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건진 무신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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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건진 무신론자
  • 랍 몰 l Rob Moll
  • 승인 2019.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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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알베르 카뮈에게 믿을 만한 이유를 주지 못했다 하지만 카뮈는 내게 믿을 만한 이유를 돌려주었다

 

대학에서 맞은 마지막 해에 나는 다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몇 년간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며 그분과 씨름한 끝에 강렬한 영적 체험을 했고 내 삶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이튿날 하늘은 더 푸르고 초목은 더 짙었다. 그날 나는 난생처음 보는 사람에게 커피를 주문하면서 겨우 울음을 삼켰다. ‘하나님의 자녀가 여기 또 있구나! 함께 하나님을 찬양해도 모자란데 나는 그에게 돈이나 주고 있다니 부끄럽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무슨 음성을 들은 건 아니지만 문득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다.” 그뿐이었다. 다른 말씀은 없으셨다. 그 말씀 한마디로 하나님은 자기 존재를 알려주셨고 나를 충분히 아끼신다고 말씀하셨다. “나다.” 내 물음은 어떤 것도 풀리지 않았고, 5년간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부재도 설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말씀으로 만족했다. 베드로의 고백이 곧 나의 고백이었다. “선생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또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말씀하시기 전에 미리 몇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셨다. 내 영적 여행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1940년대와 50년대의 프랑스 실존주의자 알베르 카뮈의 철학과 소설이었다. 물론 그는 무신론자이다. C. S. 루이스는 경고했다. “건강한 무신론자로 남고 싶은 청년은 책을 가려 읽어선 안 된다.” 카뮈는 나를 안전하게 지켜줘야 했건만, 이제 내가 즐거이 말하듯이, 나를 건진 건 무신론자이다.

 

 

무신론자의 도덕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무신론자도 없었을 것이다.” G. K. 체스터튼의 말이다. 나는 하나님과 기적 같은 이야기들이 부당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부당하게 대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신론자들은 초월자가 존재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반박하는데, 흔히 그들의 주장에서 드러나는 건 하나님이라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어떤 토론에서 구약성경의 전쟁과 살육에 관해 불평했다. 그는 예언자 모하메드를 풍자하는 만화가 나오자 무슬림 국가에서 뒤이어 벌어진 살인을 보고 「신은 위대하지 않다」(알마 역간)를 썼다고 말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 여부에 관한 논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 특히 추종자들의 행위에 관한 논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인 무신론은 매우 도덕적인 철학이고, 우리가 강하게 반대하더라도 존중할 가치가 있는 이론이다.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저무는 무신론」(The Twilight of Atheism)에서 무신론은 계몽운동을 통해 “그 세대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지성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말한다. 루이스도 무신론의 가치를 인정한다.

루이스는 「예기치 못한 기쁨」(홍성사 역간)에서 커크패트릭 선생님을 무신론자로 소개하지만 서둘러 이렇게 덧붙인다. “그는 고상하고 엄격한 19세기 타입의 ‘합리주의자’였다. 무신론이 속세로 떨어진 건 그 이후이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SF 소설 「그 가공할 힘」(That Hideous Strength)에서 커크패트릭을 본뜬 인물을 창조하고 그를 악에서 세상을 구하는 소수의 사람 중 하나로 삼는다. 단순히 선생님을 좋아해서 그랬는지 모르나 늙은 선생님의 무신론에서 영적인 희망을 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희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휘튼대학 역사학 교수이자 「의심의 위기」(Crisis of Doubt: Honest Faith in Nineteenth-Century England)의 저자 티모시 라슨은 의심은 믿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말한다. “만약 의심해본 적이 없다면 믿음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 겁니다.” 라슨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여러 무신론자들이 기독교로 다시 개종한 사실을 발견했다. “사실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물음에 답하려고 힘썼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어조가 화가 난 것처럼 들리는 겁니다. 그들은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싸웠던 겁니다.”

올해로 사망 50주기(2011년)를 맞은 카뮈는 ‘고상하고 엄격한 19세기 타입’의 무신론자도 아니고 기독교로 개종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를 좋아한다. 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았다.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보이는 세상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는 잔인할 정도로 솔직했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는 선악의 존재를 믿었고 선을 위해 힘썼다는 점에서 도덕적인 사람이었다. 늘 불신이 장애물이 되었지만 카뮈는 지속적으로 희망의 이유와 삶의 의미를 찾았다.

카뮈에 따르면 세상은 부조리하다. 사람은 의미를 갈망하지만 인생은 무의미하다. 하나님은 없다. 그러나 카뮈는,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전체주의나 국수주의, 공산주의 철학으로 달려가는 유럽인들의 허무주의에는 반대했다. 카뮈는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자살에도 반대했다. “세상을 초월하는 의미가 이 세상에 있는지 없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그 의미를 모른다는 건 안다.” 카뮈는 믿음의 도약을 하는 대신 “내가 아는 것으로, 또 그것만으로 살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카뮈는 무의미에 직면하여 의미를 창조하는 자신의 철학을 소설 「페스트」에서 피력했다. 오랑시에 페스트가 돌자 관리들은 도시를 폐쇄한다. 주인공 의사 리외는 도시에 남기로 결심하고 몸을 바쳐 환자들을 돌본다. 이것이, 갑자기 발생한 무의미한 페스트 속에서 의미를 창조하는 방법이다. 카뮈는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믿었다. 우리는 겸손함으로 부정과 불의에 맞서서 작게나마 다른 사람을 도우려고 힘써야 한다.

이것은 고상한 이상주의가 아니다. 리외는 어떻게 처음으로 사형에 반대하게 됐는지 설명한다. 사형을 막기 위해서 그의 일행이 때로는 살인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처형 장면에 충격을 받은 리외는 반대 운동을 멈춘다. “오랜 세월 나는 내가 역병과 싸우고 있다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 나는 벌써 감염되어 있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페스트 환자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습니다.”

나는 이 장면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카뮈의 말은 옳았다. 나 역시 페스트 환자였다. 나는 병에 걸렸고 ‘의사’를 만나야 했다. 카뮈가 사람의 타락을 인정하는 것을 보고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카뮈는 어떤 목사나 설교자, 어떤 교수도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내 상태를 알게 해주었다. 나는 구원받고 싶었다.

 

 

기독교의 산물


물론 모든 무신론자가 독자를 기독교적 결론으로 끌고 가는 건 아니다. 또 분명히 모든 무신론 작가가 카뮈처럼 솔직하게 자신과 하나님에 관해 말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무신론자들은 최선을 다해 우리 사회가 그리스도인의 가르침이나 행동에 실망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페스트」에서 파늘루 신부는 고통의 이유에 답하지 못하면서도, 페스트가 죄 많은 도시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외친다. 사람의 잘못으로 생긴 것이니 회개하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카뮈는 한 아이의 죽음을 들이대며 반박한다.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죄 없는 아이를 괴롭히면서 벌하실 수는 없다.

무신론자들은 흔히 교회가 고통의 문제에 답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비난한다. 그들이 영적으로 좌절하고 낙망하는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을 믿으면 더 잘살게 된다고 지나치게 강조하는지 모른다. 혹은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을 함께 겪으신다는 사실과 고통은 구속 후에도 제거되기보다는 우리를 담금질하기 위해 계속 존재하리라는 사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건 무신론은 고통을 목격했거나 겪은 사람, 강하고 선하신 하나님이라는 개념과 지상의 현실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는 사람에게 매력적인 세계관이다.

특히 새로운 무신론자들이 지적하는 믿음의 또 다른 결점은, 기독교나 다른 종교들에서 자주 나타나는 포악한 면이다. 그리스도인은 (진위 여부를 떠나) 정치적인 세를 모아 공공정책에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라고 널리 인식된, 부시 행정부 하반기에 새로운 무신론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점은 우연이 아니다. 일부 목사들이 평소 고백과 달리 성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일이 발각되자 기독교의 모든 도덕 주장은 위선적인 정치 행위가 되어버렸다.

“교회가 부패할수록 무신론의 매력은 강해진다. 역사가 말한다. 먼저 유신론에 의해 쫓겨난 사람들이 무신론에 끌린다.” 맥그래스의 말이다.

무신론은 기독교의 산물이다. 나는 내 믿음에 의문이 들자 하나님을 떠났다. 목사님들은 내 물음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성경 말씀만 강조하면서 더 깊이 헌신하라, 더 열심히 기도하라고 말했다. 믿음에서 떨어져 나와 방황했던 내 친구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우리의 물음은 처음부터 규칙을 어기고 거리낌 없이 죄를 지으려는 치기로 여겨졌다. 우리는 잘못을 하면 믿음이 부족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우리보다 믿음이 좋은 친구들이 잘못을 하면 판단착오라고 덮어주었다), 기독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 믿음을 버리는 사람이 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방황했던 친구들은 대부분 나처럼 그리스도에게 돌아왔다. 그러나 독실했던 친구들 가운데 상당수는 믿음을 버렸다. 어떤 친구들은 목사님들의 위선적이고, 권력 지향적이고, 비판적이고, 독선적인 면이 싫어서 교회를 떠났고, 어떤 친구들은 고난의 시기에 교회의 관심을 받지 못해서 하나님을 떠났다. 그들은 말한다. “내가 힘들 때 함께하시지 않는 하나님은 필요 없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이나 종교와 싸울 이유가 많다. 그러나 마음으로 하나님을 거부하는 태도가 하나님의 가능성과 바람직함에 반대해서 나왔다고 보기에는 논리적으로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 같다. 도리어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을 거부하는 태도다. 우리는 최근에 무신론의 인기가 높은 것을 경고로 삼아야 한다.

변증론 대회를 열거나 격렬하게 반박하는 행위는 나름 제 구실이 있다. 우리는 분명히 우리가 믿는 이유를 대답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을 지식으로 무장하고 블로그에서 논쟁을 벌이기 전에 우리는 무신론자를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씨름하는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 이것을 기억하자. 그들이 믿음에 강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우리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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