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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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사랑
  • 이진경
  • 승인 201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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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이야기

 

▲ [게티이미지뱅크]



30대 후반의 한 싱글 남성 후배가 3년간 연애를 하다 얼마 전 헤어졌다며, 앞으로 자신이 만나고 싶은 여성은 ‘매일 만나도 좋은 사람, 함께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고, 서로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런 이상형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싶었는데 연애를 했던 여성이 자주 만나는 것을 싫어했다고 했다. 그는 매일 찾아갔는데, 그녀는 퇴근 후에 쉬어야 한다고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녀는 가끔 만나고 가끔 밥 먹는 것은 좋아했지만, 자주 만나고 자주 밥 먹는 것은 싫어했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자주 만나지 않기 위해’ 사흘에 한 번씩 가고, 이후엔 일주일에 한 번, 그다음엔 2주에 한 번씩 가게 됐다. 그랬더니 나중엔 양상이 역전되었다. 그녀가 자신을 더 보고 싶어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와의 차이와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함께 있을 때는 그토록 힘들었는데, 헤어지고 나니 다시, 매일 만나도 좋을 그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걸작이지만 절판이 된 책 「에덴 프로젝트」에서 저자 제임스 홀리스는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 어머니에게서 분리되며 생기는 불안과 상처로부터 구원해줄 누군가를 자기 반쪽에게서 찾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하나로 연결되려는 노력을 에덴 또는 귀향 프로젝트라고 일컫는다.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는 이 ‘에덴 프로젝트’는, 상대를 통해 내가 치유되고 보호받으며 성장하고, 또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어려운 여정을 피해갈 수 있으리라는 ‘환상’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환상일 뿐,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여정은 오롯이 자기 자신이 책임을 지고 감당해야 하는 것이며, 그 짐을 상대에게 지우려 할수록 갈등과 고통만 늘어난다는 것이다. 자신의 여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주요한 환상을 버리는 것이다. 나의 반쪽이 나를 구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는 것은 우리 생에서 가장 어려운 프로젝트의 하나라는 저자의 단언은 슬프고도 홀가분하다.

많은 정신분석가들이 한 인간의 전 생애는 유아기에 부모와의 관계를 인식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유아기 때 경험하는 부모는 그의 유일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 대부분의 관계는, 다른 사람들도 나의 행동이나 감정과 같다고 단정 짓는 무의식적 투사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투사는, 자기 자신이 납득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갖고 있는 경우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돌려버리는 경향이기 때문에 투사가 많을수록 우리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투사를 거두어들이는 것은 많은 내적 성찰이 필요하고, 그것은 우리의 근원적 욕구를 우리 스스로 처리하는 능력을 키우는 여정에 속한다.

연인과 24시간 늘 함께 있고 싶어 하던 사람은 어린 시절 자신과 함께 있어주지 못한 부모에 대한 욕구를 연인이 채워주길 바라는 것이었고, 결혼한 적도 없으면서 결혼하면 각방부터 쓰고 싶어 하던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문제로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나이에 맞지 않게 과한 짐을 져온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사적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사랑해줄 누군가를 바랐다. 자신을 언제나 행복하게 해줄 연인을 찾고 있던 사람은, 대인관계에서 쉽게 상처 입으며 혼자 있으면 금세 우울한 감정으로 가라앉는 사람이었다.

▲ [게티이미지뱅크]

 

사람에게 기대할 수 없는 것을 기대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랑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어디까지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이고, 어디까지가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땐 모든 기대가 채워질 것만 같은 고양된 감정을 경험하다 차츰 상대가 기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일 때 갈등과 다툼이 시작된다. 그것이 우리 자신의 ‘기대 관리’의 문제에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인격이나 성격 문제로 돌리는 것이 우리 사랑의 흔한 모습 아닌가. 자기 내면 안에 있는 반쪽과 깊은 대화를 하지 않는 이상, 외부에 있는 반쪽과도 피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타인과의 관계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제임스 홀리스의 세미나를 듣고 난 한 청중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이 말한 모든 것에 동의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랑을 믿어요.” 로맨틱한 사랑, 투사의 사랑, 마법 같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날뛰는 ‘황소’에 가깝다는 것. 진정한 사랑은 끊임없는 성찰과 외로움, 용기를 필요로 하고, 자기 자신과의 투쟁이 동반된다는 말이 그에겐 ‘사랑을 싫어하거나 사랑은 없다’는 이야기처럼 들렸던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도 자주 하나님께, 우리 문제를 한방에 해결해주실 수 있는 마법을 기대하는 것 같다. 그 마법이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는 것으로 여기고, 그런 마법이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기도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에 더욱 가까워지기 위한 성숙의 여정을 감당하지 않고, 우리 눈에 좋아 보이는 것만 얼른 얻고자 하는 기대. 아마도 그런 유아적 수준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정말로 대화가 통하는 어른이 되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기대할 법한 것도 기대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드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누군가에게서 갈취하려 할수록 궁핍해진다. 하지만 사랑을 퍼줄수록 그 우물은 가득 찬다. 그것만은 마법인 것 같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이런 유의 마법을 경험할 수 있는 이유는 에덴 프로젝트의 방향점이 바로 하나님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께 나아갈 때마다 그분의 임재 앞에서 신의 형상인 ‘진정한 자기’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수 임재범이 노래한 ‘전쟁 같은 사랑’은 그리스도인에겐 다른 의미의 전쟁일 것이다. 우리의 중독적 욕망과 자기애를 충족시키려는 자아ego를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참사랑을 하는 자기self로 부활하는 것, 이건 참으로 매일 매일의 전쟁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도와주시니 그 전쟁 같은 사랑의 여정을 감사함으로 걸어갈 수 있지 않은가. CTK 2019:4

이진경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을 창간할 때 기자 겸 에디터로 참여했다. CTK에 ‘싱글 이야기’를 연재했고 CT WOMEN과 블로그 ‘그녀의 해석학’의 여러 글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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