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라면 [구독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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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라면 [구독자 전용]
  • 마크 뷰캐넌 | Mark Buchanan
  • 승인 2012.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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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장소에서 번창하는 하나님 나라

 

게는 나도 어쩔 수 없는 악습이 있다. 교회 건물에만 들어가면 습관처럼 교회 건물의 알몸을 상상한다. 그러고는 건물을 재구성한다.

여기 있는 벽은 없애고, 저기 있는 벽에는 창을 여러 개 내고, 실내 공간은 이만큼 넓히고, 마루를 다시 깔면 건물 전체가…내 두 가지 신조대로, 더 쓸모 있고 더 아름다울 텐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가. 나는 어린 시절에 이런 나쁜 버릇을 들였다. 쉴 새 없이 집안 배치를 바꾸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니까.

어머니는 장난감 집을 꾸미듯 가구를 이리저리 옮겼고, 침대보를 갈듯 소파 천을 갈았다. 그림과 장식이 여기저기 움직이는 걸 보면 마치 만화경을 보는 듯했다. 아침에는 거실이 맨해튼의 펜트하우스처럼 보였는데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샌프란시스코의 여관처럼 변해 있었다.

아버지는 대경실색을 했고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나는 지난 14년 동안 우리 교회를 상대로 이런 악습에 깊이 탐닉했다. 우리 교회는 내가 부임하기 5년 전에 5000평 가까운 대지에 올라앉은 농가를 구입했다. 사과나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닭들은 홰를 치며 모이를 쪼고 있었다. 두꺼운 가시가 달린 나무딸기 덤불이 경계를 빙 둘렀다. 우리는 큰 공사 세 개를 마쳤고 지금도 계속 수리 중이다.

우리는 농가를 헐지 않고 사무실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 구입할 당시 찍어둔 몇몇 사진이 없으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건물은 안팎으로 몰라보게 바뀌었다.

우리는 농가 위로 더 많은 사무실, 여러 교실, 예배당, 대형 성소, 널찍한 로비, 식당 등을 차례로 지었다. 게

다가 우리 교회에는 건설업을 하다가 은퇴한 교우가 있는데 일주일 동안 몇 시간씩 꾸준히 수리를 하고, 내 변덕에 맞춰 석고와 나무판만을 가지고 ‘허물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는’ 예언자적 사역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예술가 교우도 늘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모자이크도 만들고 깃발도 제작해 벽을 장식한다.

나는 우리가 교회를 더 쓸모 있고 더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는 두 가지 신조로 이 모든 걸 정당화한다. 교회 시설은 사역 도구이자 거룩한 땅, 즉 다용도로 쓸 수 있는 신성한 공간이다. 이것이 나의 신조다.

나는 일말의 후회도 없이 내가 믿는 바를 설교한다. 건물은 아름다울수록 쓸모도 많다.

옳소. 아멘.

그렇지만 나는 이런 신조에 대한 몇몇 전제를 다시 생각하고 있다.

얼마 전 우리 교회 교역자와 장로들은 밴쿠버에 있는 어느 교회를 방문했다. 나는 예배당에 들어서는 순간 내가 늘 하는 일에 착수했다. 머릿속으로 건물의 나체를 상상한 후 전신 성형에 돌입했다.

우리가 처음 모였던 방은 벽이 손상됐고 바닥은 닳았고 색조는 우중충했다. 우리가 앉았던 의자는 나무의자였다. 학교 체육관에서 쓰고 쌓아두는 그런 나무의자. 나는 열광적인 상상력을 발휘했다. 30분도 지나지 않아서 번쩍번쩍 빛나는 새로운 건물이 완성됐다.

하지만 나는 귀를 기울였다. 목사는 우리에게 교회가 있는 지역 사회의 특징을 설명했다. 그 지역은 인종뿐 아니라 여러 문화를 버무린 해물 잡탕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몇 블록으로 압축된 도심 공간에는 예술가, 상인, 걸인, 거리 공연가, 마약상, 노숙자, 동성애자 들을 비롯해 실상 모든 종족과 방언과 나라로 구성된 도시 식민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 교회가 있었다.

목사는 복음의 성육신을 위해 교회의 제한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우리에게 설명했다. 그는 교회의 도움으로 변화한 동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고는 우리를 데리고 동네로 나가서 교회가 소유하거나 임대한 주택들을 보여주었다.

교우들은 그곳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도시 공동체를 통해 주택 문제를 해결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했다.

그는 우리에게 치유기도 사역을 하는 집을 보여주었다. 그 교회의 교우들 중에는 상처가 깊은 영혼이 많았다. 우리는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다. 낮은 천장은 콘크리트가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고 바닥도 콘크리트였다.

중세풍의 내부에는 고대에 쓰던 가마가 있었다. 교회는 그곳을 도자기를 굽는 공방으로 바꾸어 도자기 장인을 초빙하여 노숙자였던 학생들에게 도자기 굽는 기술을 가르친다. 주문은 전 세계에서 들어오고 있다.

그 교회 건물은 내 신조와 맞지 않았다. 쓸모가 적었고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모든 게 임시변통이고 날림이고 급조됐다. 그런데 거칠고 망가진 동네 한복판에 얼기설기 얽힌 듯한 낡은 건물에서 하나님 나라는 번창하고 있었다.

시편 127편은 “주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라고 했다. 나는 선택할 수 있다면 여전히 쓸모 있고 아름다운 건물이 좋다. 하지만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쓸모는 회칠한 무덤일 뿐이다. LJ

 


마크 뷰캐넌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뉴라이프커뮤니티교회 목사다.
Mark Buchanan, "If God is in the House" Leadership Journal 2009 가을, CTK 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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