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으로의 초대
상태바
‘생각’으로의 초대
  • 김은홍
  • 승인 2019.04.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간의 지혜조차 까무룩 해가 떨어지기 직전까지 기다려야 무르익거늘(“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되어서야 비로소 날개를 편다”),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을 앎에 이르고자 한다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거동이 너무 경망스러워 자주 자괴가 올라옵니다. 복음의 높음과 깊음과 넓음에 진중하지 못하고, 세상의 얕은 이념과 선동에 깨춤 추기 일쑤인 우리입니다.

하여 호흡이 긴 사유를 연습하고 연습하여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무게감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이번 호를 준비하였습니다.

‘사유의 정원’은 이번부터 시작하는 장기 연재입니다. 이 문패가 말하는 그대로, ‘사유’의 ‘정원’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앞으로 적어도 스물 네 편의 글을 쓰게 될 성유원 선생님이 여러분의 좋은 정원지기입니다. 여러분의 사유의 정원이, 그 꽃과 풀이, 그 나무와 식물이, 그 열매와 토양이 더욱 풍성해지는 길에 동무가 되어 드릴 것입니다.

‘상식의 오류를 드러내어 삶을 이야기하다: 강영안 교수의 철학과 신학 강의’는 이미 지난 호부터 시작하였고 이번이 두 번째 글이지만, 이 또한 생각함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의 차원이 남다른 글입니다.

‘사유의 정원’도 ‘강영안 교수의 철학과 신학 강의’도 요즘은 인기 없는, 긴 글입니다. 그래도 들숨을 깊이 하신 다음에 천천히, 찬찬히, 잘근잘근 곱씹고 되씹으며 읽어 내려가 보시기 바랍니다. 오래 전 책 읽기와 독서법을 주제로 하여 나눈 대화에서 강영안 교수는 “온몸으로, 마음으로, 그리고 함께 읽으면 더 좋다”고 하셨습니다(CTK 2009:9).

이렇게 읽어나가다 보면 시나브로 여러분의 사유의 지평은 더 넓어져 있을 것이고 생각의 차원은 더 높아져 있을 것이며 성찰의 깊이는 더 깊어져 있을 것입니다. 그 무변광대한 사유의 끝에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신 여호와께서 계십니다. 여호와의 독수리의 고양高揚을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감히 따르지 못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이사야 40:31) CTK 2019:5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