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에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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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에서 살아가기
  • 팀 스태포드 | Tim Stafford
  • 승인 2019.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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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히 기독교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오늘의 문화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랜섬 팰로우십’이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영화, 음악, 책 등을 비평하는 데니스 핵은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처럼 행동한다고 말한다. 굳이 딴죽을 걸자면, 내 생각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이 아닌 바벨론에 사는 외국인이나 이방인 같다.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가 따르는 가치를 공격하는 영화들이 넘쳐난다. 이제 놀랄 일도, 신기한 일도 아니다. 바벨론에서 만든 영화가 그리스도인이 아닌 바벨론인의 생각과 가치를 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 곧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바벨론이라는 생각도 왠지 석연치 않다. 다시 생각해 보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바벨론이 아닌 사마리아다.

바벨론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고 기독교를 잘 알지 못하는 지역이다. 우리가 바벨론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이상, 바벨론은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예배드리는지에 대해서는 딱히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처럼 국가의 근간을 흔들었다고 고발당하거나, 정치 싸움에 휘말렸을 때나 주목을 받는 정도다. 그러나 사마리아는 바벨론과는 다른 곳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신앙에 관해 잘 알고 있으며 (일부는 왜곡된 정보이지만), 그 신앙에 노골적인 반감을 갖고 있다.

성경은 예수님과 우물가 여인의 대화를 묘사하며 “유대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과 상종하지 않기 때문”(요4:9)이라고 설명한다.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마치 의절한 형제처럼 원한에 사무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이 둘은 부분적으로 세계관을 공유하고(서로 다른 판본이지만 둘 다 모세오경을 믿었다),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으며(우물가 사마리아 여인은 “우리 조상 야곱”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같은 주제를 두고 각자 잘 정립된 주장으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예루살렘과 그리심 산 중, 어느 곳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나?). 이처럼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를 잘 알았기에 더욱 상종하기 어려웠다. 복음서 저자인 누가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환대하지 않은 사마리아 마을에 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왜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들을 거부했을까?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유월절 순례자들이었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 전통을 지키는 유대인들이 달갑지 않았다. 야고보와 요한은 이러한 푸대접을 종교적 모욕이라고 여기고, 할 수 있다면 사마리아 마을을 통째로 날려 버리고 싶을 만큼 화를 내며 펄펄 뛰었다(눅9:51-56). 상대를 너무 잘 안다는 것이 오히려 서로를 향한 의심과 원한을 더 심각하게 만든 형국이다.
 
나는 이와 유사한 경우를 미국에서 종종 발견한다. 우리의 믿음이 낯설어서가 아니라, 너무 낯익은 것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들인 것이다.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처럼, 미국의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은 세계관을 공유하고(성경을 포함한 서구 전통), 같은 조상에서 나왔으며(메이플라워 호에서 시작된 기독교 국가), 같은 주제를 두고 각자 잘 정립된 주장으로 논쟁을 벌일 수도 있다(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한 구원). 우리는 서로가 무엇을 믿고 따르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서로를 더욱 의심하고 적개심을 더욱 키워 나갈 수도 있다.



우리 동네, 사마리아

통상적으로 타인을 존중하는 미국 사회 특성상, 적대감은 쉽게 표현되는 감정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적대감이 공공연히 드러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나를 화들짝 놀라게 한다. 내가 사는 곳 근처에 교회 건축이 계획되면서 토지 용도 변경 공청회가 열린 적이 있다. 나는 이웃 주민들이 그 조그만 교회를 반쯤은 따뜻한 환대로, 반쯤은 무관심으로 받아들이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공청회를 통해 드러난 것은 잘 단합된 적개심이었다. 주민들은 교회 건축을 반대하는 청원서를 만들어 돌리고, 함께 뭉쳐 토지계획위원회와 시의회에 몰려갔다. 교회 건축에 반대 의견을 표명하는 회의는, 모두들 앞다투어 할 말이 많았던지라, 몇 시간째 계속됐다. 많은 주민들이 교통(일요일 아침에?)과 안전이나 소음 문제를 내세웠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이유는 하나였다. 우리는 교회가 싫고, 우리 동네에 교회가 들어서는 것이 너무 싫다는 것이다. 토지계획위원회 회의에서 한 남자는 “우리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교회가 들어서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이 동네로 이사 오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이것이 바로 사마리아에서 살아가는 삶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를 향한 적개심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올바른 다양성

사마리아 사람들의 적대감은 관용(tolerance)과 다양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이것들을 무기로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는 형식으로 자주 나타난다. 최근 하버드, 러트거스, 노스캐롤라이나, 위스콘신 대학은 기독학생회(Int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의 학내 동아리 승인을 철회했다. 대학 당국은 IVF가 동아리 대표를 그리스도인으로 제한한 것은 종교적 차별과 편견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를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승인 철회의 이유를 밝혔다. (이 대학들은 학생들의 격렬한 항의와 두 건의 소송을 겪고 나서야 결국 입장을 누그러뜨렸다.)
 
이와 비슷한 생각들이 일상의 영역에 널리 펴져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보통 관용의 정신이 희박하다는(특히 동성애자, 페미니스트, 무신론자, 진화론자, 타종교인, 낙태 지지자들에게) 말을 자주 듣는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가는 길은 오직 하나이며 절대 진리와 완전무결한 성경을 믿는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논리적으로 보자면 이러한 믿음에 동의하지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일부 세속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이러한 비非관용을 관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다양성을 좋아하지만,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다양성만을 지지한다. 그들의 시각에서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에게 자기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엄격한 기독교적 도덕 기준을 믿는다고 말하는 행위는 비관용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고 괴롭히는 것이다. 과거의 관용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의미했지만, 지금은 그 이상의 뜻으로 넓어졌다. 모든 차이와 다름이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 현대가 정의하는 관용이며, 급진적인 도덕 상대주의가 만연한 사회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정의를 받아들이는 척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곧바로 뿌리 깊은 적개심과 맞닥뜨리게 된다.
 
관용이 사마리아 같은 우리 사회에서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 유래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신약 시대에 대표적인 관용 정신의 예는 로마 제국이다. 다른 제국이 그러했듯이, 로마법을 저촉하지 않는 한, 로마는 정복지의 종교와 민족, 문화적 차이를 인정해 주었다. 로마가 이처럼 사람들에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라고 강요한 것은 제국 안에서 내란이 일어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로마 제국 안에서 평화와 관용은 마치 사담 후세인의 철권 통치 아래서 무슬림 수니파와 시아파가 비교적 잘 어울려 지냈던 이치와 같다.
 
초기 그리스도인에게도 관용 정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이유, 곧 이웃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당시 박해를 받았던 소수자들은 이웃에 반격을 가함으로 자신들이 겪은 피해를 되돌려 주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하면서 양상은 달라졌다. 권력을 쥔 그리스도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교도나 이단들을 하나님이 명령하신 질서에 반하는 위협 요소로 간주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제국이 선호하는 통제 방식을 받아들여, 자신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관용하지 않고 박해했다. 이처럼 강요된 ‘하나의 기독교’는 종교개혁기까지 지속되었지만, 종교개혁가들이 단일화된 기독교 질서를 해체한 이후 다양한 모습의 그리스도인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기독교 세계는 내란에 휩싸였다. 유럽을 휩쓴 종교 전쟁은 물론 순수한 종교적 동기에서만 비롯되지 않았지만, 종교적 비관용이 그 전쟁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다. 구교도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신교도를 박해했고, 또 신교도들도 같은 이유로 구교도를 탄압했으며, 루터파는 재침례파를 억압했다. 이 전쟁에서 특별히 우세한 세력이 나오지 않자 내란은 끝없이 반복될 것 같았다. 이 오랜 종교 전쟁은 종교적 비관용에 대해 나쁜 인상을 남겼다. 종교적 비관용은 하나님의 명하신 질서를 순수하게 보존하기는커녕, 혼란과 폭력만 부추겼다.
 
이러한 와중에 계몽주의가 혼란에서 사람들을 구하였다. 특별히 미국은 국가에서 종교를 분리했다. 그리하여 국가는 종교를 구실로 전쟁에 나설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아무리 괴상하고 왜곡된 종교적 소수파라도 국가는 그들의 종교를 탄압할 수 없게 되었다. 국가는 탈종교화되었고, 교회는 이로 인해 힘을 잃었다. 그러한 변화의 목적은 평화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를 대신하여 공공 영역의 새로운 중재자가 되었을까? 바로 과학과 이성이 그 왕좌를 차지했고 대중 담론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포스트모더니즘식 관용

대체로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계몽주의와 충돌 없이 지내 왔다. 각 사람은 자신의 믿음(무신론을 포함하여)을 실천할 권리가 있다는 계몽주의식 관용을 그리스도인들은 받아들이고 이해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를 따르라고 강요할 수 없으며, 우리의 믿음을 퍼뜨리기 위해 정부를 동원할 수도 없다. 그러나 골치 아픈 문제들은 여전히 남는다. 예컨대, 졸업식 축도라든가, 공공 장소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것을 둘러싼 논란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역에서는 다양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평화롭게 어울려 살았다. 여러 종교들이 계몽주의식 관용 속에서 각기 번영하는 듯 보였다. 그러던 가운데 최근 포스트모더니즘이 대두되면서 두 번째 버전의 관용이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를 향한 우리 사회의 사마리아식 적대감을 부채질하는 원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 중심의 근대적 사고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태동했다. 계몽주의가 신봉하는 ‘이성과 과학’이란, 힘을 가진 자들을 옹호하기 위해 동원된 거짓 진실이라고 포스트모더니즘은 주장한다. 예컨대, 유럽의 제국주의는 문명과 도덕을 전파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달려갔다고 선전했지만, 실상은 노동력과 자원을 갈취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가정으로 범위를 좁히면, 이성적인 남성들이 감성적인 여성을 이끌고 보호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회의론이다. 미국 남부 정치인들은 법과 질서를 정중하게 강조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종 차별 정책과 억압을 강화하고자 하는 속셈을 감추고 있다고 포스트모더니즘은 소리 높인다. ‘특권 계급을 옹호하는 이야기’(privileged narratives)와 불공평한 힘의 분배에 의혹의 눈길을 던지는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이성과 질서에서 ‘탈구조화’ (deconstructs)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양한 목소리와 문화, 그리고 그것들을 옹호하는 색다른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그리스도인들도 특별히 대학교 같은 곳에서는, 개인의 종교적 열정과 경험을 정교한 신학에 근거하지 않고도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계몽주의 시절이라면 생각도 할 수 없는 오순절 운동도 요즘에는 존중을 받으며 경청의 대상이 되었다.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떤 진리의 주장, 특히 그 주장이 특권층을 옹호하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일수록 의심부터 하고 보아야 한다는 기조를 만들었다. 예를 들면 “동성애는 옳지 않다”는 주장은 인간 성욕에 대한 합리적인 철학이나 유구한 도덕적 전통으로 간주되지 않으며 심지어 순수한 개인적인 반응으로도 취급되지 않는다. 그 주장은 동성애를 찍어 누르려는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담론은 비논리적이면서도 자기 모순적인 면이 있는데, 문제는 이것이 논리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을 회의하며, 어떤 무엇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단 하나 목표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양성이다. 특권층의 권력을 훼손하고 좌절케 만들면서 얻어내는 다양성만이 포스트모더니즘이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를 직시해 보자.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은 특권층으로 간주되는데, 우리는 정작 그렇게 느끼지 못하며, 오히려 대학가나 언론 등에서 부당한 뭇매를 맞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곤 한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볼 때, 우리는 그 숫자가 너무 많은 무리다. 어디를 가든 교회가 있고, 기독교 학교나 서점이나 출판사, 심지어 기독교 텔레비전 채널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대통령까지 당신네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독교는 미국을 지난 200년간 지배하였다. 그렇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은 권력과 지배를 원한다고 의심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내세우는 것만큼 권력과 지배를 얻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또 어디 있겠는가?



사마리아에서 살아가기

사마리아에서 살게 된 것을 환영한다. 이곳은 당신을 알지 못하지만 당신이 믿는 바에 관해서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당신을 의심부터 하는 그런 곳이다. 당신이 예배를 드리는 공간이 동네에 들어서는 것조차 싫어하는 곳이며, 당신이 사회를 지배하려 든다고 미리부터 오해하는 곳이다. 이들이 말하는 관용 사회란, 당신 자신을, 그리고 당신의 생각을 꽉 붙들어 매고 억눌러야 하는 곳이다. 한때 그리스도인의 발자취로 아름다웠던 관용 사회가 이제는 그리스도인을 향한 적대감을 품은 곳으로 변했다.
 
그러한 적대감을 마주하게 되면, 우리는 침묵을 지키거나 적당히 섞이거나 아니면 도전장을 던지는 것으로 반응한다. 그러나 이러한 세 가지 방법 모두 토론의 가능성을 닫아 버리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기회를 제한한다.
 
티모시 켈러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격려한다. 2001년 9월 11일 이후, 맨하탄에 소재한 켈러의 ‘리디머 장로교회’(Redeemer Presbyterian Church)는 수백 명의 비그리스도인 구도자들을 받아들였다. <리더십>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켈러는 이렇게 말했다. “다원주의 문화에 속한 이들에게 설교하면서, 저는 기독교의 진리를 축소하지 않는 동시에 종교의 다원성을 믿으며 성장한 이들을 불필요하게 소외시키지도 않는 균형이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기독교야말로 가장 우월한 종교다’라는 식의 노골적인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믿음을 비하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기독교만의 차별성을 강조합니다.”

 

   

켈러는 특정 표현 방식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들의 권력과 우월성에 과민 반응케 하고 적대감을 부추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우리가 길과 진리, 그리고 생명에 관해 알지만, 그러한 이야기를 고개를 빳빳이 쳐든 채 잘난 척하는 말투로 이야기한다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모든 대화는 중단되고 적대감만 더욱 깊어질 뿐이다. (만일 예수님이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의 항의를 맞받아쳐, 그리심 산은 하나님을 경배할 만한 곳이 아니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셨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대신, 켈러는 우리가 예수님의 겸손과 고난, 그리고 그분이 내려 놓으셨던 힘을 강조하면서 그분의 독특함을 표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 역시 겸손과 섬기는 자세를 취하며 가능한 충돌을 피할 수 있다. 예수님 당신이 직접 그러하셨고 우리에게 명하신 것처럼 다른 편 뺨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제자들은 그들을 모욕한 사마리아 마을 사람들과 싸우고 싶어 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나무라셨다. 정당한 이유가 있었음에도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싸우길 원치 않으셨다.

문득 나는 요즘 그리스도인들이 대화가 거칠어진 텔레비전 토론을 잘 피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아마도 우리는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다른 마을로 가거나, 일대일 대화의 기회를 엿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개인과 개인의 대화가 쉬운 것은 아니다. 우물가의 여인은 예수님께 유대인인 당신이 사마리아인에게 설교할 권리가 있냐고 따져 물었다. 사마리아인이야말로 야곱의 진정한 후손이라고 암시하면서 해묵은 예루살렘 대 그리심 산 논란을 들먹이면서 말이다.

그녀의 어투가 도전적이었든, 단순한 빈정거림이었든, 그녀는 논쟁을 일으키는 방법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케케묵은 말싸움에서 한 발짝 비켜서, 호기심을 일으키는 독창적인 언어―“생수”(living water)―를 사용하셨다. 그분은 사마리아와 유대의 모든 차이와 논쟁이 새롭고 깊은 진리 속에 녹아들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사마리아에 살고 있는 한, 우리 역시 그러한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 기술이 우리의 급진적인 견해를 가리지 못하고, 진부한 논쟁을 피하게 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사마리아에서 살면서 대화의 기술보다 더 필요한 것은 오랜 인내와 사랑이다. 분명한 것은 직접적인 반격으로는 어느 누구도 오랜 적대감을 바꿀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 적대감을 극복하고 새로이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신선한 기회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적개심으로 무장한 다른 편에 서 있는 이들을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이 그 모범을 보여 주셨다.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항상 존중하셨고, 심지어 사마리아인을 이웃 사랑의 예화로 들기도 하셨다. (우리가 미덕의 예화를 든다면, 주인공으로 누구를 등장시킬까?) 그리고 또한 당신의 부활을 알리고자 제자를 사마리아로 보내셨다(행1:8). 빌립은 이 명령에 충성했고 “그래서 그 성에는 큰 기쁨이 넘쳤다”(행 8:8). 원한과 적대감은 결국 무너질 수 있음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CTK 20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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