렇게 바꾼 수도 있는데, 이 또한 설명을 요한다. 뿐만 아니라 서평 대상의 책자가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의 중판인 경우도 있는데, 이때 왜 이렇게 오랜 세월 후에 해당 책자를 중판하는지 취지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 어쨌든 부수 사항은 저자나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부수적 도움을 준다.

물론 서평 작업의 사활은 핵심 사항의 기술에 있다. 서평에서 언급되어야 할 핵심 사항은 최소 네 가지이다. 첫째, 책의 내력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저자가 어떤 취지로 이 책자를 기술하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일이다. 어떤 책이든 그 책이 쓰인 맥락이 있다. 하나는 책의 주제와 관련한 맥락이다. 지금 이 책자가 쓰이기 전에 어떤 비슷한 유의 서적이 유포되었는지, 그런 서적의 영향은 어떠했는지, 주제와 연관해서 최근에 무슨 논의가 벌어졌는지, 주제의 논의를 촉발하는 무슨 의미심장한 사건이나 사태가 발생했는지 하는 것이 이에 속한다. 또 하나는 저자의 저술 맥락이다. 이 책이 저자의 몇 번째 저술인지 (처음이라면 어떤 기대나 의도로 이런 주제를 다루었는지), 과거에 쓴 책들과 이번 저술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만일 어떤 시리즈물의 한 권이라면 전후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하는 것이다. 이렇게 주제의 맥락과 저자의 저술 맥락을 통해 책의 내력을 밝히면 책의 실체가 훨씬 선명히 드러난다.

둘째, 책의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는 일이다. 이렇게 하려면 책의 내용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선행해야 한다.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정확한 전달이 가능하겠는가? 그런데 이처럼 명확한 이해와 정확한 전달 작업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서평자는 목차를 참고하게 된다. 목차를 위주로 하여 책의 내용을 소개한다는 말이다. 책의 내용을 서술할 때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각 장의 소개 분량은 비슷한 것이 좋다. 그러나 서평자가 생각하기에 매우 중심적이고 의미심장한 장이 있다면 그 장에 대해서만큼은 설명을 꽤 길게 할 수도 있다.

서평자가 취급하는 책이 번역판이라면 좀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가장 좋은 길은 번역판과 더불어 원서의 내용을 살피는 것이다. 이것이 어렵다면 (대부분이 그럴 텐데) 번역판을 읽다가 내용이 이상하거나 뜻이 잘 통하지 않는 부분에 한해서라도 반드시 원본을 참조하여야 한다. 이로써 역자 편에서의 실수(또는 오역)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고, 동시에 저술 내용의 본래 의미를 추적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책이 발간된 후라 번역을 고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책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는 이러한 점검이 필요하다.

셋째, 책자의 강점과 약점을 치우침 없이 평해야 한다. 논평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여도 순전히 객관적일 수가 없다. 그렇지만 서평자는 서평 작업 내내 될 수 있으면 초연하고 공평무사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무엇이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이고 무엇이 이 작품의 문제점(또는 부족점)인지를 가능하면 제삼자의 시각으로 공정히 평하는 것이다.

강점에는 주제를 다룰 때에 저자가 보인 특질(포괄성, 명민함, 분석 능력, 종합력 등), 높은 수준의 내용(역사적 고찰의 탁월성, 학제적 접근, 최첨단 이론의 도입 등), 관련 분야에 대한 기여(새로운 전기 마련,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 독창적 연구를 위한 디딤돌 등) 같은 것이 해당된다. 반대로 약점으로서는 자기 객관화의 불충분, 내적 부정합성의 문제, 근본 개념에 대한 오해, 실증 자료의 부족 등을 들 수 있다.

논평에서의 초연한 태도는 평가가 취하는 언어에도 반영되어야 한다. 책의 어떤 내용을 좋게 평하든지 부정적으로 평하든지 언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서평자는 저자의 단점을 지적할 때 조심스러워야 한다. 부정적 감정이 실린 어구를 피해야 할 뿐 아니라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도록 열도熱度가 낮은 어휘를 구사해야 한다. 이렇게 감정을 충분히 통제하지 않으면 비평이 인신공격으로 오해 받기 십상이다.

넷째, 이 책자가 한국 실정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말해야 한다. 서평자가 한국인 저술을 서평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면, 물론 이 항목은 무시해도 된다. 그러나 기독교 서적 가운데 상당수가 번역서이기 때문에 (또 따라서 번역서의 서평을 써야 하기 때문에) 이 항목은 거의 필수불가이다. 외국인 저술의 다수는 비록 그 내용이 아무리 참신하고 훌륭하다 하더라도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의 상황을 직접 건드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어떤 번역서가 한국의 그리스도인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문화적 번역” 또한 이루어져야 한다.

“문화적 번역”이란 원저자(대부분 서양 영어권)의 저술 취지를 다른 나라(한국)의 토양에 옮겨 심는 문화적 변조 활동을 의미한다.

전에 나는 「은밀한 세계관」(2013년 IVP 간행)이라는 책의 서평을 부탁 받은 적이 있었다. 이 책의 두 저자인 스티브 윌킨스와 마크 샌포드는 오늘날 북미인의 삶에 침투한 신념 체계를 여덟 가지—개인주의, 소비주의, 국가주의, 도덕적 상대주의, 과학적 자연주의, 뉴에이지, 포스트모던 부족주의, 종교가 된 심리 치료—로 정리했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설명한 후 오늘날 한국의 상황에서 숨겨진 세계관을 찾는다면, 기복주의, 학벌주의, 쾌락주의, 외모주의, 자아주의, 경제주의, 성공주의, 미국주의일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이것이 바로 문화적 번역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한 가지 구체적 예일 것이다. 이처럼 서평자는 가능하면 문화적 번역까지 시도함으로써 그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해제’解題는 사전에 “책의 저자, 내용, 체재, 출판 연월일 등에 대한 간단한 설명”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나는 이 글에서 해제라는 말을 좀 다른 의미로 사용하겠다. 내가 생각하는 해제는 우선 책의 내용을 상세히 풀이하는 데 역점을 둔다. 이 점에서는 서평의 경우보다 더 자세하고 세밀할 수 있다. 책이 등장하게 된 시대 배경, 저술 동기나 목적 등에 대해서도 설명이 자세하고, 책의 내용을 해설하는 데서도 세부 사항까지 포함시키기 때문에 어떤 부분은 장황하게 느껴질 정도일 것이다. 따라서 해제는 서평처럼 평가의 성격이 강하지는 않다. 물론 책의 내용을 풀이하다 보면 어차피 저술의 강점이나 약점을 노정하겠지만, 이것을 주된 목표로 삼지는 않는다. 특히 약점에 대해서는 더더욱 희미하게 묘사될 것이다. 그렇다면 해제는 그 분량이 적어도 A4 용지 8쪽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해제’는 “책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해설하는 글”이라고 규정하겠다.

혹자는 이 시점에서 해제와 감수監修는 그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히 여길 것이다. ‘감수’는 “저술이나 편찬하는 일을 지도하고 감독함”이 핵심 활동이라서, 해제와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그런데 해제자와 감수자는 일치할 수 있다. 두 인물 모두 책자가 다루는 주제에 익숙하고 전문가적 지식과 경험을 가졌으므로 감수자는 해제를 쓸 능력이 있고 해제자는 감수의 책임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해제자는 서평자보다는 감수자 쪽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왜 해제가 필요한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수준이 높은 서적에 대한 전문가 편에서의 가이드라인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때로 어떤 책자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나 기량을 갖춘 아마추어를 겨냥하여 출간되는 수가 있다. 그런데 실은 그 책자의 내용이나 주제가 일반인에게도 유익을 끼칠 만한 잠재력을 가졌다고 하자. 그런 경우 책의 앞이나 뒤에 일정 분량의 쉬운 설명문을 넣으면, 책의 내용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귀중한 길라잡이가 된다. 이 설명문이 바로 해제이다.

둘째, 현재 출간된 책자가 유익하고 신뢰할 만하다는 인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논하는 해당 서적은 전문 내용을 담고 있어서 문외한이라면 그 작품의 가치와 의의를 판단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이때 이 방면에 전문적 권위를 가진 이가 개입하여 이 책자의 신빙성을 확증해 주면 크게 도움이 된다. 이러한 문예적 개입을 가리켜 해제라고 부르는 것이다. 해제자는 해제를 통해 “이 책의 내용 구성이 탄탄하다” (번역서인 경우) “번역이 부드럽게 잘 되었다” “책의 내용이 건전하다” 등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권위자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얼마든지 이 책을 천거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다음의 두 가지는 해제의 개략을 적어 본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제임스 패커, 정옥배 옮김, 송인규 해설, IVP, 2008

패커의 신앙적ㆍ신학적 배경

• 성공회 소속의 목회자
• 복음주의 전통을 이어받은 신학자
• 청교도 신앙 전통에 전적으로 헌신한 사상가

몇 가지 잘 알려진 저술들

• 「근본주의와 하나님의 말씀」Fundamentalism and the Word of God
• 「복음 전도와 하나님의 주권」Evangelism and the Sovereignty of God
•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
• 「성경을 아는 지식」Keep in Step with the Spirit
• 「경건의 추구」 A Quest for Godliness

하나님을 아는 일의 중요성

• 우리는 아직도 신앙의 본질을 하나님 알기와 연관짓지 않고 있다.
• 우리는 신앙의 이론적ㆍ학구적 측면을 여전히 비신앙적(혹은 반신앙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 우리는 교리와 경건이 물과 기름처럼 이원화된 기독교 신앙을 연출하고 있다.

과학과 성경의 대화
버나드 램, 박지우 옮김, 송인규 해설, IVP, 2016

버나드 램: 인물과 시대

• 신앙과 신학의 형성 배경
• 중요한 저술들

이 책의 목적과 내용

• 점진적 창조론의 개요
• 1∼8장의 내용 소개

램 이후의 변화들

• 구약 분야에서의 발전
• 천문학/우주론 분야
• 생물학 분야
• 인류학 분야

이 책의 의의

• 이 책은 점진적 창조론의 핵심 내용을 밝혀 주는 교과서 같은 안내서다.
• 이 책은 점진적 창조론의 전체적 면모를 남김없이 보여 준다.
• 이 책은 무엇보다도 신학자의 저술이다.
• 램은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도록 돕는 매우 교육적이고 유익한 접근 방식을 시도한다.
• 이 책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실정에 매우 적실한 자료다.

 


나는 지금까지 책 소개의 글쓰기에 단평, 추천사, 서평, 해제의 형태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바라기는 이 글이 좀 더 합당하고 유용한 소개문을 작성하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 CTK 2019:3

 


송인규 한국교회탐구센터 소장, 전 합동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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