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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서 기다리기“불편한 토요일”의 어둠과 불확실함
A. J. 스보보다  |  A.J. Swobo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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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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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날을 “불편한 토요일”이라 부른다. 내일 어떤 일이 닥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앉아서, 기다리며, 소망해야 하는 그 토요일을. 토요일은 예수가, 그리고 모든 분별력understanding이 죽어 누워 있던 날이었다. 중세 신학자 안셀무스가 한 번은 토요일에 수반되는 그런 부류의 믿음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 적이 있다: 피데스 쿠아에렌스 인텔렉툼fides quaerens intellectum. 번역하자면 “이해understanding를 추구하는 신앙”이다. 안셀무스의 이 말은, 믿음은 깨달음understanding의 순간 후에 생겨나는 어떤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보다 믿음은 분별력과 이성이 죽어 누워 있을 때 우리가 매달리는 어떤 것이다. 일단 이해하고 나서 믿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 토요일이 그와 같다. 기다림의 날, 뭐가 뭔지 모호한 날, 하나님이 주권자이신 날—설령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관념과 신학과 기대는 그렇지 않을지라도—을 봉헌하기. 이날은 우리의 무지無知를 증언하고 선포하는 날이다. 사실, 우리의 지성은 언제나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보다 한 발짝 뒤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일단 하나님을 이해하고 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 하나님을 사랑한다. 잉글랜드의 작가이자 신비주의자인 이블린 언더힐Evelyn Underhill이 정곡을 찔렀다. “영원하신 우주의 하나님은 신비롭게도 ‘가까이 계시면서도 타자이다.’” 토요일에 하나님은 가까우면서도 아주 멀리 계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날을 지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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