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힘 있는 교회가 소리 없이 무너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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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힘 있는 교회가 소리 없이 무너지는 이유
  • 고든 맥도날드 | Gordon MacDonald
  • 승인 2019.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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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몰락을 막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일리노이 주 남부의 한 교회에서 목사직 요청을 받았다. 목회자의 리더십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알게 된 내 생애 첫 번째 경험이었는데, 무척 불편한 나날들이었다.

영적 지도자로 나를 청빙한 교인들이 나에게 특별한 기술(혹은 은사)이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아마도 나의 열정과 설교였을 것이다. 그리고 젊은 나이지만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그들로 하여금 보살핌을 받는다고 느끼게 하는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재능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제직회에 보고할 책임이 있었는데 그들은 나를 무척 반겼지만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깊이 경험하지는 못한 사람들이었다. 이외에도 나는 사무실 직원과 교회학교 담당 사역자, 주 2일 근무하는 교사, 성가대 파트타임 지휘자, 사찰집사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전 직원을 챙겨야했다.

그런데 교회 측이 나에게 한 가지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전임 목회자가 100명이나 되는 성도를 부추겨 자기가 개척하는 교회로 데려갔으며 그 때문에 교회는 심각하게 분열되고 환멸감에 빠져 있었다.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이 정도 규모의 교회를 이끌어가는 방법에 대해 내가 별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군다나 교회는 무척 복잡한 상황이었으며 상처로 얼룩진 상태였다. 당시 스물일곱 살이던 나는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나는 뛰어난 설교자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열정적인 꿈만 있으면, 그 밖의 교회 문제들은 자동적으로 해결되리라는 믿음으로 신학교 과정을 마쳤다. 교회 직원들은 나의 방향 제시를 기다렸고, 제직회는 성과를 요구했고, 교인들은 치유가 필요했는데 이를 미리 알려준 사람은 없었다.

이것은 마치 신혼여행을 마칠 때쯤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달콤하고 즐거운 사랑만이 아니라, 세금 고지서와 분담해야 할 집안일, 그리고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성격 차이, 여기에다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것들까지 뒤섞여 결혼에 딸려 왔음을 뒤늦게 깨닫는 것과 같다.

교회와 결혼은 둘 다 여러 명이 함께 이루어가는 조직이라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들을 잘 움직여가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가 못했다.

이렇게 내 자신에 대해 철저히 “깨닫고 있을 때”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한국경제신문사 역간)를 소개받았는데 내 생애 처음 읽은 리더십 책이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책으로 남았다. 피터 드러커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도달할 수 없는 목표에 이룰 수 있도록 그들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힘을 실어줄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열어주었다. 이 책이 목회 인생 첫 라운드의 실패에서 나를 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많은 저술가들이 피터 드러커의 통찰력을 넘어서는 책을 남기고자 애써왔다. 하지만 내 생각에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와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이상 김영사 역간)을 쓴 짐 콜린스만큼 성공적인 사람은 없다. 그가 이 책들을 쓸 때 나와 같은 사람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처럼 신앙에 기초한 목회자 리더십을 수행해야 하는 사람들도 분명 그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

최근 콜린스와 그의 연구팀은 좀 더 소박한 「강력한 조직의 몰락」(How the Mighty Fall)이란 책을 내놓았는데, 처음에는 기사 하나로 시작했다가 결국에는 한 권의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고 설명을 붙였다. 설교가인 (동시에 저술가인) 나는 그 아이디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콜린스는 군 관계자와 사업가들,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공통의 관심사를 놓고 토론하는 세미나 기간 중에 새 책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고 적고 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오늘날 미국은 자국의 위대함을 더욱 발전시키고 있습니까, 아니면 겉만 그럴싸해 보이는 채로 추락하는 위기 상황입니까?”

쉬는 시간에 CEO 한 사람이 콜린스에게 다가와 질문하면서 대화가 시작되었다. “오늘 토론은 빨려 들어갈 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오전 내내 선생님의 질문을 우리 회사와 관련하여 곱씹어 보았습니다. 우리는 최근 몇 년 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는데, 저는 그게 무척 불안합니다.”

이어서 CEO는 성공이 추락 경고를 종종 덮어버린다고, 그게 두렵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그래서 그는 항상 같은 질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회사가 문제를 키우면서 추락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아주 좋아 보일 때, 어떻게 그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순간 CEO는 그 답을 「강력한 조직의 몰락」에서 찾아 지니고 있다.

콜린스는 책의 요점이 잘 드러나는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내와 함께 콜로라도 주 아스펜 근처로 등산을 떠났는데 산행을 위해 철저히 준비한 콜린스의 아내는 단숨에 그를 앞지르더니 약 4천 미터 지점에 이를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나갔다.

하지만 두 달이 조금 지난 후 아내는 암 판정을 받고 두 차례에 걸쳐 유방 절제 수술을 받는다. 콜린스의 요지는 “산행을 하던 날 아내는 매우 건강해 보였지만, 자신의 몸에 이미 크게 번진 암을 지니고 다녔다는 것이다.”

콜린스는 계속해서 이렇게 적는다. “나는 조직의 쇠퇴가 마치 진행 중인 질병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말해, 조직의 병폐를 초기 단계에서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발견만 하면 치료는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말기 단계에서는 발견이 쉬운 반면 치료가 어렵다. 조직이 겉으로는 강하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이미 병들어 있어 가파른 낭떠러지로 떨어질 위험한 상태에 처해있을 수 있다.”

그의 글을 보면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말씀이 생각났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 3:17).

콜린스는 조직이 실패에 빠져드는 과정을 다섯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각 단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위험해지는 잘 알려진 비탈길이며, 지도자가 현재 진행되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피할 때 문제는 더욱 악화된다.

생각이 깊은 지도자라면 콜린스가 말한 다섯 단계를 알기 원할 것이고, 나아가 자기보다 위에 있는 더 큰 지도자가 그것들을 반드시 알았으면 하고 바랄 것이다. 다섯 단계는 마치 리더십 세미나에서 다루는 다섯 가지 중요한 토론 주제처럼 들린다. 내가 각 단계를 처음 읽었을 때, 그것들이 리더십과 조직 생활에 대한 성경의 묘사와 어찌나 잘 부합하던지 무척 놀랐다.

그러면 조직이 쇠퇴하는 첫 단계를 예로 들어보자. 콜린스는 그것을 가리켜 “성공이 낳은 오만”이라고 부른다.

 

성공이 낳은 오만

“성공만 연구해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콜린스는 딱 잘라 말한다. 비즈니스 리더십이나, 심지어는 교회 리더십 관련 책들 가운데에도 실패의 원인을 탐구하는 책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책이 성공을 약속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성경 저자들은 실패를 기록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신구약 성경은 위대한 성공담과 더불어 개인의 실패 혹은 공동체의 실패를 자주 들려준다.

성경은 자기 과신, 즉 실패와 파멸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무모한 자만(콜린스가 “지나친 자부심”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언뜻 보면 겸손이 부른 성공담보다 오만이 낳은 실패담이 더 많지 않나 싶을 정도다.

다음은 몇 가지 예들이다. 거인 골리앗과 그의 동족 블레셋은 목동 다윗의 도전을 받아들였을 때 지나친 자만으로 꽉 차 있었다. 훗날 다윗 역시 밧세바와 부정한 관계에 빠질 때 오만에 사로잡힌다. 약 5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한 웃시야 왕은 성경이 그를 두고,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대하 26:16)라고 말할 만큼 깊은 자만에 빠졌다. 위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의 통제 아래 있는 어떤 것도 잘못되리라고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들은 성공하기에 충분한 자들이었지만, 자신이 실패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민족의 이야기는 굴욕과 고난을 가져다주는 오만불손한 행동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작은 도시 아이에서의 충격적인 패배는 여리고에서 대승리를 거둔 직후 일어났다. 여리고와의 전쟁 전에 이스라엘이 승리하리라고, 아이와의 전쟁 전에 이스라엘이 패배하리라고 예견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여리고 전쟁을 겸손으로 승리했다면, 아이 전투는 오만으로 패했다.

자신이나 자신의 시스템, 자신의 성공을 지나치게 확신하는 오만은 지도자로 하여금 조직 내에 이미 허물어져 무너지는 약한 곳들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아이를 향해 돌진하는 태도가 바로 그러했다. 작은 성읍을 정탐하고 여호수아에게 돌아온 정탐꾼은 이렇게 보고했다.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수 7:3).

이것은 현실의 문제를 과소평가하고, 이를 해결하는 자기의 능력은 과대평가하는 매우 오만한 태도다.
반대로 사도행전 6장 1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겉으로는 성공한 듯 보이지만 밑바닥부터 차오르는 분열의 위험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사도들이 사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에 착수한 것은 찬사를 보내야 할 일이다.

몇 년 전 쓰나미로 인해 태평양 연안의 많은 나라가 재앙을 당한 후, 과학자들은 쓰나미가 발생시키는 진동을 조기에 포착하는 감지 장치를 해저에 설치했다. 이것이 바로 조직의 지도자가 취해야 할 행동이다. 심각한 문제를 미리 신호해줄 사람을 찾아두고, 구체적인 점검 목록을 만들어 항상 확인하고, 영적인 ‘흐름’을 파악하라. 지금은 작지만 그대로 방치할 경우 반드시 커질 문제가 소리 없이 태어나 자라나지 않도록 자기 과신과 오만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더 많은 것을 추구함

콜린스는 조직의 쇠퇴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대부분의 문제가 다가올 위험을 모르고 안주하는 자기만족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면에서 자기만족과 정반대인 과도한 욕심이 진정한 문제였다.

과욕은 조직을 처음 만들 때 기초로 했던 핵심 원리를 무시하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조직의 영혼을 팔아서까지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팽창하는 것이다.

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 아니었나 싶다. 바울은 반어적인 표현을 사용해 그들을 권면했다. 대조적인 어구로 자신을 비하하는 대신에 그들의 과도한 욕심을 꼬집었다.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고전 4:8, 10).

무리한 욕심은 우리가 현재 어떤 것을 잘하고 있을 경우, 다른 것도 똑같이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으리라는 유혹에서 비롯된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모습이 그러했다.

지도자 중에는, 사업과 관련된 것이든 혹은 신앙과 관련된 것이든 간에, 조직의 성장과 확장에만 눈이 먼 자들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 보이려는 지도자에게서 자주 나타나는데, 그들이 능력을 입증해 자존심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어떤 결과를 낳든 개의치 않고 조직을 더욱 확장시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더욱 확장하고 성장시켜,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이 갖고 있는 일관된 개념이다. 다윗을 이어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솔로몬을 보자. 처음에는 부족한 ‘지혜’를 구할 만큼 ‘총명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고, 그렇게 초기 솔로몬의 삶은 놀라운 성공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차차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면서 욕심을 부리기 시작한다. 더욱 많은 말과 병거, 재물과 후궁을 원했다. 일찍이 모세가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 세 가지를 멀리하라고, 그것들이 몰고 오는 위험을 기억하라고 경고했음에도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솔로몬은 ‘지혜’를 멀리 떠나 ‘더욱 많은 것’ 쪽으로 점점 더 다가가 나중에는 그 곳에 눌러 앉아 살았다.

만약에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솔로몬의 전성기 때 그와 인터뷰를 했다면, 그는 자신의 확장에 대해 매우 타당한, 심지어 신학적으로도 합당한 이유를 제시했을 것이다. 아마 그의 논리적인 설명은 우리를 완전히 잠재웠을 것이다. 그러나 무리한 욕심은 결국 그를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만든다. 여기에서 의문이 떠오른다. 그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왜 더욱 많은 것에 욕심을 냈을까? 그로 인해 왜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을 당해야 했을까?

오늘날도 우리 주위에 솔로몬처럼 지나친 욕심을 내는 자들이 있는가?

나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위임하신 사명이 그들의 조직을 더욱 확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제자 삼는 것이었다는 사실에 커다란 감명을 받는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이 제대로 훈련받았을 때에만 어느 성읍과 마을에서도 이 운동을 아무런 문제없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아셨다. 예수님께서 우려하신 것이 지금까지 수 세기에 걸쳐 반복되어 왔다. 우리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기독교 운동을 조직화하고, 중앙집권화하고, 과대 선전하는 일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여 오지는 않았는가.

 

위험과 위기를 부인함

세 번째 단계는 지도자와 조직이 비판적인 정보를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고, 귀에 거슬리는 것을 들으려 하지 않으면서 나타난다. 위험을 정확하게 평가하지 않고 회피하면 결국 조직은 심각한 상처를 경험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성경 이야기 가운데 하나(열왕기상 22장, 단 한 장으로 된)는 아합 왕과 여호사밧 왕이 나눈 대화다. 두 왕이 길르앗 라못과의 전쟁을 상의하기 위해 만났는데, 경건한 왕 여호사밧은 “우리가 먼저 여호와께 도움을 구하자”고 제안한다.

아합은 제안을 받아들여 선지자 400명을 불러 그들의 의견을 구했고, 그들은 하나같이 전쟁을 치르는 것이 현명한 결정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아합이 부른 자들은 거짓 선지자였고 결국 아합은 자기 소견에 부합하는 의견을 이끌어냈다.

의심스러운 생각이 든 여호사밧은, “이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하고 물었다.

아합은 매우 주목할 만한 답변을 했다. “아직도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

미가야가 두 왕 앞에 섰을 때, 그는 정확하게 아합이 예상한 말을 한다. 아합과 여호사밧이 전쟁에서 얻을 결과를 매우 분명하게 알려준다. 그의 예언은 적중했고, 결국 아합은 전장에서 죽는다.

콜린스는 부정확하거나 그릇된 정보를 바탕으로 잘못 판단하는 것을 매우 우려한다. 아마 교회가 직접 정보를 수집하지 않고, 떠도는 말이나 선입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을 알면 더 많은 염려를 나타낼 것이다.

그렇다, 나도 리더십을 행했던 초기에, 다음처럼 시작하는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달았다. “그들이 말하는데…”, “며칠 전에 들은 얘긴데…”, “많은 사람들이 요즘 느끼기를…” 등이 그 말들이다. 나는 이러한 “말들”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것들인지를 식별해 나가면서 성장했다.

나는 신실하고 지혜로운 사람들로부터 가장 소중한 정보를 얻었다. 그들은 질문을 미리 준비하고 공동체를 대화 속으로 질서 있게 참여시키도록 권한을 위임받은 이들이다. 이렇게 잘 준비된 사람들과 그들이 이끄는 대화를 통해 우리는 성도들의 의지와 믿음, 상황이 어떠한지 알 수 있었고, 장차 교회가 내디딜 발걸음을 정할 수 있었다. 물론 성도를 일대일로, 소그룹으로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 직접 그들의 말을 듣는 것보다 더 유익한 것은 없었다.

 

[더 바이블_캡쳐]
[더 바이블_캡쳐]

구원을 갈구함

콜린스가 말하는 네 번째 단계는 “조직이 쇠퇴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묘책을 찾는 것”이다. 아직 입증되지 않은 제품이나 이미지 개선에 기대를 갖거나, 훌륭한 컨설턴트를 고용하거나 아니면 홀연히 백마를 타고 나타나 모든 문제를 한방에 해결하는 새로운 영웅을 기다리는 것이 좋은 예다.

성경에서 이러한 예를 찾아보려 했을 때, 떠오른 인물이 사울 왕이다. 다른 나라처럼 되고자 왕을 간절히 원했던 이스라엘은 훌륭한 가문 출신에, 외모와 언변이 뛰어난 사울을 왕으로 세웠다. 마치 프로 스포츠 팀이 슈퍼스타급 선수를 영입하면서 챔피언 자리를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은 희망에 도취되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삼상 8:19, 20). 이것은 마치 문제 해결을 위한 묘책을 발견한 것처럼 들린다.

묘책은 종종 실제로 효과가 있다. 그러나 짐 콜린스는 대부분 그렇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암시한다.

이스라엘의 묘책으로 등장한 사울 왕은 한때 잠깐 형통했지만, 이스라엘을 안정된 왕국으로 건설하고, 그들의 위대한 잠재력을 개발시킬 수 있는 내적인 자질을 갖추지는 못했다. 사울은 백성의 압박이 커지자 숨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사울에 대한 모든 지지를 철회하셨다. 사울이 자기가 승리를 갈망했던 전쟁터에서 전사한 것은 매우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교회가 퇴보하는 것처럼 보일 때 그것을 반전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승리를 갈망했던 때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교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게 할 것인지, 그의 백성답게 살아가면서 본질적으로 생활이 변하게 할 것인지에 관심을 갖는 대신, 일시에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다. 하루아침에 부흥하는 교회, 특별한 프로그램, 유능한 교회 직원 같은 단어를 만지작거리는 것이다. 하룻 밤 사이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완벽하고, 감동적인 설교를 준비하려 했던 날이 기억난다. 지금 나는 그 노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뛰어난 설교를 하고 실력 있는 인재를 채용하고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프로그램을 개발한다고 해도 그것들은 요령을 부려 탈출구를 모색하는 것에 불과하다.

감사하게도, 내 주위 사람들처럼 나는 요령을 부려봤자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다. 우리가 사람에게 다시 관심을 기울이고, 잘 배우는 사람을 지도자로 훈련시키며, 예수 그리스도를 이웃에게 전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모든 것이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콜린스는 조직이 요령을 부리면 다섯 번째 단계에 이른다고 말한다.

 

불합리에 굴복하거나 죽음에 무릎 꿇음

교회 같은 조직에서 믿음과 영성이 마르는 것은 기업에서 현금이 바닥나는 것과 같다.

예수님이 “내가 다시는 오지 아니하리라”고 다짐했던 예루살렘 성전이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분은 머지않아 예루살렘 성전이 돌무더기와 다름없는 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얼마 전, 웨일즈의 한 교회 건물 앞에 서있었는데 교회 문에 “매매”란 광고문이 붙어있었다. 주춧돌을 보니 웨일즈의 부흥이 절정을 달했을 때 건축된 것이었다. 지금은 주위에 잡초가 무성하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조직이 죽음으로 접어들었다면 그 시작은 언제였을까? 누가 그 숨은 신호를 놓쳤을까? 누가 조직의 기초가 되는 신념을 무시했을까? 누가 정보를 잘못 해석하고 거짓된 말을 전했을까? 누가 당장의 성공을 위해 묘책이나 요령을 추구하자고 했을까?

중요한 질문들이다. 무시하면, 강력한 조직도 반드시 나락으로 떨어진다. CTK 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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