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명 가까이’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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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 가까이’ 다녀와서
  • 페이튼 존스
  • 승인 201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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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의 죽음을 통해 주님을 위해 두려움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다

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여전히 모른다. 한 번 죽어봤으니까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저 건너 세상으로 가는 편도 티켓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왕복 티켓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수술날짜를 잡았지 죽을 날짜를 잡았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죽음이 찾아왔다. 수술을 예약할 때와는 달리 죽음은 일정을 조정할 필요도 없고, 보안검사를 할 필요도 없으며, 대기할 필요도 없다. 아무런 경고도 없이 죽음은 불쑥 찾아오기 때문이다. 내가 숨을 멈추는 순간부터 나는 무의식 상태가 되었다. 공기를 가로막고 있는 코 연골 조직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을 받기 직전 나는 죽어버린 것이다. 누가 코 수술 같은 경미한 수술을 받기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겠는가. 그런데 나는 마취에 대한 이상반응을 보이면서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그리고 20분 동안 죽은 상태로 있었다. 의료진은 나를 소생시키기 위해 애를 썼고 마침내 내 의식은 돌아왔다. 제세동[심장 박동을 정상화시키기 위한 전기 충격 요법]과 아트로핀[경련완화제]와 인공호흡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내가 경험한 “내세”는 내가 책에서 읽었던 죽음 저편의 삶과는 전혀 달랐다. 그래서 만일 내가 티켓 값을 지불했다면 바가지를 썼다는 느낌을 어느 정도 받았을 것이다.

빛의 터널 같은 건 없었다.
천사의 날갯짓도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꼭 이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하는 조상님들도 없었다.
어쩌면 나는 제대로 죽은 게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아는 사실은 단지 이 죽음이 내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C. S. 루이스의 소설 「페렐란드라」Perelandra의 첫 장에서 주인공 랜섬이 화성으로부터 잉글랜드로 돌아온 후 달라진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다른 세계에 다녀온 사람은 뭔가 변하기 마련이다. 그 차이를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페렐란드라」(홍성사 역간), 12쪽] 

내 경우도 이와 똑같다. 지금까지도 내가 겪은 일들을 이야기할라치면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그 체험을 했을 당시 나는 웨일즈에 살면서 사역을 하고 있었다. 내게 일어났던 일들을 가장 잘 설명하는 웨일즈어가 있는데 바로 ‘히어리드’hiraeth이다. 이 단어는 고대 켈트어인데, 이에 상응하는 영어 단어는 없다. 보통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긴 하나, 이것도 이 단어의 의미를 꼭 집어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보다 뭔가 더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여느 웨일즈어가 그러하듯 설명보다는 느낌으로 단어를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여하튼 천국에 대한 ‘히어리드’가 눈에 보이지 않는 줄로 내 가슴을 묶어 놓았기에, 나 자신이 저 멀리 대양 건너편 타향에 머물고 있는 나그네처럼 느껴졌다.

“히어리드”는 응급처치 팀이 나를 소생시킨 후 뇌신경검사를 할 때 내가 했던 말이다. 내가 경험했던 신비함과 놀라움을 표현한 이 단어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앞으로 남은 평생 천국에 대한 향수병을 앓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 20분밖에 안되었지만 나는 영원이라는 세계에 발을 디뎠고, 그 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내 마음 속에 영원을 담다

환자가 의식을 되찾거나 전신마취에서 깨어나면 순간적으로 일시에 회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계별로 뇌기능이 회복된다. 멘탈이 리부팅 되면 우리 뇌가 천천히 구동되면서 제 기능을 되찾게 된다. 마치 컴퓨터처럼 사람도 무의식에서 깨어날 때마다 뇌가 리셋 되면서 단계별 시스템 구동을 시작한다.

뇌의 시스템 구동 단계는 다음과 같다.
1.자기 인지 
2.장소 인지
3.시간 인지
4.상황 인지

간호사로 일할 때, 나는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고 차트에 기록했다. 환자의 의식회복 단계에 따라 질문 내용이 달라진다. 트라우마 직후에는 일시적인 기억상실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의식이 회복된 환자의 인지 상태를 체크하기 위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이름이 뭔지 말해보겠습니까?”
“여기가 어딘지 아십니까?”

그런데 나는 이 과정을 건너 뛴 것 같다.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나는 인지 4단계, 즉 내가 어떠한 상황에 처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여전히 천국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천국에서 뭔가를 얻은 후 되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죽었다가 살아난 것에 대한 트라우마는 수 주간 계속되었다. 그리고 내가 체험한 영원성에 대한 감각은 이보다 훨씬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입국 거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면서도 실망스러워하는 환자들이 몇이나 되는지 나는 궁금하다. 그런데 나는 그랬다. 사실 나는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마치 국제선을 타고 비행기 안에서 내내 불편한 것을 참고 내린 후 게이트까지 천천히 가는 동안 겨우 다리를 쭉 펼 기회를 얻었는데 다시금 비행기에 강제로 태워 왔던 곳으로 돌려보내졌을 때의 기분이었다. 내 입으로도 소리를 내기를 바라면서 머릿속으로만 비명을 질러댔던 것을 기억한다. 어쩌면 의료진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를 소생시키기 위해 애를 쓴 지 20분 후 내 맥박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의료진은 성공이다 생각했겠지만, 나로서는 실패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체험했던 것을 글로 옮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했다. 글로 쓰면 왠지 그 체험의 가치가 떨어질 것 같아 두려웠다. 우리 할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101공수부대원으로 복무하셨다. 그 후 몇 년 동안은 그때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거부하셨다. 아마 전쟁과는 동떨어져 있는 곳에서는 전쟁터의 그 복잡다단한 상황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 두려우셨을 것이다. 전쟁터에서 쓰러진 전우들의 얼굴이 여전히 생생한데 듣는 이들이 할아버지의 심리상태를 파헤치고 트라우마를 분석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을 것이다.

누군가 죽음 가까이 갔던 체험을 이야기 할 때, 다른 누군가가 불쑥 끼어들어 그 이야기를 하나님과 천국이 존재하는 또는 존재하지 않는 증거로 몰고 간다. 이것은 마치 참전용사가 총을 맞고 철망에 끼어 몸이 찢긴 전우들을 구한 전쟁체험을 이야기하는데 누군가가 끼어들어 이야기의 본질을 왜곡시키거나 전쟁윤리라는 주제로 몰고 가 엉뚱한 논쟁을 벌이는 것과 같다. 참전용사처럼 나도 내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체험한 것이 하도 별나고 희귀해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사실이다. 또한 죽음 가까이 간 체험이란 주제를 다룬 책들이 이미 넘쳐나는 마당에 나마저 책을 쓰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내 체험을 팔아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또 회의론자들은 내 체험은 내가 가지고 있던 종교성을 토대로 뉴런이 전기신호를 보내서 빚어낸 환각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내 체험은 신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며, 나는 전직 정신과 간호사이다. 나는 내게 일어난 사건을 모든 각도에서 분석해보았다. 내가 확인한 사실은 내게 일어났던 일들을 나 자신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에게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실히 모르는 상태에서 자기 경험을 이야기 했다. “나는 이 사람을 압니다. 그가 몸을 입은 채 그렇게 했는지 몸을 떠나서 그렇게 했는지를,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고후 12:3) 바울 역시 자신의 체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고 한다면, 여러분도 내가 체험한 것이 다소 모호할지라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세상으로 돌아오다

내가 다시 살아났을 때 일어난 일이 내가 죽었을 때 일어났던 일보다 훨씬 중요하다. 나는 눈을 번쩍 떴고, 인지 회복 단계를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간호사의 얼굴과 병실과 크래시 카트crash cart[응급처지용 약품과 기기를 실은 손수레]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나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다 알고 있었기에 굳이 설명해 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말을 할 수 없었을 뿐이다. 눈을 빼고는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간호사가 의례적인 질문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내 턱뼈가 간신히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내가 내뱉은 첫마디는 탄성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천국의 임금님을 방금 만나고 왔어요.”
간호사: “오, 천국 꿈을 꾸셨나요?”
나: “아니요, 난 천국에 있었어요.”
간호사는 병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흘끔 쳐다보았다. 
나: “나는 남은 평생 내내 천국에 대한 히어리드hiraeth[그리움]를 갖고 있을 겁니다.”

나는 그가 계속 신경 인지 검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웨일즈어를 할 줄 아느냐고 그가 물었다. 수업을 들은 적은 있으나 언어 실력은 별로인 학생이었노라고 말했다. 웨일즈에서 미국식 억양으로 말을 하다 보면 난국에 봉착하기 일쑤다. 그런데 미국인으로서 이렇게 웨일즈어를 잘 구사하다니 얼마나 멋지냐고 말했다. 나는 교회 개척 사역을 하고 있다고 그에게 말하고 주저함 없이 곧장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러나 정상인으로서의 수위를 지키며 행동했다. 사실 나는 세일즈맨과 같은 방식으로 전도를 할 때마다 겸연쩍어지곤 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이 나로서는 쉽지 않았고, 전한다고 해도 자연스럽거나 자발적이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고, 또 그것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다니…. 아마도 내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체험을 하면서 전도의 능력을 발휘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능력에는 전염성이 있었다. 의료진들은 환자이송용 들것을 이용하여 나를 회복실로 끌고 같다. 그리고 침대로 옮긴 후 왼쪽에 있는 통증조절 버튼을 보여주고는 가버렸다. 나는 마치 결박당한 사람처럼 침대에 누운 상태로 두 시간 동안 울었다. 내가 느꼈던 것들에 대한 상실감 때문이다. 내가 보았던 아름다움이 사라져서 울었다. 내가 체험했던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생각하자니 자연세계의 아름다움이 “아련한 슬픔을 안겨주노라”고 노래했던 워즈워드의 시구가 떠오른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세계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내가 울 때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이려니 하고 놔두세요.” 리치 멀린스의 이 복음성가 가사는 상실감 때문에 눈물 흘리는 내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한다. 내가 하늘본향으로 인해 눈물 흘리지만 그것은 마치 몇 가지 기념품을 챙겨오도록 허락 받은 것 같다. 그리고 그 기념품은 남은 인생여정을 의미 있게 만든다.

눈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던 옆 침대의 젊은이가 그날 밤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내게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새벽 두시가 되자 탈진해서 잠을 자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고 그제야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멈추었다. 그러자 그는 내 침대 사이를 가로질러 내 팔을 꽉 잡더니 잠자지 말고 복음에 대해 더 이야기해 달라고 졸랐다. 나는 이러한 반응을 성경에서나 읽었을 뿐이다.

내게서 무엇인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긴 힘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사람들에게 내 체험을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아내가 도넛 한 상자를 들고 병실을 찾아왔다. 내가 체험한 것을 아내에게 설명하려고 애쓰면서 도넛 상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야기를 하면서 말머리를 바꿀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간간히 멈추지 않고서는 도저히 내 체험을 설명할 수 없었다.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내가 갔던 곳과 그곳에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어 서운하다는 말을 꺼낼 때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체험했던 것에는 그 어떤 틀도, 정보도 없었기에 그것을 전할 때 애를 먹었다. 예수님께 고침을 받고 눈을 뜬 다음에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다니는 것 같습니다”[막8:24]라고 말했던 사람과 같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천국에 대한 핸드북과도 같은 영문으로 된 요한계시록을 파고들었다. 갑자기 요한계시록에서 모호했던 구절이 내 시선을 끌었고 그것은 내가 체험했던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성경주석가는 그 구절의 모호성을 설명하느라 애를 쓰는 반면 나는 이미 체험을 통해 분명히 이해했다.

 

여행 기념품

사람들은 항상 내가 본 것들에 대해 알기 원했다. 그러나 그것은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내가 의식을 되찾는 것은 허용되었지만 어떤 식으로도 내 시각기억을 재생하는 것은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간 곳은 어디이며, 그곳에서 무엇을 느꼈으며, 무엇을 보았을까. 
6개월이 지나서 장기 복용하던 약도 끊었다. 그러나 내가 체험했던 영광의 빛이 점점 흐려진다는 사실로 인해 내 몸엔 고통이 남았다. 모세의 얼굴빛도 점차 사라지지 않았던가. 그러나 내겐 그 여행에서 가져온 기념품이 있다. 그  몇 가지 기념품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1.민감성
두 주가 지나자 내 체험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졌다. 나는 두 주 동안 병실 안에만 머물면서 내리 잠만 잤다. 하루에 깨어있는 시간이 두 시간도 채 못 되었다.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우리 몸 세포에 20분간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기차에 치이는 느낌이 들 것이다. 내가 잠자고 있는 동안 몸은 치유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깨어 있을 때에도 나는 그분의 임재 가운데 있었다. 내가 가장 높은 그분의 비밀스런 장소에 있을 때 하나님의 평강과 친밀감이 넘쳐났다.
나는 왕성한 식욕을 주체하지 못했기에 책을 읽고 싶어졌다. A. W. 토저의 「하나님을 추구함」The Pursuit of God이 읽고 싶어졌다[83쪽 ‘숨은 책’ 찾기]. 그러나 그 책을 읽으면서 마치 장애물 코스를 지나는 느낌이 들었다. 영적으로 심오한 책들을 읽노라면 단 몇 줄만 읽어도 경배와 눈물과 기도를 위해 멈추곤 했다. 하나님의 궤가 예루살렘의 성문들을 통과하며 행진할 때 여섯 걸음마다 제사를 드렸던 다윗과 같은 느낌이었다.

토저가 기차 안에서 밤을 지새우며 영적 고전이 된 이 책을 집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토저는 이 책을 쓸 때 마치 책의 내용들이 이미 자기 마음속에 쟁여져 있기라도 한 양 줄줄 흘러나오는 바람에 미처 손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고백했다. 다음 날 원고들을 집어 들고 기차역에 내렸을 때 그는 기차에서 밤을 지새운 것이 싫지 않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했던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토저처럼 나도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주님께서 분명히 이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라고 했던 야곱과 같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2. 예배
여행사 직원들이 자기들이 가보지도 않은 여행지 상품을 팔고자 한다면 난감할 것이다. 그랜드 캐니언에 가 본 적이 없어서 사막 가운데 있는 빅홀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랜드 캐니언을 묘사할 것인가? 직접 그곳에 가보지 않고서는 어떤 말이나 생각이나 상상력으로도 실상을 파악할 수 없다. 
나는 하나님의 경이로움에 대해 늘 들어왔다. 그러나 내가 직접 가 보았던 천국에서 내가 실제로 느꼈던 것은 그 누구에게서도 들은 적이 없다. 내가 하나님 안에서 느꼈던 자존감은 경외감이나 경이로움이나 놀라움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경이로움 때문만이 아니라 예수님 자체로 자긍심을 느꼈다. 그런데 갑자가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예배가 펼쳐졌고 나는 지금도 그 예배의 느낌을 기억한다.

3. 확신
마치 나는 슈퍼맨이 된 기분이다. 왜냐하면 천국을 체험한 이후 내겐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일종의 영적 방탄조끼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제 대적 사탄은 나를 건드릴 수 없다. 사탄이 나를 고소하고 비웃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사탄의 말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돌보고 계셔. 사탄이 말하는 정죄란 눈속임뿐이야.”
하나님 앞에서 나는 벌거숭이였지만 무엇인가로 덮여 있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결코 잊을 수는 없다.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나도 매일매일 하나님의 은혜, 십자가의 보혈과 의미를 말하는 복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더 이상 다리를 절뚝이지 않고 달음박질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안다.

4.치유
내가 그 체험을 한 2008년 6월 5일 이전이었다면, 험프리 보가트가 샘 스페이드 탐정 영화같은 비극적인 내 목회생활을 연기해도 괜찮았을 것이다. [샘 스페이드Sam Spade는 대쉴 해미트의 탐정 소설에 등장하는 탐정으로, 탐정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비타협적인 태도와 강인한 의지를 발휘하는 인물이다. 영화배우 험프리 보가트가 영화에서 그 역을 자주 연기했다.] 내가 목회를 하던 몇몇 교회가 떠오른다. 내 인생에 들어와서는 마음의 상처만 남기고 끝나버린 교회들이. 그때 나는 이미 목회사역을 그만둔 상태였다. 나는 스타벅스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그 최전선의 사역지에서 내 신앙을 회복하고 있었지만, 언쟁과 갈등의 숱한 파편들은 여전히 내 가슴 속에서 떠나지 않고 활개치고 있었다. 목회자로서 내 마음은 이미 산산이 조각나 버렸기 때문에, 그 상처가 내 삶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그 20분 동안 그림자라곤 전혀 없는 그분께서 내 상처를 치유하셨다. 그로 인해 나는 감동을 받았고, 아내는 더 큰 감동을 받았다. 아내는 내가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서 뭔가 초자연적인 일이 생긴 것도 알았다.

 

수건을 벗고 나서  

내겐 모세처럼 수건으로 얼굴을 가려야만 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 영광의 빛이 사라져 갔고, 그 빛에 그을린 자국도 점점 옅어졌다. 그리고 나는 평범한 나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체험은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내게 남겼다.

어떤 면에서는 더 큰 평강을 누리지만 그에 따른 고뇌도 늘어났다. 그 고뇌는 사명과 관련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평강을 허락하신 것은 그분의 존재를 알리기 위함이다. 바울은 “오직 한 일” 즉 푯대를 향하여 하나님이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말했다. 바울은 그의 사명과 삶의 목표를 발견하기 원했다. 이제 나에게도 바울과 비슷한 절박함이 있다. 그 체험을 한 후 나는 그 어떤 방해에도 개의치 않고 내 삶의 목표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바울의 서신을 읽으면서 나는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째깍거리는 보이지 않는 카운트다운을 감지했다. 바울처럼, 나도 덤으로 얻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전도자로서 나는 사람들을 더욱 성가시게 하고 있다. 그만큼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아껴 소중하고 쓰고 있다.

동시에, 내 야망은 사라졌다. 나를 이끄는 것은 내 자아가 아니라 주님이 주신 충격이다. 내가 감동을 주고 싶은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 나는 그분 앞에 서게 될 것이다…다시. 나는 나를 참으로 자유롭게 하는 이 깨달음을 얻었다! 이제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그분을 위한 것이다. CT

(2014 / 11월호) 

페이튼 존스 목사 뉴 브리드 교회 개척 사역New Breed Church Planting의 설립자이며 「그라운드 제로 교회: 21세기 교회의 잿더미에 1세기 초대 교회 세우기」Church Zero: Raising 1st Century Churches out of the Ashes of the 21st Century Church의 저자이다.
Peyton Jones, “My Near Life Experience” Leadership Journal 2014 여름 임금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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