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으로 내려온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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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으로 내려온 설교
  • 고든 맥도날드 | Gordon MacDonald
  • 승인 201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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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대로 사는 것뿐 아니라 교인들이 사는 모습도 알아야 한다

시간이 넘게 그 남자는 51년간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중독과 싸운 일, 힘들었던 인간관계, 정말 하고 싶었던 일들을 솔직히 말했다. 그의 말에는 성공과 실패, 깨달음과 후회가 담겨 있었다. 정체된 신앙생활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우리는 2년 가까이 매주 모인 덕분에 이 정도로 마음을 열 수 있었다. 서로 신뢰하는 데 2년이 걸린 셈이다. 이제는 감춰왔던 일을 솔직히 말하며 친구들의 도움을 구한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가 한 말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그에 대해서도, 그가 매일 부딪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명색이 목사인데 지금까지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지도 못했구나. 그런데도 매주 그에게 설교를 했다니 부끄럽다. 아무 소용없는 설교를 하면서 어떤 변화를 기대했더란 말인가.’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이런 상상을 했다. 나는 호텔의 긴 복도를 따라 걷는다(나는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다). 닫힌 방문이 수없이 지나간다. 문 뒤에서는 소리가 들린다. 호텔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들, 이를테면 시끄러운 TV소리, 말소리, 욕조에 떨어지는 물소리, 널리 알리고 싶지 않은 다른 소리들이 들린다. 그 소리들은 다양한 삶과 활동을 암시한다. 그러나 문제는 문이 닫혀 있기 때문에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해야 할 말을 추측해서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상을 하고 보니 그는 자기 방문을 열어서 우리에게 들어와 보라고 말한 것과 다름없었다.


 

남자들의 세계를 엿보다


사람들이 방문을 열게 만드는 것. 이것은 목사에게 가장 큰 어려움이다. 그래야 성경의 진리를 사람들의 실제 경험에 포갤 수 있다. 그런 목사가 많을까?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20대 중반에 목회를 시작했다. 어느 해 나는 북미 여러 지역에 있는 크고 작은 다양한 교회에서 설교할 기회가 많았다. 그 당시 순회 설교자는 보통 (경비가 많이 드는) 호텔에서 지내지 않고 (이른바 선지자의 숙소라고 부르는) 민박을 했다. 덕분에 나는 뜻하지 않게 배운 것이 많았다.

내가 민박을 하면서 다른 이의 ‘사적 공간’에서 여러 사람을 만난 이야기는 이미 다른 책에서 소개했다. 민박하는 주말이 되면 나는 별별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부부가 서로 대하는 태도, 부모와 자녀가 지내는 모습을 보았고, 축하의 자리, 다툼의 자리에도 함께했다. 보아서도 들어서도 안 되는 것을 보기도 하고 듣기도 했다. 모든 목사는 이런 경험이 있어야 한다.

늦은 밤 가족들이 대부분 잠자리에 들면 나는 자주 남편이나 가장들과 오랜 담소를 나누었다. 우리의 대화는 깊고도 넓었다. 그들에게 배운 것이 있다.

첫째, 남자들은 교회 밖에서는 말하는 것이 달라진다.

둘째, 남자들은 나를 목사로 생각하지 않을 때 말하는 것이 달라진다. (나도 굳이 밝히지 않았다.)

셋째, 남자들은 교회나 신앙과 관련이 없는 질문을 했을 때 자신에 관해 말하는 것이 달라진다.

나는 이 한밤중 대화에서 남자들의 직업, 남자들의 두려움, 남자들이 결혼과 가족생활에서 겪는 실망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꿈과 장애물이 무엇인지 들었다. 또 남자들이 교회와 목사를 대하는 태도의 진실을 볼 때가 많았다.

왜 남자들은 교회에 가기 싫어하는지 파헤치는 책들이 있다. 읽을 가치가 있는 책들이다. 나는 그것의 대부분을 40년 전 한밤중 대화에서 들었다.

흔히들 말한다. “우리 목사님은 훌륭한 분이야. 그런데 교회 밖의 일은 아는 게 없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내가 어떻게 사는지 전혀 몰라.”

어떤 남자가 나에게 말했다. “우리 목사님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아세요? 어느 날 이런 축도를 하셨어요. ‘주님, 이제 예배를 마치오니 월요일 저녁 모임에 은혜가 임하고, 부활절 콘서트를 준비하는 성가대에 기쁨이 넘치고, 이번 주말에 겨울수련회를 떠나는 청소년들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우리가 모두 다음 주일에 다시 모여 예배의 은혜를 누리게 하시옵소서.’”

그가 말했다. “우리 목사님은 내가 직장에 다닌다는 것을 몰라요.”

몇 해 전, 우리 교회의 어느 남자 교우가 나에게 말했다. “목사님, 목사님은 하루 종일 교회만 생각하시지요.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지요. 그런데 저는 어떨까요? 오늘 오후에 여기를 떠나면 사나흘은 교회를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먹고 살기에 바빠서 여력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해해주세요. 제가 목사님도 사랑하고 우리 교회도 아끼지만 주중에는 교회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요.”


 

직장이라는 넓은 세상


나는 사람들이 (나처럼) 교회를 중심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과 교회 일에 모든 정력을 쏟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러나 나는 일요일 아침이 되면 ‘복도’를 걸으며 닫힌 문 뒤에 있는, 일상의 95% 이상은 교회가 아닌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설교해야 했다. 문은 닫혀 있고 희미한 소리밖에 들을 수 없다면 교인들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어떤 설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것이다.

설교를 40년이 넘게 했지만 일요일이 되면 나에게 28-38분가량 혼자서 말할 기회를 주고 가만히 앉아서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놀랍다. 우리 사회에서 코미디언과 교수 몇 사람을 제외하면 누가 이런 특권을 누리겠는가?

내가 순회 설교자로서 여행하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보자.

때때로 월요일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는 날이면 나는 아침에 집주인과 함께 출근했다. 사무실을 둘러보고 상사와 동료들을 만났다. 연구실도 둘러보고 거래처에도 따라가고 공장도 견학했다.

안전모를 쓰고 사다리를 타고 6층짜리 강철 구조물 위에 올라갈 정도로 욕심을 부릴 때도 있었다. 우리는 아이빔 위에 걸터앉아 점심을 먹었다. 솔직히 말해 무서웠다. 화장실에 갈 생각을 하니 그곳은 있을 데가 아니었다.

그들과 이야기하고 그들의 직장에 가보면서 내 생각과 설교가 변했다. 물론 최종 평가는 내 설교를 들었던 교인들의 몫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던져야 할 물음이 있다.

 1 고든 목사는 교인들의 삶을 이해하고 있는가?
 2 고든 목사는 교인들의 실제 고민을 알고 있는가?
 3 고든 목사의 언어와 예화는 교인들의 피부에 와닿는가?
 4 고든 목사가 전하는 성경 메시지는 교인들의 가장 중요한 문제와 관련이 있는가?
 5 고든 목사는 하나님이 교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증거를 보이는가?
 6 끝으로, 고든 목사는 자기도 교인들과 같은 문제를 겪는다는 사실을 밝히는가?

의사 친구가 내게 해준 말이 있다. “고든, 설교하기 전에 자네가 자네한테 꼭 물어야 할 질문은 이거야. ‘이 설교가 어떤 소용이 있을까?’”


 

영화_선오브갓_스틸
영화_선오브갓_스틸

예수님의 강단은 어디였을까


예수님은 대부분 어부들이 고기를 잡고, 세리들이 세금을 거두고, 여인들이 물을 긷는 삶의 현장에서 말씀을 전하셨다. 회당에서 설교하신 적도 있지만 주로 사람들이 생활하고 일하는 삶의 터전에서 그들을 만나셨다.

단독으로 설교하는 목사는 1년에 35회 이상 교인들에게 설교할 수 있다. 휴가, 초청 설교, 절기(이를떼면 사순절, 성탄절) 설교를 빼면 35회도 많을 것이다.

일요일 정식 예배 모임에서 서른다섯 번 설교할 수 있다면 어떤 주제로 설교해야 할까? 예배당에 모인 다양한 교인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교회에 모여서 예배하는 사람들은 주로 다섯 문화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연령층은 10세에서 97세로 정하자. 지금은 은퇴했지만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목회했던 뉴햄프셔의 교인들의 연령대가 꼭 그랬다.

어느 일요일 아침 나는 7세 꼬마와 (매우 주의 깊은) 97세 할아버지에게서 설교를 잘 들었다는 말을 들었다. 과히 나쁘지 않은 세대 구성이다.

각 세대에는 생애 주기에 따라 달리 접근해야 할 기본적인 주제 질문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내가 쓴 「영적 성장의 길」(두란노 역간)에서 밝혔다(아래를 보라).

나는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이 주제 질문을 빠짐없이 되묻는다. 60대가 되고 보니 현재 내 삶을 주도하는 주제 질문은 서른에 내 삶을 주도했던 주제 질문과 전혀 다르다.

내가 30대에 목회를 할 때에는 지금 내 나이의 남자들이 나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문제를 거의 말하지 않는 이유를 몰랐다.

지금은 안다.

그들은 내가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결코 내 문제로 30대 사람들을 ‘지겹게’ 만들 생각이 없다. 그들이 내게 질문을 하더라도 나는 그들이 내 말을 무시하거나 비웃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매주 열린 모임에서 내가 만났던 남자들은 모두가 듣는 자리에서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했다.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전 교인들의 사는 이야기를 알았더라면 내 설교는 어떻게 변했을까?’ 예수님은 수가 마을의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흡입력이 있고 인생을 바꾸는 마르지 않는 샘이다. 어떻게 말씀하셨기에 마을 주민 전체가 그분에게 나아왔을까? 그분은 그 여인이 어떻게 사는지 아셨고, 그 여인은 그분이 자기를 아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 정도가 되어야 설교가 힘이 있다.



생애 주기별 주제 질문

 

  • 20대에게 설교할 때는 20대의 고민을 알아야 한다.

1.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차별되는 나만의 개성은 무엇일까?
2.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3. 누가 나를 사랑할까,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4. 나는 무엇을 중심으로 살아야 할까?

 

  • 30대는 배우자, 육아, 주택 담보 대출, 소득 증가 필요 등 장기적이고 중요한 책임들이 몰리는 시기이다. 인생은 갑자기 무겁고 버거워진다. 시간관리와 우선순위가 중요해진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인다. 30대의 고민은 이렇게 바뀐다.

1. 내가 책임진 일들을 성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 나는 왜 자신감이 부족할까?
3. 나는 왜 영혼의 중심을 잡지 못할까?
4. 이전과 달리 사는 것이 왜 재미가 없을까?
5. 나는 왜 여전히 죄를 지을까?
6. 나는 왜 친구들을 만날 시간이 없을까?

 

  • 40대에게도 어려운 고민들이 있다.

1. 저 친구들은 왜 나보다 더 잘될까?
2. 나는 왜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자주 실망할까?
3. 내 신앙은 왜 더 나아지지 않을까?
4. 내 결혼생활은 왜 권태로울까?
5. 나는 왜 철없던 젊은 시절을 그리워할까?
6. 내 꿈들을 포기해야 할까?
7. 나는 더 이상 매력이 없는 걸까?

 

  • 50대의 고민은 다음과 같다.


1. 젊은 사람들이 나를 퇴물 취급하지 않을까?
2. 내 건강이 왜 점차 나빠지는 걸까?
3. 내 주변에는 왜 좋은 친구들이 많지 않을까?
4. 자녀들이 출가하면 우리 부부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5. 나는 만족스런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걸까?
6. 나는 왜 더 이상 내 일에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7. 내 인생의 좋은 시절은 끝난 걸까?
8. 내가 앞으로도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 60대가 되어도 고민이 있다.


1. 나는 평생 해오던 일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2. 내 친구들은 왜 저렇게 늙어버린 걸까?
3. 늙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4. 평생 해결하지 못한 분노와 원한을 어떻게 해야 할까?
5. 우리 또래 친구들은 왜 죽어야지라는 말을 자주 할까?

 

  • 70대 이상은 다음과 같은 고민을 한다.


1.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는 사람이 내 주변에 있을까?
2. 쇠약해지는 건강을 어떻게 지탱할 수 있을까?
3. 나는 얼마나 더 오래 살 수 있을까?
4. 나는 얼마나 더 오래 자립과 위엄을 유지할 수 있을까?
5. 나는 어떻게 죽게 될까?
6. 내가 이루지 못한 목표와 꿈은 어떻게 해야 할까?

설교가 이런 고민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교인들은 이런 고민들을 말하지 않는 설교를 신뢰하지 않는다.

설교자는 생애 주기에 따라 변하는 이런 문제들을 중심으로 두려움, 실패와 후회, 열망과 기회를 말하면서 소망과 통찰의 말을 전할 수 있다. 그리스도가 임하심으로 인생이 열리고 변하는 모습을 경험하면서 말이다. LJ

 

색인:  설교/ 직장/ 세대
CTK 2010:12 “땅으로 내려온 설교”  Leadership Journal “Incarnate Preaching” 2007:여름

[수정:2015.02.20]
[게시:2010.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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