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에 물든 기독교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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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 물든 기독교 민족주의
  • 마크 갤리 | Mark Galli
  • 승인 201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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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비극은 악한 기독교 민족주의의 논리적 귀결이다

뉴질랜드에서 총기 난사 테러로 50명의 무슬림이 목숨이 잃었다. 이 나라 역사상 가장 참혹한 이 비극에 온 세계가 함께 아파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이 사건은 또한 갈수록 공론의 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의 논리적 귀결이다.

영국의 평론가 브레단 오닐이 말했듯이, “만인을 문화적 또는 인종적 인간으로 축소하고 다른 문화나 인종과 맺고 있는 모든 관계를 감시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정체성 정치가 공적 생활에서 유일한 게임이 될 때 뉴질랜드의 이번 비극 같은 일이 일어난다.”

위키피디아는 정체성 정치를 다음과 같이 매우 간결하게 정의한다: “폭이 넓은 전통적인 정당 정치에 참여하는 대신에, 사람들이 배타적인 정치적 동맹을 형성하기 위하여, 또는 더 큰 정치 집단의 이해는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 집단의 특수한 이해를 증진하기 위하여 특정한 인종적ㆍ종교적ㆍ민족적ㆍ사회적ㆍ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경향.” 정체성 정치의 지지자들은 더 넓은 정치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다른 어떤 그룹도 자신의 그룹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집단의 정체성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나, 일종의 계시를 통해 “깨어난”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기 집단의 가치를 안다고 생각한다.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면,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하는 유일한 방법은 권력을 원초적으로 사용하는 것뿐이다: 참아내는 사람들에게는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 이 둘의 근본은 동일하다: 내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그들이 속한 집단을 희생시키면서 권력을 얻는다.

이렇게 말한다고 내가 현재의 정체성 정치 옹호자들이 모두 폭력을 옹호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결국 정체성 정치는 종말을 맞고 말 것이다.

다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뉴질랜드의 그 살인자는 자신을 “유럽 문화”의 투사라고 주장했다. 그가 생각하는 “유럽 문화”란 곧 백인, 기독교 문화였으며, 그는 이 문화가 특히 이슬람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다고 믿었다. 이런 형태의 정체성 정치는 기독교 민족주의의 한 버전이다. 우리는 정체성 정치 전체를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특히 이런 형태는 더욱 혐오스럽게 생각한다.

기독교 민족주의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이것은 인종과 짝을 이루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이것은 철저한 국경 보호, 그리스도인이 아니거나 시민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깊은 불신, 하나님이 우리 조국을 특별히 사랑하신다는 믿음, 군사력에 대한 과도한 의존, 잔인하고 권위적인 지도자에 대한 호감을 보통 포함한다. 기독교 민족주의의 여러 버전을 우리는 폴란드, 브라질, 러시아, 그리고 미국 같은 나라에서 찾을 수 있다.

공정하게 말하면, 이 기독교 민족주의 이념의 일부는 합리적이며, 자격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 기독교 윤리의 영향을 받은 법이 잘 작동하는 나라도 있다. 그렇다. 우리는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기독교 윤리의 지혜를 설득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강제로 우리의 도덕에 복종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길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린도전서 13:5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그렇다. 국경은 안전해야 한다. 그러나 관대한 이민 정책 또한 있어야 한다. 그렇다.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은총 아래 있지만 또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기도 하다.

이 마지막 관념은 기독교 민족주의 어휘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 같다. 그들은 자유주의자나 사회주의자나 무슬림이나 마르크스주의자나 이런 저런 집단을 향해 큰 소리로 불평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국가의 불행에 책임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먼저 개인적이거나 정치적인 죄를 회개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가장 먼저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회개하지 않는 그들의 마음 때문에 그들은 박해와 빈곤과 마약을 피해서 자기 나라를 떠나 우리나라의 문을 필사적으로 두드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 그들의 맹목적인 눈에는 분노한 테러리스트들만 보일 뿐, 참 하나님을 찾고 싶어 하는 대다수의 평범한 무슬림은 보이지 않으며, 그래서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은 예수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그들에게 나눠 줄 기회를 보지 못한다.

분명히 해두자: 다른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두려워해야 할 대상, 전도해야 할 대상으로만 믿는 것,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부정이다. 체류자들을 환대하지 않고 국경 안전만 도모해야 한다고 믿는 것, 이것은 부도덕한 생각이다. 미국은 하나님의 선택 받은 나라이며 다른 나라들을 희생시킬 수 있는 특권이 있는 나라라고 믿는 것, 이것은 우상숭배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CTK 20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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