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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이 말의 참뜻은 무엇인가?
강영안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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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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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오류를 드러내어 삶을 이야기하다 : 강영안 교수의 철학과 신학 강의 시작하며 “우리는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알 수 있다.” 과학철학자 마이클 폴라니가 한 말입니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 아는 얼굴이 보이면 우리는 금방 그 얼굴을 알아봅니다. 어떻게 얼굴을 알아보았는지 말해 보라 하면 우리는 설명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설명을 한다 해도 듣는 사람이 그 사람의 얼굴을 그려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전거를 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사람이 자전거 타는 법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때 몇 가지 기본 지식은 전해 줄 수 있어도 자전거 타는 법 자체는 말로 전해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말을 수단으로 자전거 타는 법을 모두 설명할 수 없고, 설명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곧장 자전거를 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얼굴을 알아보는 법과 자전거 타는 법은 실습을 해야 익힐 수 있습니다. 반대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 사람들이 백 명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백 명의 손을 찍은 사진을 벽에 전시해 두었다고 합시다. 자기 손을 그 가운데서 찾아보라 하면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손등에 점이나 상처가 있으면 자신의 손을 쉽게 찾아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생각보다 쉽지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손을 대상으로 삼아 거리를 두고 바라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손을 모른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손으로 밥을 먹고, 그 손으로 글을 쓰고, 그 손으로 악수를 해 왔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안다” 또는 “모른다” 함은 이처럼 묘한 면을 지니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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