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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을 통과한 신앙천안문 학살 사건 30주년을 맞아 두 명의 반체제 인사가 중국의 소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니 맥길  |  Jenny McG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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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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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天安門, 뜻은 “하늘의 평화”이지만, 베이징 시의 이 광장은 참혹한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중국 정부는 여전히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1989년 6월 4일, 중국 군경은 이곳에서 비폭력 학생 시위대에게 발포하여 수천 명이 사망했다.

사회학자 양펑강에 따르면, 이 역사적 사건은 민주화와 자유를 향한 염원 가운데 발발했고, 이로 인해 중국인들의 영적 각성이 시작되었다.

30년 전 천안문 광장에서 시위를 하던 젊은 운동가들 가운데 장보리Zhang Boli와 저우펑수어Zhou Fengsuo도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중국 최고 지명수배자 명단에 올라 투옥되었다가 중국을 떠나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최고 지명수배자가 된 학생운동가 21명 가운데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이 네 명 정도인데, 이 두 사람은 그들 가운데 속한다. 장은 세계 각지에 지교회가 있는 펑서우화샤기독교회Harvest Chinese Christian Church;丰收华夏(豊收華夏)基督敎會의 주임 목사로 섬기고 있고, 저우는 중국의 정치수감자들을 옹호하는 인권 단체 인도중국Humanitarian China; 人道中国을 이끌고 있다.

“천안문 사건 학생 운동가들 가운데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복음전도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퍼듀 대학교 종교 및 중국 사회 연구소의 소장 양Yang이 말했다. “이들의 최우선 사회 활동은 중국에 있거나 미국으로 망명한 반체제 인사, 인권 변호사, 가정교회 지도자 등 중국 정부의 탄압을 받는 사람들을 위한 인도주의 구호활동입니다.”

장과 저우는 이 역사적인 사건에 참여했기에 성장하는 중국 가정교회 운동에 대한 공산주의 정부의 탄압에 대해 남다른 시각을 보인다.

“우리는 순간적으로나마 소망이 있었던 천안문 사건을 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중국의 미래를 위해 그 사건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우는 말했다.

학살 30주년을 맞는 2019년 6월, 세계 교회는 지속되는 기본 자유와 인권 투쟁의 영적 중요성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신학적 고찰을 통해 우리는 미래의 사회운동과 사회변혁을 위한 준비를 더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습니다.” 양은 말했다. “신학적 깊이가 없는 사회 정치 운동은 더 많은 혼란과 폭력과 유혈사태만 가져올 것입니다.”

2030년까지 중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그리스도인이 많은 나라가 될 것으로 전망하는 양은 일찍이 중국 정부가 제창한 삼자애국운동을 복음주의 동역자들이 가정교회와 함께 다른 방식으로 펼치는 것을 보기 원한다.

장과 저우는 제니 맥길과 함께 그들의 기독교 신앙이 자유를 위한 그들의 투쟁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 내용은 분량과 명확성을 위해 편집된 것이다.

 

천안문 사건 당시로 돌아가 보도록 하지요.
시위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어떠한 결과를 기대했습니까?

: 저는 작가였고, 천안문 광장으로 가서 사건에 대해 기록한 후 그것을 책으로 내고 싶었습니다. 저는 또한 베이징 대학교 학생이었기에, 학생 시위에 동참했습니다. 저는 광장에서 연설을 했고, 단식 투쟁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후야오방[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의 죽음을 추모하기 원했습니다. 정부는 우리의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고 생각했고, 우리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민주와 자유, 인권존중을 원했습니다.

저우: 사태는 점진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처음엔 단순 참여자로 같은 기숙사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 그곳에 갔습니다. 몇 년 전 학생들에게 동조했다는 이유로 실각한 공산당 지도자 후야오방에 대한 공개 추모를 처음 시작한 것은 우리였습니다. 그의 죽음이 이 모든 저항 운동의 촉발제가 되었지요. 당시 중국은 과거 어느 때보다 개방적이었습니다. [중국인들은] 서방 세계로부터 아이디어, 신기술, 인력 등 모든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대대적인 공개 토론이 있었고, 저는 정말 미국의 역사를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영어를 배우고 미국독립선언문과 링컨의 이야기를 읽을 때 감명을 받았지요. 당시 우리는 중국의 자유와 민주라는 관념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우리의 즉각적인 요구는 언론의 자유와 정부 관리들의 재산 공개였습니다. 이러한 요구는 큰 인기를 얻어 곧 중국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이 번지듯 중국 전역으로 확산된 이유입니다.

 

항쟁 이후 당신에겐 무슨 일이 생겼나요?

: 천안문 시위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이 체포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저는 소련으로 도망쳤습니다. 저는 소련에 불법 입국했기 때문에 소련정보기관 케이지비KGB에 체포됐습니다. 그리고 중국으로 돌아오기 전 두 달간 투옥되었습니다. 저는 중국-소련 국경에서 탈출할 수 있었지요. 저는 2년 동안 중국 북동부의 헤이룽장 성에서 숨어 지냈습니다.

1991년, 저는 배를 타고 홍콩에 밀입국한 후 미국 대사관으로 가서 망명신청을 했고, 그날로 승인되었습니다. [다른 반체제 인사들은 홍콩의 동조자 단체가 주도면밀하게 구상한 ‘꾀꼬리 작전’Operation Yellowbird을 통해 중국을 탈출했다. 홍콩에서 일어난 2013년의 ‘사랑과 화평으로 센트럴을 점령하라’Occupy Central with Love and Peace;和平佔中 시위와 2014년의 우산 운동 혐의로 체포되고 구형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추유밍Chu Yiu-ming;朱耀明 목사도 있었다.]

저우: 저는 칭화 대학교 학생회 간부의 일원이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21명의 최고 지명수배 학생 가운데 다섯 번째 순위였습니다. 제가 시위 주모자로 지목된 것에 대해 저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도 모두 놀랐습니다. 이 시위는 민중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외침으로 거의 자발적인 항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천안문 학살 10일 후 체포되었습니다.

(이 인터뷰를 통해) 바로잡을 것이 있습니다. 누이와 매형은 나를 고발하려 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저를 도와주려고 애썼습니다. 정부가 나를 굴복시키기 위해 사실을 왜곡한 것입니다. 그 해 저는 중국에서 보안이 가장 철저한 정치범 수용소인 친청 교도소에 재판 없이 구금되었습니다. 천안문 사건 1주년이 되었을 때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풀려났습니다. 미국으로부터의 압력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그 무렵, 미국 의회는 해마다 6월이면 중국을 최혜국 대우 승인을 표결에 붙여야 했지요. 저는 사상 개조를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받도록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의 하나인 허베이 성 양위안 현으로 보내졌습니다. 3년 과정의 프로그램을 마치면 학업에 복귀할 수 있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일 년 후 저는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결국 저는 학사 과정을 마치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저를 돕기 위해 애썼고, 준학사학위를 수여했습니다. 저는 2년 동안 중국을 떠나는 것이 금지되었고, 1995년 미국으로 왔습니다.

 

어떻게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나요?

: 저는 공산당을 믿는 것 외에는 하나님도, 종교도, 그 어느 것도 없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2년 동안 헤이룽장 성에 숨어 있을 때 농사를 짓는 나이 드신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그분에 제게 기독교를 소개하고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그녀는 온전한 성경책은 엄두도 못 내고, 손으로 베낀 요한복음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사실 글을 읽을 줄 몰랐기 때문에 그것을 내게 큰 소리로 읽어달라며 건넸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제게 설명해주었지요. 일 년 쯤 되었을 때, 저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무신론 교육 제도 안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을 읽은 후에 모든 사람들에겐, 신이나, 믿을 그 어떤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사람들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천안문 시위에 참여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하나님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인도함을 받고 있었던 것이지요. 천안문은 나로 하여금 탈출하게 했고, 투옥되게 했으며, 궁극적으로 그 노부인을 만나게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우: 저는 고등학교 때 성경을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후에 중국에서 투옥된 후 성경을 읽었고. 저를 신앙으로 인도하려고 애쓰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995년 6월, 미국에서 천안문 사건 1주년이 되자 저는 기념할 만한 장소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샌안토니오에 있는 교회 안으로 걸어 들어갔지요. 그곳에서 저는 큰 감명을 받고, 교인들의 환대를 받았습니다. 저는 교회에 있는 동안 유대감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천안문 학살 이후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계신 걸까? 왜 하나님은 천안문 사건을 허용하셨을까?”

그 무렵 중국에서 우리가 믿었던 가치는 애국심을 토대로 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정부와 국가가 우리를 배반했습니다.

우리 삶의 이러한 가치는 어디 있는 것일까? 이것이 전환점이었지요. 제가 경영대학원에 가기 위해 시카고로 옮겨간 후, 텍사스에 있는 그 교회의 한 형제가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서 제게 계속 편지를 썼습니다. 그가 매번 저에게 물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예수님을 믿을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저는 그 질문을 피하려고만 했습니다.

경영대학원을 마친 후, 직장을 구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 베어 스턴스에 아주 좋은 직장을 구했을 때, 저는 그 모든 것이 내가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잊었습니다. 그 이후 저의 생활은 안정되기 시작했고 저는 마음 속 공허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항상 중국에서 일어나는 일, 천안문 시위, 여전히 감옥에 있는 사람들, 중국의 정치 상황을 좇고 있었습니다.

수년이 지나도 소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겐 공산당원들을 향한 증오심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또 저에게 행했던 불의 때문입니다.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아 저는 무력함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제가 하나님께 돌아선 또 다른 이유입니다. 2003년, 우리는 교회에 갔습니다. 목사님이 아주 감동적인 설교를 하신 후에 물었습니다. “믿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저는 손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제 어깨의 큰 짐이 벗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두 분의 신앙은 천안문 사건에 대한 두 분의 시각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나요?

: 하나님께서는 중국의 상황을 우리가 깨닫도록 돕기 위해 1989년의 사건을 사용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안문 학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공산당이 중국 국민의 신이 되었을 겁니다. 이 사건은 공산당이 허깨비였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도록 도왔습니다.

저우: 제게 가장 중요한 변화는 하나님을 통해 우리가 소망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에 이 세상에 속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큰 위안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인권 운동의 모든 어려움과 도전에 맞설 힘을 줍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이 됨과 동시에 저는 중국에 있는 정치범들을 돕기 위해 기부를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즉시 인권을 증진시키고 정치범들과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의 가족을 지원하는 데 헌신하는 비영리 단체 인도중국으로 발전했습니다.

 

신앙이 사회운동에 대한 시각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나요? 신앙과 사회운동은 어떠한 관계인가요?

: 사실 이 둘은 함께 갑니다. 자유, 인권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지요. 민주화운동은 단지 정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활방식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과 자유는 함께 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국민의 미래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중국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종교적 신념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삶 속에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사고와 생활방식에 있어서 자유가 필요합니다.

저우: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저의 믿음과 저의 행동주의는 지금도 동일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게 있어서 이것들은 제 삶에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저의 영감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저보다 앞선 믿음의 선배들을 좇은 것으로부터 왔습니다. 저의 행동 방식은 예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곧 박해받고 소외된 자들을 돌보고, 정부로부터 핍박을 받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평화를 전하는 것입니다. 인도중국은 기독교 사역 단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교와 깊은 관련이 있고, 동기도 유사합니다. 우리는 중국의 가정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들이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상황을 알고 있습니다.

천안문 항쟁과 오늘날 중국의 기독교 교회 사이에는 특별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가정교회 공동체 지도자들 다수가 천안문 항쟁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직접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도 있고,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으나 후에 가정교회 목사가 되어 투옥된 왕이Wang Yi;王怡 목사처럼 2세대에 속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천안문 항쟁은 그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의 세계관 형성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유명한 작가인 위지에Yu Jie;余杰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같은 경우입니다.

 

현재 중국 교회의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 1989년 이전 중국에는 약 5백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5천만에서 8천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공산당 정부는 중국내 기독교의 발전과 성장을 제한을 모색 중이나 이것은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십니다. 허난 성 정부는 수많은 교회를 파괴했습니다. 중국의 동부 저장성에 있는 원저우 시에서도 같은 일을 행했습니다.

아마 여러분이 이들처럼 교회 활동에 참여하려 한다면 체포되거나 구금될 것입니다. 자녀들까지도 벌을 받거나 제제를 당할 것입니다. 정부가 그들과 접촉하여 기독교에 연루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회사에서도 해고될 것입니다. 단언컨대 중국 정부는 다른 나라 국민이라도 기독교 관련 물품을 반입하는 것을 승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체포될 경우 중국 재입국을 저지할 것입니다. 사실 지난 해 이후로 기독교 활동에 대한 제재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해졌습니다.

저우: 지난 30년 동안 중국 교회, 특히 가정교회의 성장은 중국 사회에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합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지금도 여전히 드러나고 감지됩니다. 중국에는 상당한 수[오퍼레이션 월드Operation World에 따르면 약 8퍼센트]의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아마도 가정교회는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유일한 형태의 독립 조직일 겁니다. 전체주의 정권에게 있어서 이것은 통제에 있어 가장 큰 위협이지요. 이것이 바로 그들이 가정교회를 핍박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가정교회들이 사회적으로 드러나게 활동하는 것이 아닌데도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들 다수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관심을 끌지 않으려 애쓰고 있지요. 베이징에 있는 이른비언약교회Early Rain Covenant Church;秋雨圣约教会, 슈왕교회Shouwang Church;守望教会, 시온교회 같은 교회들은 현재 탄압을 받고 있으며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사실 과거를 돌아보건대 탄압을 통한 신앙말살 정책은 성공을 거둔 적이 없습니다. 공산당에 맞서 자유를 추구하는 중국 국민에게 신앙의 자유를 위한 투쟁은 매우 중요합니다.

 

북미 교회들이 중국에서 핍박받는 소수 종교인들을 가장 잘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 첫째, 성경과 같은 가시적인 자료를 보급하는 것입니다. 중국에 있는 교회가 정부에 의해 탄압을 받고 있으면서 미국 교회로부터 지원과 격려를 받을 수 없다면 그들은 용기를 잃게 될 것입니다. 저는 단지 중국인 교회뿐만 아니라 북미의 모든 교회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교회들은 그들의 종교적 자유를 이용하여 종교적 자유가 없는 나라들, 특히 중국을 도우라는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미국 교회들에겐 박해받는 사람들을 돕고, 중국 정부가 시민들의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도록 압력을 가할 도덕적 책임이 있습니다.

저우: [미국에 있는] 대다수의 중국인 교회들이 이 문제에 대해 너무나 조용합니다. 중국에서 박해받는 교회들을 위해 충분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습니다. 서구 사회, 특히 교회들로부터의 국제적 지원은 매우 중요하고, 중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격려가 됩니다.

인도중국은 우리가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습니다.…천안문 대학살 후, 중국은 정치적으로 후퇴했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은 아주 분명합니다. 세계는 이 점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중국은 경제 성장과 기술력과 더불어 더욱 막강해졌습니다. 이것이 모두에게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중국 정부가 자국민을 다루는 방식으로는 평화와 번영을 얻을 수 없습니다.…반면에 기독교 교회가 많은 사람들에게 빛이 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가정교회의 가치관과 행동이 전체주의 사회에 대안을 제시합니다. CT

제니 맥길 사모이며, 인디애나 웨슬리안 대학의 학장이다.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저서 가운데 여성을 위한 제자훈련 교재 Walk With Me: Learning to Love and Follow Jesus가 있다.   
Jenny McGill, “Faith Through The Tiananmen Gate” CT 2019:6 CTK 20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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