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칼럼
당신의 설교는 정치를 다루는가서로 다른 네 가지 성경적 관점
마크 데버, 아담 해밀턴, 조엘 헌터, 에프림 스미스  |  park7328@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6.12  
트위터 페이스북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선거철이 되면 설교자들은 선거 운동에서 거론하는 쟁점들을 언급해야 할지,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교회 성도들이 성경 말씀을 정치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이 서로 많이 다를 때에는 더욱 그렇다.

프리칭투데이(PreachingToday.com)의 편집장인 브라이언 로어리가 정치적인 관심이 고조되어 있을 때 어떻게 하면 본론에서 멀어지지 않으면서 설교할 수 있는지를, 네 명의 목회자들에게 질문했다. 다음은 그가 발견한 네 가지 상이한 시각이다.
 

   
 


복음을 선명하게, 그리고 구별해서 지키라

마크 데버 Mark Dever
워싱턴 D.C.의 캐피털 힐 침례교회(Capitol Hill Baptist Church) 목사
「건강한 교회의 9가지 특징」(부흥과개혁사 역간) 저자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설교자인 나의 역할을 정치인이나 공무원의 역할과 혼돈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정치적인 문제를 놓고 조언하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나는 복음에 관한 진리와 성경 말씀을 자세히 설명해 정당들로 하여금 할 일을 하도록 만들 뿐이다.

어떤 정당은 내가 생각하기에 성경이 명백하게 죄로 여기는 것, 예를 들어 동성 결혼 같은 것들을 점점 더 인정하는 반면 어떤 정당은 전혀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어떤 정당도 성경 말씀에 순종하거나 불순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당이 특정한 문제를 다룰 때 다른 문제들보다 더 성경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접근할 수는 있겠지만, 정당들은 기본적으로 세속적인 생각으로 움직여 나간다.

시간이 지나가면 사라질 문제들과 복음을 혼돈하면 안 된다. 미국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다. 우리는 주님이 맡긴 선거의 표들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하는 그리스도인 지킴이다. 그렇다고 거듭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국가에 어울릴 법한 도덕률을 우리가 세우고 있다고 보면 곤란하다. 가능한 한 많은 국민들에게 성경이 말하는 도덕률에 따라 사는 것이 가장 좋다고 설득하고 싶지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대로 살라고 죄인들을 설득하는 게 타락한 세상에서 늘 가능하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오늘날 너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더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복음이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정치적 우파나 좌파, 양쪽에 속한 그리스도인 모두가 인류 타락의 영향력을 대단치 않게 생각하며, 그러면서 시장 경제나 사회주의를 통한 진보라는 세속적인 신화를 믿는다. 이것은 기독교 설교자가 취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기독교 설교자는 지상의 유토피아주의를 향한 어떤 유혹에도 비판적이어야 한다. 병든 세상에 대한 해답이 낙태를 불법화하는 정도에서 머물 수는 없다. 물론 나도 그런 법을 원하고, 나아가 사람들이 태아를 죽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마음의 문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법으로 강요해서는 겉으로 순응하는 사람만 늘어날 뿐이다.

우리는 복음과 복음의 결과로 일어나는 것들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너무도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후자에 신경을 쓰면서 전자를 소홀히 한다.

나는 최근 연방 정부에서 일하는 한 친구와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말하길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더 나은 노동법과 제3세계의 채무 경감을 위해 하루 종일 애쓰고 있어. 그들은 큰 사회적 목표들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아니지. 내가 그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을까?”

내 대답은 이랬다. “물론 있지! 너한테는 복음이 있잖아! 그들은 하나님과 떨어져 지내는 죄인이고, 그들에게는 그들을 구해낼 누군가가 필요해.”

설교자들이 복음에 관한 큰 비전을 말하다 보면, 그들의 정치적 관점이 종종 설교에 섞인다. 그렇게 되면 설교자의 정치적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복음의 반대자같이 보이게 된다.

반대로 말하면,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서 나와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분야에서 의견을 같이한다는 이유로 복음에서도 의견이 같지 않을까 하는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우리가 둘 다 굶주리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식량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나와 의견을 함께 하는 그 사람이 무신론자일 수도 있고, 내가 하나님과 화해한 사람인데 반해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적일 수도 있다.

세계 다른 곳의 많은 형제자매들과 비교해 볼 때(혹은 교회사적으로 볼 때), 미국이 누리는 복음전도의 자유가 흔한 것은 아니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이런 풍성한 기회를 잘 사용해야만 한다. 미국의 자유나 법, 관습 심지어 인권 문제가 설교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음주 운전법을 뜯어고치는 것을 당신 사역 중 하나라고 생각한 나머지 흐트러지지 말라. 설교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회색 지대에서 투명하게 바라보라
 

아담 해밀턴 Adam Hamilton
캔자스 주 리우드 시의 부활 연합 감리교회(United Methodist Church of the Resurrection) 목사
「흑과 백의 세상에서 회색을 보다」(Seeing Gray in a World of Black and White: Thoughts on Religion, Morality, and Politics) 저자


신학과 정치에서,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라는 용어는 두 양극―명제(thesis)와 반명제(antithesis)―을 말한다. 그리고 세상은 종종 흑과 백의 용어로 색칠된다. 20세기 후반의 문화 전쟁은 낙태, 성, 복지 개혁, 이민 등 많은 문제들을 두고 그런 식으로 진행되어왔다.

이런 양극화를 더 심하게 만든 장본인이 교회와 그 지도자들이었던 때가 너무 많았다. 화해자가 되거나, 원수를 사랑하거나,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게” 하는 대신, 우리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은 미국에 깊은 분열을 심는 데 기여했다.

신학적 혹은 이념적으로 나뉜 그 어느 쪽에도 내 스스로가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극화하는 수사법과 흑백 논리 대신에, 나는 양쪽에게 가장 최선이고, 알맞고, 진실된 것을 찾고자 했다. 그것은 양극을 새롭게 통합한 통합 명제(synthesis)이며 그것을 나는 “근본적 중심”(radical center)이라고 부른다.

근본적 중심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산상 수훈, 잠언의 지혜, 바울의 가르침, 야고보와 요한의 서신들은 분리의 벽을 세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벽을 허무는 방식으로 서로를 대하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가르침이 여러 면에서 나의 설교를 이끌어가고 있다. 나는 성도들이 2008년 대통령 선거의 해를 은혜와 겸손으로 맞이하는 데 도움이 될 설교 시리즈를 준비했다. 신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가정들에 도전하기 원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저 양극의 흑과 백만이 있는 게 아니고, 여러 농도의 회색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우리 교회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정치에 다가가기를, 선거의 해에 생기는 분열에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그리고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가기를 원했다. 그래야만 정치적 담론을 바꿀 수 있다.

이 설교 시리즈는 첫 전당 대회인 아이오와 전당 대회 직후의 주일에 시작해서 선거일(수퍼 화요일) 직전의 주일에 끝났다. 뉴스 헤드라인들이 정치 이야기로 가득 찰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설교 시리즈가 계속될 동안 그 중요성이 매주 강조되었다.

특정한 쟁점을 두고 전개되는 양쪽 사람들의 최선의 동기들을 전달하기 위해 나 역시 최선을 다했다. 심지어 양쪽을 뒷받침하는 성경 구절을 말해주기도 했다.

양쪽 진영의 입장들을 모두 확실히 한 후, 내가 동의하지 않는 사안들에 대해서는 겸손과 은혜로 나의 성경 해석을 제시했다. 그리고 매주 우리는 설교에 대한 의견을 내달라고 블로그로 사람들을 초대했다. 우리는 질문들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놓고, 일반 대중에게 그들의 반응을 올려 달라고 초청하기도 했다.

정치적인 주제를 설교할 때, 나의 결론을 사람들에게 그대로 떠먹이는 것이 내가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나의 할 일은 그들이 성경적인 가치를 이해하도록 돕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구약에 나오는 미쉬팟(정의), 체데카(의로움), 헤세드(변치 않는 사랑 혹은 친절) 등의 의미를 알게 하고, 또 예수님의 가르침과 비유들이 우리가 정치적인 결정을 할 때 지침이 되는 원칙들을 알려 줌으로 우리를 돕는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기독교적 가치들을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 신앙이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하는지, 미국이 크게 서로 나뉘는 이때에 어떻게 화해자가 되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

존 웨슬리는 200년 전에 이렇게 적었다. “기독교 세계를 분리시켜온 모든 정당의 이름들과 비성경적인 문구들을 하나님께서 다 잊으시고, 우리 모두가 겸손하고 사랑이 넘치는 제자의 모습으로 우리 주님의 발밑에 함께 앉아서, 그의 말씀을 듣고, 그의 성령 안에 거하면서, 그의 삶을 우리의 삶으로 모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의 구원을 드러내는 대리자

조엘 헌터 Joel C. Hunter
플로리다 주 중부 지역의 멀티사이트 교회 노스랜드 교회(Northland Church) 목사
「새로운 종류의 보수주의자」(A New Kind of Conservative) 저자


설교는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목회자는 이를 통해 성도들이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까지 성숙하기를 바란다. 그러다 보니 정치 영역도 불가피하게 설교에 포함하게 된다.

내가 정치적 쟁점을 강단에서 다룰 때는 그리스도의 그림을 제시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의 구원도 말씀하셨다. 나는 신학적 요소를 전달하려고 노력하는데, 이것들은 사람들이 정치 쟁점을 거론할 때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쟁점들을 성경에 비추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도 가르치고자 한다. 쟁점이 빈곤이든 문화적인 성(sexuality)이든지 간에, 나는 설교를 듣는 이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이것을 어떻게 구원하실까? 우리는 어떻게 그분의 대리자 역할을 할 것인가?

주어진 쟁점에 대한 찬반 목록을 열거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나는 교회 강단이, 반대되는 의견을 내 식대로 소개하고 그래서 그 의견을 손쉽게 때려눕히는 토크쇼 장소가 아니라고 믿는다.

사실 나는 성도들에게 가능하면 라디오 토크쇼를 너무 많이 듣지 말라고 권한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건설적이기보다는 전투적이 되게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노는 여러 가지 소리들에 약한 세대이고, 모든 것에는 다 간단한 답이 있다고 믿는 어리석음을 갖고 있다.
문제가 심각하면 그 답이 쉽지가 않다. 좀 더 지적으로 포괄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설교자들은 영적 성숙으로 이어지지 않을 열정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우리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복음주의 정치의 너무도 많은 부분이 아직도 한심한 “중학생 수준의 정신 상태”에 머물면서, 누구를 미워하고 또 어디에 속하는지에만 신경을 쓴다. 설교자의 목표는 성도들을 영적 성숙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래야 정치적인 면에서 어떤 것이 건설적이고 구원에 이르는 행동인지가 분명해질 것이다.

실제적으로 말하면, 정치 쟁점과 관련해서 우리가 노스랜드 지역에서 하는 대부분의 일은 동고동락의 문제, 즉 “이웃 사랑하기”의 문제들을 다루는 부차적인 행사들이라는 이야기다.

어떤 특정한 쟁점에 관심이 있거나 심지어 토론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런 행사에 오면 된다. 그러면 좀 더 큰 예배 모임에서 그런 쟁점들로 인해 마음을 뺏기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지, 특정한 정치 쟁점을 성경적으로 증명하는 데 있지 않다.

우리가 어떤 쟁점을 놓고 이야기하기 원할 때는 특별한 행사를 연다. 그러면 사람들은 생생한 논의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음을 알고, 공공 정책에 영향을 주기 위해 개인이 또는 연합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함께 모여 고민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그들을 돕기’, ‘에이즈 확산’, ‘지구 온난화를 맞은 창조 세계를 돌보는 문제’들을 놓고 특별한 모임들을 개최해왔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큰 예배 모임에서 언급해야 할 쟁점들이 있다.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는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거나, 최소한 알고 있는 척도 안 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그들의 마음을 혼란하게 만든다. 진짜 세상에서 일어나는 진짜 일들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면 성도들은 아예 당신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9.11 사태는 우리로 하여금 정당한 전쟁이란 무엇이며, 기독교에서는 갈등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문제들을 자주 언급하게 했다.

이민 문제도 사람들의 관심사이다. 만약 당신이 그것에 대해 아무 이야기도 안 한다면, 성도들을 바로 도울 수가 없다. 나는 우리 지역이 이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동네의 몇몇 남미 출신 지도자들과 일해왔다. 그런데 대통령 선거에서 이런 쟁점들이 불거질 때 만약 아무 이야기도 안 한다면,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내가 아무리 정당이나 후보자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으려 하고, 좌익/우익, 민주당/공화당, 보수파/진보파 등 양극단을 부추기는 언어를 쓰지 않으려 해도, 성도들은 예배든지 아니면 다른 부수적인 행사든지 간에 끝나고 나오면서, “목사님은 진보파인가 봐”라고 말할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아니야, 보수파이신 것 같아”라고 부정할 수도 있다.

정치적인 것을 언급할 때마다 나의 설교는 일종의 로르샤하 테스트(일종의 심리 검사로 잉크 얼룩무늬 속에서 연상되는 그림을 찾아내는 것/역주)같이 된다. 나는 의도적으로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세요”라고 최선을 다해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예언적으로 설교하라

에프림 스미스 Efrem Smith
미네아폴리스 시의 언약 교회(The Sanctuary Covenant Church) 목사
「힙합 교회」(The Hip-Hop Church: Connecting With the Movement Shaping Our Culture) 저자


나는 미국 흑인 교회 전통에서 자랐기에, 설교자는 광장에서 예언하는 목소리여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 교회가 예언적으로 설교하지 않고, 그래서 성도들이 정치 상황에 관심 갖도록 격려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직도 노예 제도나 흑인 차별법 아래에 있을 수도 있다. 교회 강단과 정치의 분리가 비유럽 이민자들과 미국 흑인들에게 해를 끼쳐왔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설교자는 아주 구체적이고 온전한 복음을 고양시키면서, 하나님 나라와 우리 사회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한 개인 구원의 복음을 설교한다. 그러나 또한 개인의 삶을 탈바꿈시키는 사회 문제들도 복음으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온전해질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먹이셨다. 아픈 자를 고치셨다. 여자와 아이들, 그리고 감옥에 갇힌 자들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이 같은 하나님 나라의 많은 쟁점들이 오늘날의 공공 정책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나라의 쟁점과 공공 정책이 서로 만나는 교차점을 찾도록 성도들을 돕는다. 문제는 하나님 나라의 많은 쟁점들이 벌써 정치화되어 있어서, 성경적 쟁점에 대해 설교를 해도, 어떤 때는 정치적이라고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보수 복음주의 설교와 러쉬 림버(Rush Limbaugh, 보수파인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역주)가 하는 말의 차이, 또 주류 개신교의 설교와 하워드 딘(Howard Dean, 미국 민주당 의장/역주)이 하는 말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교육, 주택 압류, 의료 문제, 청소년 폭력 같은 주요한 사회 쟁점 뉴스들은 어느 것이건 간에 미디어에 의해 24시간 안에 양극화된다.

내가 주일날 그 주제로 설교하러 단을 오를 때면, 벌써 백 번 넘게 이리저리 휘둘려 양극화되어 있다. 부활주일에 나는 제러마이어 라이트 목사(Jeremiah Wright,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신적 스승으로 ‘갓 댐 아메리카’ 발언 파문으로 오바마와 결별했다/편주)를 둘러싼 여러 논쟁에 대해 말하면서, 흑인 교회의 세 가지 신학적 흐름, 즉 해방의 흐름, 화해의 흐름, 번영의 흐름에 대해 나누려 했다. 나는 성도들이 신학적 쟁점과 씨름하면서, 성경을 토대로 라이트 목사에 관해 건강한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 쟁점이 벌써 언론에 의해 너무도 양극화되어 있어서, 몇몇 사람들은 내가 버락 오바마를 지지할 방법을 찾으려 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논쟁을 부추기는 언론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와 여론의 장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언의 말을 해야 한다. 어떤 때에는 잘 될 때도 있고, 또 어떤 때는 설교 후 수습해야 할 것들이 있기도 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쟁점들이 단지 성경에서 떠오르도록 두는 것이다. 이런 쟁점들을 성경에 굳이 밀어 넣을 필요가 없다. 그저 성경 안에 머물러 있기만 하면 된다.

강해 설교를 하다 보면, 결국은 뜨거운 주제를 다루게 된다. 그때 성도들은 어떤 정치적인 견해를 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제를 설교하고 싶어 하는 당신의 마음을 알아볼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마태복음을 설교하는 중에 9장의 혈루병에 걸린 여인이 고침 받는 대목에 이르면, 성경은 치유의 문제와 병자들을 대하는 일반적인 마음가짐,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등을 성도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이것은 건강, 질병, 공공 정책 같은 쟁점들에도 적용되는 것 아닌가? 물론 그렇다. 그러나 이런 쟁점들을 논할 때에는, “이것은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문제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하나님 나라의 문제인 것이 분명해지면, 성도들에게 그들 자신의 책임으로 여겨야 한다고 애정 어린 도전을 할 수 있다.

나는 지역의 정치적 쟁점들에 설교의 초점을 맞춘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즉각적으로 행동하여 무언가를 실제적으로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주변의 여섯 개 공립학교가 지난 1년 반 동안 모두 폐교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것에 대해 설교했다. 이렇게 학교가 폐교됨으로써 우리 아이들 교육에 끼칠 영향에 대해 예수님께서 염려하실까? 나는 예수님께서 그러실 것 같다는 증거가 성경에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몇 가지 원칙을 떠올렸다. 그러고 나서 우리 믿음을 행동으로 나타내기 위해, 교회 공동체의 이름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함께 고민했다. 그 결과 우리 교회는 방과 후에 아이들을 개인 교습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러나 교회의 책임에 대해서만 말하지는 말라. 예언적으로 설교한다는 의미는 정부의 책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도록 성도들에게 도전한다는 것을 뜻한다. 의료 문제에 대해 설교할 때에는 정부가 해야 할 것이 있으면 그 역할도 보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람들을 불러 정치 지도자들에게 이의를 제기하라고 하신다. 애굽의 바로도 정치 지도자이지 않았는가? 예수님도 빌라도와 헤롯과 대화하셨다. 그러나 모세와 예수님의 중요한 차이는 직책을 얻으려 하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그들은 어느 정당 안에서 세력을 얻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더욱 예언적이고,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교회가 이윤을 추구해서는(non-profit) 안 되겠지만, 예언까지 추구하지 않아서는(non-prophet) 안 된다.

마크 데버, 아담 해밀턴, 조엘 헌터, 에프림 스미스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68길 98 5층  |  대표전화 : 080-586-7726  |  팩스 : 02-6919-1095
발행인 : 오정현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은홍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은홍  |  사업자등록번호 : 214-88-27116  |  통신판매업신고 : 제01-2602호
Copyright © 2019 Christianity Today K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